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죄를 죽이는 3 단계

Matt Moore
(Photo : ⓒ Matt Moore blog)
▲ 2010년 동성애자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변모한 맷 무어. 그는 동성애자들이 자신과 세상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서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마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죽이기 위해 할 일은 없다고 믿는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도 전적으로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 사람들이 말하듯이 수동적이거나 신비스러운 것일 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죄를 죽이는 문제에 관해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행하셨다는 사실적 정보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난 존재(롬6:11)인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살아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지체가 옳지 못한 일의 도구로서 죄를 짓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롬6:13).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속의 죄스러운 것을 죽여야 하고(골3:5) 새로운 자아를 입어야 한다(골3:10). 이러한 반응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이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우리가 '행동하도록' 추동하는 끔찍하게 부적절한 동력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두려움에 대해서 말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의 사랑의 확실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공포 속에서 산다.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죄를 피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나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갖고 있어서 그분의 진노가 내 인생의 어느 구석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내가 죄를 지으면 나를 휩쓸고 지나가버릴 것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친구들이여,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예수께 의탁하면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진노의 심판관으로 군림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죄악에 대한 그분의 분노는 예수의 머리위에서 단 한번으로 영원히 소진되어 버렸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여느 아버지가 그렇게 하듯이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진정시키시며 우리에 대해 크게 노래하며 의기양양해 하신다(습3:17). 그분은 우리를 은혜의 터로부터 쫓아내기 위해 초조하게 자신의 의자 끝머리에 앉아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빈틈없이 안전하다.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존경, 경외, 경모심)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필요한 감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셔서 아버지가 되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할 때, 우리는 반(反)복음적인 두려움 속으로 건너가게 된다. 만일 여러분이 나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반복음적인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고 순종하고자 노력한다면, 유혹에 대한 승리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움은 비효율적인 동력인 것이다.

나는 성경이 기쁨에 근거하여 믿음을 따라 성령이 힘주시는 과정 속에서 육체와 싸우는 길을 실제로 제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너무나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이 들리겠지만, 다음에서 보다 명확하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것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1. 죄를 죽이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힘과 기쁨을 필요로 한다.

요한복음6장63절에서 예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8장13절은 우리가 성령으로써 죄를 죽인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갈라디아서5장18절은 우리가 성령과 동행하면 육체의 소욕을 좇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존 파이퍼 목사는 우리가 죄 속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정복하는 길은 하나님 안에서 더 크고 더 좋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수백만 번이나 말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 즐겁게 순종하게 하는 힘을 갖고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경에는 이렇게 답이 나와 있다: 믿음에 의해서 역사하신다.

2.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 삶에 충만하게 역사하신다.

"믿음"은 우리 문화권에서 온갖 종류의 의미를 담고서 남용되어온 용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믿음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과 그분의 약속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3장2-5절은 우리가 처음에 믿음을 통해 성령을 받게 되면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계속 공급하여 주신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에서 믿음은 성령의 힘이 전달되는 통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수록 성령이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는 것이 더 확실해지게 되어 있다. 나는 우리가 순종하며 살고자 노력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이 약하고 흔들린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살펴봐야 할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강해지는가?"이다.

3. 믿음은 말씀을 묵상할 때 강화된다.

로마서10장17절에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썼다. 나는 이 말씀에서 복음을 접하는 것이 믿음의 불을 붙이고 강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목사님이나 선생님들을 통해서 나의 믿음이 약해지면 복음과 대면하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성경을 읽어라. 설교를 들어라. 신앙서적을 읽어라. 다른 신앙인들과 만나서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라.

내가 신앙이 약해진다고 느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갈 때마다 나는 내가 믿기 시작하기까지 믿기가 너무 힘들었던 진리를 마음껏 즐기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러면, 놀랍게도, 효과가 있다! 나의 마음을 예수께 집중하게 되면 나의 가슴이 점점 더 그 분이 성경에서 말하는 분이시며 그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여러분은 내가 이 절차 가운데 "기도"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도가 이 과정의 모든 절차에 반드시 스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푹 젖어 있을 때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시고 이해할 마음을 주시기를 항상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주시길 항상 기도해야 한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시기를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11장11-13절의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은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 속에 가득 채울 때 우리의 믿음이 강해진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질 때 성령의 힘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더 자유롭게 흘러간다. 성령의 운동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더 분명히 드러날 때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기쁨이 커진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기쁨이 커질 때 죄에 대한 기쁨은 감소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께 대한 신실한 복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힘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나는 이것이 육체와 싸우는 복음적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행위에 기반한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의지력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로지 성령에 의해서만 구동된다.

글/ 맷 무어(Matt Moore)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3-steps-help-kill-sin-156772/#2G5xUjZcCZSYvpY8.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만인·만유구원론 보다는 천국, 지옥 복음 선포해야"

칼뱅의 이중예정론의 결과인 이중심판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되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성서 신학적으로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