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작지만 위대한 하나의 힘

남아공 인종차별 고발한 <파워 오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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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다음 영화)
▲'파워 오브 원' 주인공 PK는 기엘피트와 권투를 통해 우정을 쌓는 한편, 흑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은 착취와 차별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다. '록키', '베스트 키드'를 연출한 존 애빌슨 감독은 1992년作 <파워 오브 원>(원제 : The Power of One)을 통해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고발한다.

주인공 PK는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이 횡행하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반기를 든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의 설정이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왜 백인이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논리가 아주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또 다른 인종적 편견에서 기인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PK는 영국계 백인이었다. 그는 백인이면서도 멸시당하는 처지다. PK는 유년 시절 독일계 학교에 다녔는데, 대다수 아프리카너 학생들은 PK를 증오했다. 아프리카너들의 증오감을 이해하려면 잠깐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아공으로 이주한 독일, 네덜란드계 백인들은 자신들을 ‘아프리카너'라고 불렀다. 이들은 새로이 정착한 아프리카 땅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도 아프리카너들은 조상들의 나라인 독일이나 네덜란드 보다 자신들이 나고 자라난 아프리카를 고향으로 여긴다.

아프리카너들은 영국을 증오했다. 영국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 전쟁을 ‘보어 전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다이아몬드의 진짜 주인은 남아공의 원주민들이다. 그럼에도 백인들은 원주민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다이아몬드에 혈안이 돼 자신들끼리 편을 갈라 싸움질을 일삼는다. PK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남아공의 현실에 내던져진 셈이다.

어느 면에서 PK 역시 박해 받는 약자다. 그나마 피부색이 하얗기에 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을 뿐이다. 지금도 남아공에서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보이지 않게 횡행한다. 백인들이 으뜸이고, ‘칼러드'라고 불리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 그 다음, 그리고 ‘순수한' 흑인이 맨 아래다.

PK는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에 남다른 애정을 가져왔다. 그는는 성장과정을 통해 서서히 백인들끼리 싸움질이 난무하고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을 떠간다. 그는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흑인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잠깐 남아공의 정치를 살펴보자. 주류 백인들은 약삭빠르게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흑인들에게 권력을 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 흑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선뜻 권력을 내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흑인 입장에서도 부를 틀어쥐고 있는 백인들을 완전히 배척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백인들의 야수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해 각인된 분노와 원한을 누를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넬슨 만델라는 이런 딜레마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어떤 정치적 보복도 없을 것이라며 백인들을 설득했다. 또 남아공의 대다수 종족인 줄루족 출신으로 강경노선을 표방한 부텔레지도 끌어 안으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넬슨 만델라의 정치적 노력은 인종간 화합이라는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PK는 피부색과 무관하게 인종간 화합을 이루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단지 피부색을 이유로 PK의 역할을 부정하는 건 반대편 극단에 선 인종주의일 것이다.

이 같은 논란과 별개로 PK가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떠가는 과정, 그리고 아프리카너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장면은 큰 감동을 준다. 또 중간 중간 흐르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어린 PK가 그야말로 ‘온 몸으로' 흑인 합창단을 지휘하는 장면이다.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는 비겁한 바보들

영국과 독일이 전쟁을 벌이자 아프리카너는 독일 편에 선다. 이러자 영국군은 PK를 수용소에 감금한다. PK가 독일계 할아버지를 뒀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수용소에서 흑인 기엘피트(모건 프리맨)를 만나 그에게서 권투를 배운다. 그는 기엘피트를 통해 흑인들의 처지에 눈을 떠 나간다. 이런 가운데 수용소측에서는 고위 관리를 위해 음악회를 준비한다.

이 소식을 들은 PK는 이 음악회를 통해 흑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곡을 작곡한다. 기엘피트는 노랫말을 맡는다. 흑인들은 PK가 작곡한 곡을 듣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이러자 한 백인간수는 기엘피트를 두들기며 곡 내용을 캐 묻는다. 기엘피트는 고문에 못이겨 노랫말 내용을 실토한다.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는 겁많고 비겁한 바보들...."

백인 간수는 이에 격분해 결국 기엘피트를 죽이고야 만다.

악명 높던 인종차별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남아공의 부는 여전히 백인들의 수중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몇몇 흑인들은 부유해졌지만, 이들의 부는 사실 부패로 쌓았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흑인들은 가난하고, 차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신약성서 요한복음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돼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복음 12장 24절(현대인의 성경)

이 영화의 제목인 은 요한복음의 말씀에 담긴 모티브와 일맥상통한다. 가난, 그리고 질병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에 백배천배 선한 결실을 맺어 줄 작은 밀알 하나가 아쉬운 시점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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