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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호산나를 부르는 사람들

2014년 4월 13일 경동교회 종려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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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54:7-10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노아 때에,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내가 약속하였다. 이제, 나는 너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너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 너를 가엾게 여기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아멘.

빌립보서 2:5-11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12:12-19

다음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보시고, 그 위에 올라타셨다. 그것은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과 같았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네 임금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이것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그에게 그렇게 대하였다는 것을 회상하였다. 또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사로를 불러내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을 증언하였다. 이렇게 무리가 예수를 맞으러 나온 것은, 예수가 이런 표징을 행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아멘.

설교문

오늘은 호산나를 외치는 종려주일입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던 것처럼 예수께서는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5일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다음 주일 새벽에 부활하십니다. 죽음을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왕, 온 백성의 왕이 오늘 입성하십니다. 사람들이 이 왕을 보고 호산나하며 환영합니다. 호산나는 오늘만 외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축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항상 불렀습니다. 호산나는 주님, 우리를 살려 주세요.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세요 라는 뜻인데 이 말을 우리의 언어로는 "만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백성들이 오늘 예수를 환영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인 요한복음에 보면 호산나 외칠 때 두 가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라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고 할 때 이 말은 하나님 찬양하자는 뜻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가 구원받고 기뻐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소서라는 말이며, 이 뜻이 호산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 하나님은 당연히 영광 받으십니다. 저에게 복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보다 하나님 영광 받으십시오 하는 기도가 훨씬 차원 높은 인간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정말 구할 기도가 있으면 간구하기 전에 하나님 영광 받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온 백성에게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분의 이름이 메시아입니다. 백성들은 메시아로 오신 그분에게 복 받으세요, 영광 받으세요, 우리를 구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민족적으로, 정치적으로 한 분의 메시아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분은 다윗 임금입니다. 다윗 임금 때처럼 지금 우리의 로마 식민지를 거두어 주시고, 자유도 베풀어 주시고, 독립도 주시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백성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라는 말 속에 자신의 두 희망을 모두 표출합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메시아 오시는 이야기이며,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이야기입니다. 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구약은 메시아, 신약은 그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신구약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구약시대에는 메시아로,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호산나 메시야, 호산나 그리스도! 이 두 분은 그분들이 하신 구원의 일을 통해 우리에게 영광 받으십니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아 이야기를 잘 모아놓은 책이 오늘 함께 봉독한 이사야서입니다.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은《메시아》를 작곡할 때 이사야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사야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뺀 예수님의 이야기를 압축적이지만 아주 장엄하게 써 놓은 기도형 시입니다. 물론 다른 성경구절도 많이 있습니다만 특히 이사야서는 압축된 구절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마도 헨델이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을 받고 이사야를 대본 삼아서 메시아 곡을 썼을 것입니다. 이 곡은 오라토리오 대서사시입니다. 출생 이야기, 고난 받은 이야기, 죽지 않고 살아서 승리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메시아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면 헨델의《메시아》듣고 감동 받으십시오. 아주 훌륭한 해설서라고 생각합니다.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의 희망은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시면 당신은 영광 받으십시오 입니다. 이사야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잠시 너희를 버렸지만 내가 큰 은혜를 베풀어 너희를 감싸 안겠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간다. 이 이야기가 호산나를 외치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아가 오시면 백성들에게 어떤 구원을 베푸실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임신을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있느냐. 얼마나 힘들고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살기가 고통스럽냐. 염려하지 마라. 해산의 수고를 경험하지 못한 여인들아 너무 고난 속에 빠지지 마라. 너희들은 엄청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을 것이다. 메시아가 너희를 버린 남편이 아닌 너희를 용서하고 끌어안을 새로운 남편을 주신단다. 아니 메시아가 그대들의 남편이 대신단다. 그 메시아의 이름은 전능하신 주님이시다.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만 가지고 괴로워하지 말고, 침체되지 마라. 하나님 메시아의 역사는 세상의 관습을 넘고 세상의 뜻을 넘어서는 기적과 같은 기쁨의 역사를 만들어 주신다. 이사야 선지자가 다시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오시면 불쌍한 여인도, 계모가 자식을 죽이는 것과 같이 아이를 낳고 죽이는 세상에서 죽어가는 모든 불쌍한 아이들이, 불쌍한 여인들이, 아니면 종족주의 때문에, 여러 어려움 때문에 짓밟히는 수많은 남성, 청년, 노년 모든 사람들이 메시아가 오시면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구원을 받는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그 사람의 남편은 하나님이시고, 그 사람의 아내도 하나님이시며, 그 사람의 자식도 하나님이시 때문이다. 하나님이 메시아란 이름으로 오셔서 세상을 완전히 구원하신다. 그 메시아 오심을 기다립니다. 메시아 신앙은 이렇게 싹텄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야 당신에게 복이 있으며,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은 주일입니다. 이틀 전 예루살렘에서 걸어서 한 시간쯤 되는 거리에 있는 베다리라는 동네에서 예수께서 큰일을 벌이셨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를 사모했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던 곳으로, 그 가족의 버팀목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가족이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온 동네도 슬퍼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나사로의 죽음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나사로는 죽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지금 자고 있다. 그 영광을 보여주마. 예수는 나흘 동안 무덤 가운데 있었던 나사로를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나사로가 무덤을 통해 나옵니다. 과부에게, 어린자식에게,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남편이 되어주고, 아버지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 예수를 통해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이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온 소문이 세상에 퍼졌을 것입니다.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던 예루살렘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구약의 예언을 아는 사람들, 베다니 기적의 사건을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메시아로 등극하는 예수를 맞습니다. 그 메시아를 맞기 위해 가장 최고의 선물인 종려나무 가지를 길바닥에 뿌립니다. 메시아인 당신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 받으옵소서. 그 사람들은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 망해 가는 나라도 사시 세우시는 분, 무너진 집도 다시 세우시는 분입니다. 슬픔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베다니에서 있었던 사건이 사람들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또 하나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만 구하지 마시고, 우리나라를 구해 주십시오. 우리 민족도 구원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다 흩어져있을때 다윗 임금을 통해 통일왕국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윗 왕의 자손인 당신이 오셔서 이 땅에 평화를 주옵소서. 독립을 주옵소서. 자유도 주옵소서. 두 가지 기도의 제목이 오늘 호산나 외침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호산나는 기도입니다. 삶의 외침입니다. 호산나는 희망의 결집입니다. 호산나, 이 땅을 하나님나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께서는 이런 희망을 갖고 오늘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승전가를 부르며 말을 타고 오셔야 하는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마병을 이끌고 승리한 장군처럼 큰 기마를 타고 오셔야 하는데 메시아는 그런 식으로 오지 않으십니다. 말 대신 어린 나귀를 타고, 투구와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 아닌 허름한 옷을 입은 작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그 모습을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훌륭하고 전지전능하시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그걸 버리고,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오셔서 가장 못생긴, 가장 낮은,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가장 아파하는 사람의 모습이 되셔서 오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메시아는 사람의 옷을 입고 오셨습니다. 높은 곳에 계시지만 아주 낮은 사람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그 메시아인 예수가 아주 힘없는 사람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 당시 두 가지 희망을 말했습니다. 혹시 입성하셔서 목표지점이 예루살렘 성전입니까, 아니면 로마 제국의 총독이 살던 안토니오 궁전입니까? 백성들의 희망은 메시아가 오셔서 왕권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선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젤롯당 출신인 가롯유다의 희망은 예수께서 왕국을 향해서 갈 것이고, 완전히 뒤집을 것이며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라 실망해 예수를 팔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전으로 가 완전히 뒤집고, 썩어빠진 교회, 썩어빠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말만 있고 실행이 없는 집, 장사꾼으로 바뀐 타락한 성전을 완전히 뒤집고 새로운 성전으로 만들자. 둘 중에 한 곳으로 갈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두 곳 모두 갔습니다. 궁전으로 가 빌라도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궁전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궁전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도 들어가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셔서 도둑들아 하고 소리치면서 성전을 다 뒤집고 나서 내가 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시며 성전을 엎은 것이 아니라 말만하고 나오셨습니다. 메시아로 등극한 예수는 예루살렘 성안에서는 가실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 밖으로 쫓겨나 해골이라 이름하는 골고다 언덕에 올라 가셨으며 그곳이 종착점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침 뱉음을 당했습니다. 옆구리에 창도 찔리셨습니다. 피로 흘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진실은 가장 낮은 자가 가는 가장 처참한 죽음의 현장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이며, 이분이 메시아입니다. 백성들은 얼마나 실망해 겠습니까. 메시아를 맞았던 종려주일의 첫 출발과 예수께서 죽으신 골고다 언덕에서의 마지막 메시아, 두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두 모습이 똑같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사람과 똑같은 운명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운명, 즉 죽음을 같이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벗어나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과 똑같은 운명으로 함께 고난 받아서 사는 사람,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지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적이 다시 생겨납니다. 죽은 자를, 사람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를, 아픔의 역사를 다시 뒤집어엎으시고 부활의 새 역사를 만들어 주십니다. 부활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계획하십니다. 죄 된 인간으로는 죄를 다 없애지 않고는 그 인간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줄 수 없다. 안토니오 궁전이, 로마 궁전이 굉장하지만 죄악과 불의가 있는 곳에는 죄악과 불의를 없애지 않고서는 그 곳에 하나님나라를 만들 수 없다. 성전이 귀중하지만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아니라 교권에 매이고, 부정에 매이고, 쓸데없는 것에 매이는 교회는, 성전은 하나님 나라 성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무너뜨려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인간의 진심 속에 하늘 씨앗을 뿌릴 수 있지만 그 씨앗도 옥토에서만 자란다. 딱딱한 땅, 죄로 묶인 곳에서는 자랄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늘나라 세우고 청소하시려고, 성전을 정화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서 역사의 부조리를 다 없애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메시아 왕국은 그곳에만 세워집니다. 십자가는 모든 인간에게 메시아 왕국의 주인이 되게 하시려고 대신 죄악을 지시고 없애 주셨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로마제국을 포함한 온 세상의 불의한 권력을 없애주시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려고 십자가에서 궁전도 끌어안고 죽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타락한 성전도 끌어안고 죽으셨습니다. 죽으시고 완전히 판을 바꾸어서 바뀐 판 속에 용서 받은 인간, 용서 받은 국가, 용서 받은 체제에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웁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골고다 언덕이고, 그곳에서 죽고, 모든 바탕을 새롭게 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뜻하시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어떤 호산나를 외치고 싶으십니까? 진실로 구원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세울 마음 속 깊은 곳에 바탕을 새로 마련하십시오. 예수님 말씀이 회개함 없이 하늘나라는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없애지 않고 그곳에 새로운 선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사항 일뿐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나는 사람이 되어, 세상이 되어, 자연이 되어 온 세계 현실이 이 땅에 왔다. 함께 죽자.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그대들 속에, 내 속에, 온 세상에 세우자. 그것이 부활의 선물입니다. 오늘 부활의 나라 원하시지요. 부활의 축복 원하시지요. 이를 위해 버릴 것은 버립시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읍시다. 없애 것은 없애시다. 그리고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세상, 새 사람을 통해서 부활을 주신답니다. 그것을 선물로 받으십시다. 온갖 질병도 내려놓읍시다. 새로운 치유의 역사도 받읍시다. 새 것,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새롭게 결단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만납시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 금주 내내 회개하고, 주일날 함께 모입시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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