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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떨어지면 죽습니다

2015년 12월 27일 높은 뜻 푸른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동호 목사

kimdongho
(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김동호 목사

떨어지면 죽습니다.

요 15:1-8.

제 설교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울 때 금기시 하던 일인데 저는 그 금기를 깨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설교는 강해를 근본으로 해야하지만 설교가 강해에서 끝난다면 그것은 강해지 설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하고 선택한 설교는 단순한 성경강해가 아닌 삶의 나눔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설교를 예수 믿고 사는 이야기라고 풀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설교하다보니 제 유형의 설교도 설교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소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 설교의 유형입니다.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설교에는 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동안교회 시절 하도 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청년들 사이에 '오늘 또 우리 목사님 개소리 하셨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게 되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설교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가 한동대에 입학하였을 때 선배들이 제 아이에게 했던 말이 '니가 개냐?'였습니다. '네가 그 아이냐?'는 뜻이었습니다.

큰 손녀 민희를 낳았을 때 거의 제 모든 설교에는 민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안식년 할 때 민희하고 어느 마트에 갔었습니다. 저를 알아보신 어떤 분이 제 손을 잡고 있는 어린 민희를 보고 '네가 그 유명한 민희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지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과 육신이 만날 때 은혜가 충만해 집니다. 같은 이치로 저는 말씀이 설교자의 삶과 만날 때 그 설교를 듣는 교인들에게 은혜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말씀은 없고 육신만 있기 쉽고, 하나님의 영광을 숨어 버리고 자기 자랑이 될 위험성이 높기는 합니다. 그런 실수를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제가 이해한 설교의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평생 자랑해야만 할 보물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셨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능하고 악한 나를 하나님이 쓰시는 소중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가난한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학교 수위셨고 당시 우리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쌀 한 가마 반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법 가난 했었습니다. 밥 굶지 않고 학교 겨우 다닌 것만도 기적 같은 가난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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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의 책임감이 무척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는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주정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소주 반 병만 드시면 취하셔서 밤새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며 식구들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때에는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습니다. 아버지를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먹을 꼭 쥐고 참았습니다. 그러면 몸에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마비가 오곤 했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저에게 집착하셨습니다. 그 집착이 너무 강하여 결혼 생활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제 아내는 심정적으로 연적이었습니다. 저보다 아내가 더 힘들었습니다. 결혼 초 아내의 몸무게가 38kg까지 내려 갔었습니다. 도저히 목회를 할 수 없으리만큼 힘든 가정 생활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공부를 잘 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우등상장 한 번 받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상고를 나왔고 대학은 1차, 2차 모두 떨어졌습니다. 재수도 하지 않고 그냥 세운상가 가게 점원으로 취직했었습니다.

성격은 지나치리만큼 내성적이었고, 병적이리만큼 열등의식이 컸었습니다. 요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야기들이 떠 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전형적인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65년을 살고 난 지금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2005년 독일에서 유럽 코스타가 열렸습니다. 코스타 집회 기간 중에 제 생일이 있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제 생일을 아시고 집회 마친 후 깜짝 생일 파티를 해 주었습니다. 집회에 강사로 왔던 CCM 가수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일 축하 노래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였습니다.

그 찬송은 자기 친구들 생일파티 때 늘 부르는 찬송이라 하였습니다. 그 때는 가사를 조금 바꿔서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저 쓸데 없는 자' 좋은 날 웃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저는 그 날그 말에 참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데 없었던 저를 왜 이렇게까지 구속하여 주시고 높여 주시는지 정말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라고 매사가 다 형통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사소한 근심꺼리와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기는 하지만, 그리고 저도 살아오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실패와 역경과 고난을 격어 왔지만 그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었고 결국은 구원의 삶을 이 땅에서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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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런 구원의 삶을 준게 무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본시 흙수저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게을렀던 것은 아니나, 제법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때문에 오늘의 삶을 살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있고,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는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구원은 그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로마서의 주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라는 것,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축복의 삶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붙으라는 단순한 말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붙어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 되면 열매를 맺을 수도, 축복을 받을 수도,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금수저를 물고, 인생의 집을 짓기 위해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다고해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모든 수고가 헛될 것입니다. 금수저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바보처럼 수저 따위나 부러워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일입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 금수저를 의지하고 함부로 흙수저 깔보고 업신여기고 억누르고 살면 결국 비참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열매 맺지 못하고 구원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구원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수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쟁취하여 얻을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진정한 축복과 구원과 삶의 승리와 행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참 좋은 목사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주일학교 2학년 때 성경암송대회에서 제가 특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 담임선생님이 여대생 선생님이셨는데 상을 받아 들어오는 저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 대회가 끝날 때까지 안아 주었습니다. 심한 열등의식과 내성적인 성격으로 억눌려 있던 어린 아이의 삶이 밝아진 첫 날이었습니다.

교회가 좋았습니다. 교회에서 정말 저를 사랑해 주시는 어른들과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강덕조 권사님, 이춘익 장로님 그리고 김익명 장로님. 선생님과 어른들의 사랑은 신뢰로 나타났고 그 신뢰가 열등의식과 내성적인 성격으로 숨어 있던 저의 열정과 재능을 개발시켰습니다.

ㅡㅡㅡㅡㅡㅡ3

고등부 총무와 회장을 했습니다. 제 성격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구석에 숨어서 아무것도 안하고 남 하는 일 지켜보는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고등부 회장을 맡고 첫 월례회 사회를 하게 된 날 얼마나 두려워하고 떨었는지 모릅니다. 월례회를 앞두고 일 주일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겁나고 떨리고 두려워서.

기도하며 월례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상상했습니다. 그것을 메모했습니다. 어떤 발언들이 누구 누구에게서 나올 것인가까지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월례회 뿐 아니라 모든 일을 그렇게 하였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다 기도하면서 푼 예상문제에서 나왔습니다.그런 식으로 일을 하니 당연히 일이 잘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작은 성공들이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제가 나름 그런 작은 성공을 할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까닭은 교회 선생님과 어른들의 사랑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평생을 같이하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김의명 장로, 신대철 장로, 이요일 장로, 이철주 장로, 일찍 먼저 하나님께 간 윤철명 집사. 친구는 두고 두고 생각해도 축복입니다. 친구가 되면 그 친구가 가난하던 약하던 조금 무능하던 상관없이 이해해 주고 품어줍니다. 그게 친구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만난 큰 축복은 목사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와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어려서 제가 제법 노래를 잘 불러 특별한 예배 때 특송을 하는 때가 있었는데 저는 언제나 설교 전이 아니라 설교 후에 특송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습니다.

어린 아이였을 때였는데도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 가슴이 뜨거워졌을 때 가장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찬송과 목소리에 은혜와 감동이 묻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라난 모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고, 전임 전도사를 하고,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목사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멘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목회는 그 때 제가 목사님을 보며 느끼고 부러워하고 감동 받았던 것을 흉내 냄입니다. 그런 인생과 신앙과 목회의 참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복된 만남을 통해 제가 교회를 좋아하게 되었고, 교회를 좋아하다보니 그 교회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의 회심과 같은 경험은 없습니다. 그냥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은혜 받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런저런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냥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기막히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떨어지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결국 말라 죽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막힌 말씀이 어디있겠습니까?

ㅡㅡㅡㅡㅡㅡ4

하나님께 붙어있으면 살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 되면 죽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전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꼭 붙어 있는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게 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사이와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사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라면 구원은, 생명은, 축복은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는 가지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자꾸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떨어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자꾸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끼어 넣습니다. 영적간음을 하게 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 합니다.

구원은 관계고, 관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지만 하나님외에 다른 것들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이가 나빠집니다. 그러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찢어지게 되고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열매는 고사하고 생명 조차 부지 할 수 없게 됩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열매 맺지 않는 가지 제하려 버리신다 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끗게 하심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가지 같은 마음을 제하여 버려야만 합니다.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려야만 합니다.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붙을 수 있습니다.

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돈을 욕심으로 벌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성공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욕심과 야망으로 성공하게 되면 성공과 성공한 자신이 우상이 됩니다. 그것은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에 성공한(인간적인 표현이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빠지는 우상입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목회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 결국은 실패요 사망입니다.

그것은 권력과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자신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붙어 있어야만 삽니다.

붙어 있으려면 떨어져야만 합니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붙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십니까? 소명이십니까 아니면 야망이십니까?

욕심과 야망으로부터 떨어지십시오.

그것을 소명으로 바꾸십시오.

삶의 목적을 자신으로부터 하나님으로 바꾸십시오.

떨어지면 죽습니다.

하나님께 붙으십시오.

대충 적당히 붙지 마시고 하나님께 꽉 매달리고 붙으십시오.

떨어지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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