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다시 열린 전병욱 목사 면직 재판이 첫 걸음부터 삐그덕대고 있다. 예장합동 평양노회 재판국(아래 재판국, 국장 김경일 목사)은 지난 1월5일(화) 오전 재판국 1차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엔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 그리고 삼일교회 측 이광영·나원주 장로가 각각 피고인과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재판국이 전 목사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재판국은 참고인들은 강도 높게 추궁했다. 무엇보다 재판국은 피해자들의 출석을 요구했다. 심리를 통해 강하게 요구했고, 공문을 통해 이 요구를 공식화했다. 참고인들은 이전 재판국에 제출한 자료면 되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재판국의 답은 이랬다.
"총회 지시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심리한다."
노회장이 드러내놓고 "전 목사와 홍대새교회를 지키겠다"고 공언했으니, 재판국의 이 같은 태도는 일정 수준 예상이 가능했다. 재판국은 피해자 보다 가해자인 전 목사의 인권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한 재판국원이 "피해자들이 당했다는데, 그분(전 목사)도 인권이 있고 보호 받아야 하는데 증거도 없이 피해를 당했다고 하냐?"고 따져 물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평양노회는 이미 전 목사에게 ‘시벌'을 가했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국이 제시한 근거는 2010년 11월8일자 평양노회 임원회 공문이다. 전 목사가 삼일교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린 뒤 꼭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재판국원은 이 공문 내용을 참고인들에게 낭독했다. 이 공문 1항엔 "전(병욱) 목사 설교는 앞으로 9개월까지 중지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재판국은 이 조항을 들먹이면서 "목사에게는 면직 다음으로 설교 중지가 중징계다. 그런데 평양노회는 전 목사에게 이 같은 징계조치를 취했고, 전 목사는 이를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 시벌했다"는 평양노회, 과연 그럴까?
찬찬히 따져보자. 전 목사 사건이 평양노회로 넘어간 시점은 2011년 4월 정기노회 때다. 재판국 논리대로라면 노회 임원회는 정기노회에 앞서 조치를 취했던 셈이다. 그런데 노회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조치에 대해 공개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간 노회는 절차를 이유로 면직안 접수를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2014년 8월 『숨바꼭질』 출간으로 여론의 이목이 쏠리자 마지못해 재판국을 꾸렸다. 그런 노회가 이제와서는 "노회가 시벌을 했고, 전 목사가 이를 지켰으니 할 일 다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섣부른 추측이나 음모론을 배제하고 오로지 재판국에서 벌어진 일들, 그리고 재판국이 공개적으로 취한 조치만 놓고 추론해 보자. 재판국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전병욱 목사 구하기'.
재판국원들은 피해여성도를 향해 "정히 피해를 당했다면 나와서 소명해 보라"는 식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들의 입에선 늘 ‘물증'이란 낱말이 튀어 나왔다. 재판국원이 원하는 ‘물증'은 과연 무엇일까? 성추행 사건은 피해여성의 진술이 절대적이다. 또 피해여성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조치가 선행되야 한다. 세상 법은 어떨까?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진술하는 경우, 직권 또는 성폭력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피해자지원담당관 또는 성폭력 피해자의 주거지·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다."
평양노회 재판국 분위기는 살벌하다. 홍대새교회 성도들은 전 목사가 출석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출동에 부지런히 동향을 살핀다. 이어 전 목사의 회개를 요구하며 현장에 모인 활동가들과 일반 성도들, 그리고 취재진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이에 대해 재판국은 "뾰족한 근거가 없다"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어느 피해자가 출석하려 할까?
셀프 면죄부 주려는 재판국
둘째, 노회에 ‘셀프 면죄부 주기'다. 재판국은 느닷없이 2010년 11월8일자 임원회 결의를 들어 노회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인가? 같은 목사 입장에서 9개월 설교 정지는 중징계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회 임원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전 목사를 소환해서 소명을 듣는 등의 조취를 취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노회는 전 목사 사건이 의제로 올라오려 할 때 마다 어떤 식으로든 이를 저지하려 했다. 이 와중에 삼일교회 성도들이 줄기차게 제기한 면직 요구안은 ‘절차'를 이유로 사실상 ‘깔아 뭉갰다.'
노회 재판국은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사법권이 없어 전 목사를 구속하거나 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간 전 목사 사건을 지켜봐온 모든 이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다. 즉, 제대로 진상규명 하고, 전 목사에 대해선 적절히 회개할 시간을 갖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물증을 원하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전 목사 성추행 사건의 경우 복수의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진술에서 성추행 ‘수법'의 일관성이 엿보인다. 일반 사회법정에서도 진술이 일관되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재판국이 ‘물증'을 이유로 피해자 소환을 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이다.
재판국원들의 인권감수성은 또 어떤가? 한 재판국원은 피해여성도를 ‘이 양반들'이라고 지칭하면서 "피해를 당한 게 억울하다면 물증을 듣고 판단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재판국원들이 전 목사에 대해선 ‘그 분'이라는 극존칭을 사용하며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예수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데, 목사들이 귀하게 여기는 영혼은 같은 목사들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번 재판국은 진실규명은 뒷전인 것 같다. 갑자기 몰아닥치는 소나기는 때가 되면 지나갈지 모른다. 그러나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장합동 교세는 현저하게 위축되는 상황이다. 2014년 예장합동 교단 교회 출석 성도수는 전년 대비 13만이 감소했다.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유명 대형교회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이같은 감소세는 자업자득이다. 다른 교단 보다 유독 예장합동 교단 목회자들 사이에서 성추문이나 공금횡령 같은 범죄가 횡행했다. 지난 해 말에는 교단 총무를 지낸 목회자가 한때 자신의 측근이었던 목회자에게 칼부림을 벌이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일도 있었다. 만에 하나 평양노회가 이번에도 전 목사 사건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지나가면 그 결과는 뻔하다. 분명 가까운 장래에 문 밖에서 이를 갈며 슬피울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