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로운 눈빛으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내미는 ‘하얀' 손 -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 하면 얼른 떠올리는 장면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각종 국제구호기구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자녀들을 아프리카 후원 아동과 결연을 맺어주는 일이 활발해졌다. 한편 언론에서는 연말연시를 기해 이들 구호단체와 연계해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이때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아프리카에 있는 불쌍한 아이들을 더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케냐를 비롯한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의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제때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고, 메말라 버린 강바닥을 파헤쳐 나오는 물을 마신다. 이로 인해 배탈, 설사 및 각종 풍토병에 노출되기 쉽다. 공중 보건의료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모르겠다. 아이들은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 한 알을 얻지 못해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다국적 의약기업이 복제약, 즉 특허기간이 만료된 의약품의 화학식을 가져와 만든 약만 제때 공급해도 풍토병은 통제가 가능하다.
자,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돕자. 대한민국은 구호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위상이 달라진 자랑스런 경험을 한 나라다. 그간 많이 도와 왔지만, 더 돕자. 그러나 이 아이들을 그저 불쌍하다고, 그래서 적선하듯 하는 내던지는 도움은 금물이다. 이 아이들은 한국이나 다른 부유한 국가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잘 먹어야 하고, 깨끗한 물을 마셔야 하며, 아플 때 적절한 치료약을 먹고 병이 나아야 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이런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이 낙후된데다, 정치는 거의 예외를 찾을 수 없이 부패해 있어 아이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박탈 당한 것이다. 국제구호단체가 나서서 부유한 국가들의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선의를 구하고자 발벗고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한국의 아이들은 어떨까? 우리 아이들은 부모들의 어긋난 출세욕으로 인해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부터 경쟁체제에 내던져저 생존경쟁을 강요 당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불쌍하다고, 그래서 적선하듯 하지는 말자. 앞서 지적했듯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할 뿐이다. 이 아이들이 빼앗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나누자. 오병이어의 기적은 나눔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