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설교] 성령과 하나님 나라(요 3:1-8)

2015년 10월 18일 높은뜻 정의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동호 목사

kimdongho_0107
(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김동호 목사

성경본문

(요 3:1-8)

설교문

어느 날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관원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하신 선생 즉 랍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자신의 그와 같은 생각을 예수님에게 고백하자 예수님은 조금은 엉뚱해 보이시는 말씀을 니고데모에게 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까닭은 니고데모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였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표적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와 같은 기적과 표적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으로 거듭남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 즉 랍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관원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신분과 지위에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보실 때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정확하고도 깊은 통찰력을 가지지는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니고데모를 통하여 오늘 날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대개 니고데모와 비슷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지만, 헌금도 하고, 열심히 봉사도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그냥 대충만 알고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큰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바라고 기대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이 행하신 그리고 행하신 기적과 표적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 덕분에 그와 같은 표적과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 건강하고 형통하며 배고프지 않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건강하고. 부자되고, 하는 일이 다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수 천 수 만, 아니 수 십 만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바로 니고데모 수준의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다른 세상 사람들보다는 좀 낫지만, 그리고 예수님께 대하여 우호적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정확하게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이유와 목적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고 싶으셨고, 들여 보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 째로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첫 번 째 기도와 간구를 '나라이 임하옵시며'이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표적이 따를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배고프지 않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요하게 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크게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친 가난과 병듦은 우리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불행이 아니라 그냥 불편한 것이라고는 치부할 수 없는 가난과 병듦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 불쌍하셔서 저들을 고쳐주시고 먹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불행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불행하지 않음이 곧 행복은 아닙니다. 행복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좀 나아졌다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참 가난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제가 설교 중에 자주 말씀드리지만, 학교 수위셨떤 우리 아버지 월급은 쌀 한 가마 반 값이었습니다. 지금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보니 30만 원 미만이었습니다.

여러분 30만 원으로 세 식구가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매월 30 만원이 꼬박 꼬박 들어 온다면 살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는게 아니라 죽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삶을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하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정말 죽지 못해 살만큼 가난했었습니다. 69년도 세운상가에서 점원 노릇을 할 때 제 월급은 만 원이었습니다. 월급을 받아 소니 FM 라디오 한 대를 사고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릅니다. 77년도에 결혼을 하고, 78년 도에 집에 처음으로 전화를 놓았습니다. 청색 전환가 백색 전환가 사고 팔 수 없는 전화를 일 년 넘게 기다려 놓았습니다. 집에 전화를 놓고 그렇게 기뻤었습니다.

58년도에 처음으로 집에 전기가 들어와 백열등을 켰을 때 기뻤습니다. 그 전에는 저희 집도 석유 호롱을 켰었습니다. 석유 많이 닳는다고 심지도 많이 높이지 못하였고, 날마다 석유 끄으름으로 검어진 유리 호롱을 조심스럽게 닦던 생가도 납니다. 지금 우리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이 돕고 섬기고 있는 말라위 수준이거나 그 밑의 수준이었을 겁니다.

78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임전도사가 되어 교회로부터 받았던 생활비는 7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제 아내의 봉급은 저의 꼭 두 배였습니다. 그래 봤자 13만 5천 원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한 나라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불과 5-60년 만에 우리나라처럼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세계 몇 안 됩니다. 옷 장에 옷이 넘쳐납니다. 신발장엔 신발이 넘쳐납니다. 냉장고에도 음식 하나를 더 넣을 수 없으리만큼 전엔 맛도 볼 수 없었던 음식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들이 전보다 더 행복해 진 것은 아닙니다. 전에 우리는 정말 불행하리만큼 가난했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난의 불행에서 보편적으로 볼 때 성공적으로 탈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행복해 진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행복은 불행하지 않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행으로부터 탈출하였다고 그것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형통과 부요함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하보다 크고 귀하기 때문에 우리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천하는 그것을 다 얻는다고 하여도 우리를 채울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일에 전무후무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은 그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쾌락이 자신에게는 마치 강물이 연하여 다시 말해서 끊이지 않고 흘러 들어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채우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와 같은 것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채우고 만족하고 행복하려고 하였던 모든 일들이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함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그 욕심이라는게 우리와 우리의 삶을 참 우습게 만듭니다. 바보스럽게 만듭니다.

마셔도, 마셔도 목마를 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르게 못할 것에 집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안타까우심이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

목사로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제법 큰 교회를 목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를 더 훌륭하게 한 것도 아니고, 더 목사답게 한 것도 아니고, 더 사람답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유한 삶이 싫진 않았지만 거기에 목을 매고 싶을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서 떼어버려야 할 비계 덩어리 같아졌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떼어 버리고 줄이려고 합니다. 당장 내년에 은퇴하면 연금으로 생활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매월 월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총회연금재단에 문제가 생겨서 이번달 연금지급을 못했다고 합니다. 잘 해결이 되지 않고 연금재단에 문제가 생겨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조금은 막막하게 될 겁니다.

만에 하나 정말 어렵게 된다면 저는 지하철 택배라도 할 작정입니다. 아마 제가 지하철 택배를 해야하리만큼 어려워지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많이 가난해 질 겁니다. 저는 내심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삶이 단순하고 깨끗하고 건강해 지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많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떼어 버릴 겁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서 그것은 이미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큰 비계 덩어리를 떼어 냈지만 아직도 제겐 정리해도 될 만한 불필요한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제법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제법 성공적인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람과 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내려 놓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보는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내 삶에 일어났던 정말 표적과 기사와 이적과 같았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김동호에 집착하고 몰두하고 싶습니다.

좀 더 말씀을 깊이 묵상 하고, 그 말씀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 그거 잘 할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매일 성경 한 장 씩을 읽고 설교하기 위하여 새벽기도회 전 조금 일찍 일어나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기가막혔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책도 썼었습니다.

제게는 예배 잘 드리는 은사가 있습니다. 설교 잘 듣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 동안 목사로서 예배 잘 드리게 하고, 설교 잘 듣게 하기 위하여 살았습니다. 이젠 성도로 돌아가 예전처럼, 청년 때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그 예배의 감격에 빠져 살고 싶습니다. 기도하다 울고, 찬송 부르다 울고, 말씀 듣다 울고 하는 삶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제 삶엔 기적이 많았습니다. 지금 제 삶은 제가 꿈도 꾸지 않았던 삶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만족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최선을 다하여 그와 같은 것들을 벗어 버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믿어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보일 겁니다. 볼 뿐만 아니라 들어가게 될 겁니다. 들어갈 뿐 아니라 그 나라의 시민이 되고 백성이 될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과 백성을 넘어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겁니다. 저는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살고 싶은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줄여 할 재산과 돈은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제 삶의 목표는 분명해졌습니다.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가 제게는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를 살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살게 하는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저 이상의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여러분 삶에 나타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 니다. 그러다가 그 기사와 이적과 표적에 집착하게 되고, 그 때문에 정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의 삶을 오히려 잃어버린 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다 보니 그것 때문에 영적 비만 상태가 되고 동맥경화증이 생기고 당뇨가 생긴 분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 높은 뜻 정의교회는 트리플 서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트리플 서티 운동의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였습니다. 트리플 서티 운동은 30년 동안 공부하고, 30년 동안 돈 벌고, 30년 동안 잘 쓰다 죽자는 운동 아닙니까?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연습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딴 세상이 보일 겁니다. 니고데모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가 보이게 될 겁니다. 성령과 하나님 나라.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의 이적과 표적을 넘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보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욕심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만인·만유구원론 보다는 천국, 지옥 복음 선포해야"

칼뱅의 이중예정론의 결과인 이중심판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되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성서 신학적으로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