편집자 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과 일본군 위안부 협상 등과 관련하여 소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빚어졌다. 교계도 이러한 양상에 편승하여 양 진영으로 나뉜 채 마찬가지로 갈등을 빚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가 행동화되면서 이러한 갈등 양상이 전개되었는데, 교회사가는 이러한 교계의 반응을 어떻게 평가할까? 새해를 맞이해 본지는 평생을 교회사 연구에 헌신한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를 예방하여 신앙인으로서 역사현실을 대하는 태도와 새해를 살아갈 신앙생활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인기 편집국장(문):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95세이신데 정정해 보이십니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고 계십니까?
이장식 박사(이):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이지요? 금년 4월이면 만 95세가 됩니다. 우선은 지병이 없으니까 안심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허리나 무릎 관절에 불편함을 좀 느끼고 있기는 합니다. 요즘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지요. 허허. 그리고 음식은 별로 가리는 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잘 먹고 지낸다기보다 소식(小食)에다 소식(素食)을 하지요.
문: 케냐에서 14년간 선교사로 사역을 하셨지요? 은퇴하신지 바로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이: 선교사를 은퇴하자마자 여기 광명의 집(기장 은퇴목회자 거소)에 들어왔으니까 금년으로 11년째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저수지도 있고 풍광이 괜찮아요. 산책하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같은 교단의 목회자들이 함께 지내니까 친구 삼기도 좋고 많은 제자 목사들이 자주 찾아줘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고 있지요.
문: 박사님께서는 거의 100년을 살고 계신 셈인데, 100년의 인생이라면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경험상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는 경험상 역사가 순환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예로 들어주시면 이해하기가 수월하겠습니다.
이: 역사에 대해서는 대개 순환설을 주장하지요. 사계절이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이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순환한다고 볼 수 있지요. 1차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또 일어났지요? 동북아의 정치상황을 볼 때 신 냉전 구도가 전개될 우려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역사는 순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집니다. 역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면 순환적 관점으로 역사를 보게 되겠지요. 정치신학적 관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도하신다고 본다면, 역사는 창조로부터 종말로 이르는 직선적 과정입니다. 그 직선 위에서 시대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크게는 예수님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이 있으니 종말도 오게 되어 있고 종말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오게 됨으로써 역사의 매듭이 지어질 것입니다. 세속적인 역사 이론이 순환과 반복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시작이 있으므로 끝이 있을 것이라는 직선적인 종말사관을 갖고 있지요.
생태적 위기는 말세의 중대한 징조
문: 그러면 교회사가로서 오늘날의 사회, 정신 및 신앙의 상태를 점검할 때 오늘날이 전환기적 시점, 혹은, 말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지금이 말세냐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가 수억 년에 이르는 데다 우주의 창조 시점도 지정할 수가 없으니까 그 장구한 세월을 전제로 할 때 현재의 상황으로 우주의 종말을 예단하기란 어렵지요. 하지만, 성경에 근거해서 종말을 설명하는 경우는 현상적 조짐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특히, 마가복음 13장을 보면, 전쟁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요? 전쟁과 관련해서라면 2차대전이 끝난 뒤라도 국지전이 계속되었고 2차대전과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진과 같은 지구상의 변화를 봅시다. 특히, 환경변화로 인한 위기는 종말의 조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는 경우는 한 국가의 종말을 거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태적인 위기는 종말적입니다.
문: 전쟁보다 생태적인 위기가 더 종말적인 조짐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 네. 그 다음으로 패륜적 현상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듣기 민망할 정도로 패륜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자관계나 부부관계 등에서 살인과 학대가 저질러지는 일들은 과거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나 세계적으로는 난민 문제까지도 과거에는 없었던 사건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IS의 테러 같은 문제도 과거에 없었던 종말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 기후변화, 패륜 등의 현상이 종말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역사는 중립적인 사실의 정립에 힘써야
문: 네, 그러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박사님께서는 교회사가로서 오랫동안 연구하시고 강의도 하셨는데, 교회사가의 입장에서 최근에 벌어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논란을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계에서도 찬반양론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역사학적 관점을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비판과, 특히, 근대사에 있어서 균형잡힌 평가를 얻어낼 기회라는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혹시, 이 두 가지의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보수층에서는 국정화 결정을 찬성하고 NCCK는 침묵인지 중립적인지, 어쨌든 그런 입장을 보였지요.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현재의 교과서 가운데, 특별히 남북관계나 625전쟁과 관련된 부분 중에서 모호한 내용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에 모 대학 총장이 장관으로서 국회에서 답변을 할 때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을 못한 사태가 있었는데, 그런 식의 역사관을 조장하는 것이라면 국민교육상 명확하게 교정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를 비호하는 관점을 내비치게 되면 반발을 받게 되어 있지요. 남한의 산업화는 과소평가하면서 군사혁명 등의 부정적인 면을 과장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문: 그리고 한국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그렇지요. 근대화에 대한 기여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도 교회가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일들을 불공평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포괄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큰 흐름을 훼손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므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은 좌경이니 우경이니의 관점의 대립보다는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사실을 정립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간에 정치적 타협이 있었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이: 오늘 아침 신문에서 그 보도를 읽었습니다. 정부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발표했지요. 그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논란이 벌어졌는데, 정치적 타협이라는 것이 위안부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차치하고 배상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국가 간의 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를 하자면 국가 간의 평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 대승적인 수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끔직한 경험을 한 당사자들의 분노와 절망감을 돈 문제로 호도하려는 접근은 문제가 큽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가 당사자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좀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포괄적인 방책을 찾기 위해 좀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