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잭맨은 한국 사랑이 남다른 배우다. 그는 지난 3월7일(월) 신작 <독수리 에디> 홍보차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06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이후 다섯 번째 나들이다. 방문 회수로 따지면 톰 크루즈(7회) 다음이다.
그는 방문 때 마다 한국 팬에게 멋진 팬 서비스를 선사했다. 2006년 첫 방문 때다. 당시 그가 입국했던 시점은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이 토고와 첫 경기를 가졌던 직후였다. 그는 기자 간담회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대 토고 경기를 보느라 잠을 못 잤다. 호주와 한국이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3년 뒤인 2009년, 그는 한국계 배우인 다니엘 헤니와 함께 <엑스맨 탄생 : 울버린> 홍보차 다시 내한했다. 휴 잭맨은 방한에 앞서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회견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회견은 남산 한옥마을 한국의 집에서 열렸다. 휴 잭맨이 몇몇 후보지 사진을 검토한 뒤 직접 이곳으로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소감을 밝혔다.
"이곳 한국의 집에 오게 된 일은 의미가 크다. 여기엔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여성분들이 많다. 어린 시절 여동생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 휴 잭맨은 단련된 몸매를 과시한다. 그는 "갈비를 먹으며 몸을 만들었다"며 "촬영이 끝났지만 매주 한 번씩 (갈비를) 즐긴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 영화 관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말도 덧붙였다.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출신 감독의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 아버지도 좋아하실 것 같다."
여기서 아버지를 언급한 대목에 주목하자. 그가 한국에 친근감을 갖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열쇠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 스스로 "아버지가 사업차 1년에 두 달 이상은 한국에 머물러 한국과 친숙하다"고 했다. 한국 팬들의 열렬한 성원은 한국에 대한 애정을 더욱 깊게 해줬을 것이다. 그 스스로 한국을 찾을 때 마다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팬들이 따스하게 대해줬다"고 고백했으니까 말이다.
이름 보다 ‘울버린'으로 더 잘 알려진 스타
휴 잭맨은 이름 보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로 더 친숙하다. 2000년 <엑스맨> 1편에 출연한 이후 2014년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까지 14년 동안 줄곧 울버린 역을 맡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한 배역을 오래 연기하다 보면 이미지가 굳어지기 마련이다. 007시리즈에서 초대 제임스 본드를 맡았던 숀 코네리는 이후 본드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88년 <언터처블>의 지미 말론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명연기자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휴 잭맨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는 방한 일정 중 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6, 7년 전쯤 어떤 한 가지 모습에 한정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유형의 인물도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울버린이란 한 캐릭터를 오래 맡은 것이 도움됐다."
그는 ‘울버린' 캐릭터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2004년 스티븐 소머즈의 <반헬싱>, 2006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넓혀나갔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연기는 2010년을 기점으로 무르익었다고 보고 싶다. 특히 2011년 작 <리얼스틸>은 언제 봐도 좋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한때 촉망 받던 복서였다가 챔피언 도전에 실패한 뒤, 오로지 ‘대박'만 쫓는 로봇 복싱 프로모터 찰스 켄튼 역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로봇들이 격렬하게 권투시합을 벌이는 와중에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은 무척 불편하다. 그러나 주인공 찰스가 로봇 복싱을 통해 깨어졌던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잃어버렸던 챔피언의 꿈을 되찾은 과정은 무척 감동적이다. 링 뒤에서 가상의 상대를 향해 힘차게 주먹을 뻗는 휴 잭맨의 연기는 지금 떠올려도 짜릿하다.
신작 <독수리 에디> 역시 휴 잭맨의 따스한 인간미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스키점프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에디 에드워즈의 도전을 그린 영화로, 이 작품에서 그는 에디의 코치인 브론슨 피어리 역을 맡았다. 브론슨 피어리는 가상 인물로 한때 미국 국가대표를 지냈으나 팀에서 쫓겨난 뒤 술로 쩌든 인생을 보낸다. 그러다 에디를 만나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 잘 나갔던 스포츠 선수에서 삼류 인생으로, 그러다 삶을 회복하는 브론슨 피어리는 자연스럽게 휴 잭맨이 <리얼 스틸>에서 연기한 찰스 켄튼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번 방한에서도 한국팬에게 변함 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이다.
"사실 난 호주인이기 때문에 스키점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중략) 그러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스키점프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한데 이 스포츠만의 매력이 있다. 그 매력에 빨려 들어갈 정도였다. 2년 후 한국에서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것으로 안다. 직접 가서 스키점프 경기를 보셨으면 좋겠다. 얼마나 웅장하고 멋지고 흥분되는 스포츠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국을 떠나면서는 영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손편지를 팬들에게 전했다. 기자는 그를 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날때마다 헐리웃 배우라기 보다 잘 알고 지내는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다시 그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 느낌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