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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2016년 2월 7일 강남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junbyungkeum
(Photo : ⓒ베리타스 DB)
▲강남교회 전병금 담임목사

성경본문

(골로새서 1장 9-14절)

설교문

미국이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160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이 후 흑인 노예의 수가 증가하여,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던 1776년까지 약 50만 명의 흑인이 미 대륙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미국의 노예 수요는 더욱 증가하였는데, 특히 대규모의 담배와 목화 농장을 경영하던 남부의 농장주는 보다 많은 노예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로인해 백인들에 의한 흑인 노예 사냥은 더욱 극성을 부려, 1860년 미 대륙에는 400만 명의 흑인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흑인 노예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왔다는 백인들은, 이율배반적이게도 비신앙적인 노예제도를 통해 비인간적인 죄를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마음에 안 들 경우,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 죽이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했으며, 백인들로부터 동물취급을 당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마치 물건처럼 시장에서 매매되었습니다. 심지어 흑인 노예가 결혼해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해도, 백인 주인 마음대로 남편이나 아내, 혹은 아이를 각기 다른 곳에 팔아 한 가정을 뿔뿔이 찢어 놓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청교들이 건설한 미국의 추악하고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를 금지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중심적인 인물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한번은 아브라함 링컨이 청년시절 뉴올리언즈 지방을 지나면서 노예시장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링컨은 한 가족이 각기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남동생이 서로 갈라지면서 목을 껴안고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가슴아픈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어떻게 저 흑인들을 자유롭게 살게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군가 고통당하는 광경을 보면서 동정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단순히 값싼 동정심에 머물지 않고, "노예해방"을 위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미국의 대통령에까지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노예해방"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도전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남부 농업 지역은 노예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였기 때문에, 투표권이 있는 국민들이 그를 지지할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링컨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불굴의 의지로 밀고 나갔습니다. 마침 미국의 북부 공업 지역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링컨의 노예해방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결국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승리하여, 1865년에 미국의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링컨은 남부 연맹의 지지자의 흉탄에 암살을 당하고 말았지만, 미국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이루어 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링컨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을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기는 것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와서 골로새교회에 대해 여러 가지 보고를 했는데, 그 중에는 부정적인 내용도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세상의 초등학문"(골 2:8)을 퍼트리는 이들로 인해, 어지럽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편지를 통해 그런 자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등학문"은 "스토이케이아"인데,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기초학문' '기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는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데, 철학(8절), 율법주의(16절), 천사숭배(18절), 금욕주의(21절) 등을 말합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앙의 중심에 두지 않고, 세상적인 철학과 사상을 교회에 퍼트리면서 교회를 혼란에 빠트렸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교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신령한 지혜를 얻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신령한 지혜는 세상의 기초적인 학문에 머물러 하나님의 뜻을 축소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령한 지혜를 얻어야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라고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적 가치관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것 데까지 성숙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단순히 성경 구절을 더 많이 암송하고, 신학적 지식을 쌓는, 지적인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안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과수원을 하는 사람은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기뻐할 것입니다. 영종도에 있는 저희 집에도 아내가 심어놓은 과실수가 몇 그루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무화과 나무도 있는데, 어느 날 잘 익은 무화과 열매 하나를 따서 주길래 먹어 보았더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언제 또 열매가 열릴까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지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심어 주신 구원의 씨앗을, 하나님의 내려 주신 진리의 빛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의 생명수로 잘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고, 그 성과를 체험하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행함으로써 진리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참된 진리는 언제나 이 두 가지가 병행됩니다. 곧 밖으로 선한 열매를 맺는 동시에, 안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무미건조한 식견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을 일으키는 진정한 지식입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일에 대한 원리는, 지식에 반드시 선행이 수반되고, 그 선행이 실천됨에 따라 다시 그 지식이 자라나게 되는 순환구조인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더욱 많은 물이 고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8)고 하셨습니다.

이를 야고보서 식으로 표현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지만(약 2:17, 26), "행함이 있는 믿음", "실천이 따르는 믿음"은 엄청난 삶의 역동성을 가져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운동도 이런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을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마냥 편하기만 하고, 쉽기만 한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고난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다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면,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대응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공급됩니다. 그 능력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11절)라고 한 것처럼, 이 능력은 오직 하늘로부터만 오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력 있게 만드는 목적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11절) 라는 말씀처럼, 그 모든 고난을 견디며 참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환난과 핍박 중에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라고 했습니다.

그는 환난 중에도 인내할 뿐 아니라, 소망을 가지는 백전불굴의 지조로 매진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어떤 환란도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원수를 오래 참음으로 대했고, 은혜를 배반한 자에게 대해서도 끝까지 자비로 대했습니다. 말 그대로 어떤 고난도 오래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또 바울은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 1:12)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할 이유는,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을 예비하시고 또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성도를 준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입니다(엡 2:1).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창세전에 준비하셨습니다(엡 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생명의 세계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예비하신 기업을 얻게 하시려고 성도의 자격을 구비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 온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같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나같이 아무 가치 없는 것을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 뜻대로 살고, 내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못자국난 손을 바라봐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부르시는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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