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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주님과 세계의 부활

2015년 04월 05일 경동교회 부활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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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사무엘기상 2:1-2, 6-8

한나가 기도로 아뢰었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하셨으므로, 내 기쁨이 큽니다.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 아멘.

고린도전서 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16:1-8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아멘.

설교문

오늘 우리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부활에 동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축복받은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하나님의 첫 번째 선지자로 모신 이스라엘은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 어머니인 한나를 통해 사무엘 선지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낳은 어머니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나는 아주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셨다"고 감격해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임직했습니다.

다윗 왕의 가계에서 새로운 메시아가 등장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분은 선지자의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왕손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시고, 분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를 이 땅에 그리스도로 보내셨습니다. 아기를 탄생한 마리아는 한나처럼 위대한 찬양을 부릅니다. 그 찬양은 누가복음 1장 46-55 절의 마리아 찬가입니다. 구약의 한나의 찬가(사무엘기 상 2: 1-10)와 신약의 마리아 찬가는 구원의 역사를 알리는 노래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모두지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탕감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오늘은 그 분의 부활을 통해 그 분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상,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만든 부활절 아침입니다. 이 부활절 아침, 누가 제일 먼져 부활하신 예수를 맞이했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훌륭하던 베드로도, 좌우로 앉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던 야고보와 요한도, 나머지 열한 제자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이 아침 부활하신 예수를 맞이한 사람은 세 명의 여성입니다. 세 명의 여성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라는 여성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부패할까봐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골고다 언덕은 분노, 공포, 좌절의 집산지 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곳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안다고 발각이 되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제자도 십자가 앞에 오지 못했습니다. 아니, 십자가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 분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그리고 무덤에 묻히실 때까지 운명을 같이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세분의 여성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이 분들만 예수의 죽음을,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시신이 썩을까봐 오늘 아침새벽 일어나 무덤으로 갔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구약의 첫 선지자를 낳은 한나, 예수를 탄생한 마리아, 그리고 마지막 부활의 증인된 세 사람이 모두 여성입니다. 왜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나요?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사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인들아 왜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살아나셨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부활한 몸을 보여주시고, 만나서 얼싸 안으며 "내가 부활했다"고 이야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몸을 보이시고, 가서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끌어안았던 모든 세상도 십자가에 함께 못 박고,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 그 자체입니다. 낡은 나라는 예수와 함께 죽고, 새 나라가 부활과 함께 생겼습니다. 세상 나라가 죽고, 하나님 나라가 부활로 생겨났습니다. 역사상의 예수는 죽고, 신앙의 그리스도로 부활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라. 이 사실을 알리라고 부름 받은 사람, 보냄 받은 첫 사람이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입니다.

제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조금 더하겠습니다. 막달라 라는 동네는 갈릴리 호수의 북쪽 5km에 있는 마을입니다. 당시 사정에 따르면 이 동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아주 범죄 도시이며, 시골 촌락입니다. 거기서 태어난 남성과 여성은 모두 범죄자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달리 할 일이 없어 몸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예수께 잡혀옵니다(요한복음서 8:1-11). 그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사람들이 마리아를 잡아다 놓고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예수께 이야기 합니다. 요한복음 본문에 보면 이때 예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모래위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어느 사본에 보면 예수께서 같이 범행한 자들의 죄목을 일일이 쓰신걸로 되어 있읍니다. 예수께서 반대로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과 간음한 당신들은 누구냐? 당신들도 실제 공범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쳐라". 그랬더니 시간이 흘러 나이 많은 사람부터 적은 사람까지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납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단 둘이 서있습니다. "마리아야, 너도 죄인이다". 마리아가 말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의 답입니다.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입니다. 아마 막달라 마리아는 엄청 울었을 것입니다. 자기 죄악을 낱낱이 고하며, 주님, 랍비여, 죄송합니다. 아마 마리아가 쏟은 눈물이 모래사장에 쓴 글을 다 지웠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음으로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네 죄를 정죄하지 않고, 내가 네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네가 십자가로 함께 따라오면 나는 더 이상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신 이 말씀은 사실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의 요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이란 "내가 그대들이 짊어 져야 할 죽음의 몫을 대신 지겠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란 예수님이 우리들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는 사건 바로 그것입니다. 찢기고, 피 흘리고, 가시관을 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십자가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는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겠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현장에서 우리가 후에 듣고 경험한 이 말을 이미 돌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음의 현장에서 미리 경험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예수를 이미 그 죽음의 현장에서 만난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께서 부탁합니다. 눈물을 거두어라. 너는 용서 받았다. 이제 네가 할 일이 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주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해 기쁘고, 즐겁고 자신 있게 살아라. 다시는 십자가 죽음에 속하지 말고, 부활의 영광 속에 살아라고. 오늘 부활의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씀 하십니다. "이제는 부활을 살아라"고. 막달라 마리아는 출신이 아주 천박한 사람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대표하는 여성입니다. 허나 그 여성은 예수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얘수께서 죽음에서 건져주셨거든요. 이 여성은 나중에 일곱 귀신에 들린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 여성 안에 있는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변두리에 속하는 인생이었지만 늘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유대사람들의 집에서 묵고 계실 때 모든 정성을 다하여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기로 결단합니다. 기름 옥합을 예수께 가져옵니다. 예수의 발을 깨끗이 씻기고, 자기의 머리를 풀어 예수의 발을 닦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춥니다. 자기가 가져온 향유를 부어서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경제에 밝은 가롯 유다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경제적 계산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그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성은 가만 두어라. 내가 죽을 십자가의 향유를 바르는 의식을 미리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머리로 씻겼고, 그 발에 입 맞추었고, 십자가의 죽음의 현장에도 있었고, 예수의 무덤까지 따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까지 함께 동행 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가장 천박한 곳에서 나와 가장 먼저 십자가의 은총과 부활의 영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 구원은 골고다 언덕 이후에야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죽임의 위협을 당하는 앞에서, 오늘도, 내일도 일상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내가 네 죄를 대신지마. 다시는 너희 죄를 묻지 않겠다". 하나님의 베프시는 사랑이 인간의 간구하는 믿음보다 큽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보면 둘째 아들이 너무 배고파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애원하자 아버지는 맞아들입니다. "네가 고백하는 믿음보다 내가 밤마다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훨씬 크다"고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믿음의 고백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큽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선재(先在)한 사랑, 미리 베푸시는 사랑이 너무 커 탕자는 아버지 품으로 옮겨 올 수 있습니다. "다시는 아버지 집을 떠나지 말라. 부활의 삶을, 새 세상을 즐겨라". 오늘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직업상 흉악한 죄에 빠져 살수 밖에 없는 것 자체, 몸을 팔아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죄악으로 찍히는 그대의 삶, 그 삶을 내가 십자가에서 다 포용하겠다. 다시는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는 용서 받았으니 죄악의 삶에서 헤쳐 나와서 사죄함 받고 새 삶의 부활을 신나게 살아라.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보고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십자가 사건 이전에 이미 십자가의 진실을 경험했고, 부활의 은총을 미리 경험했습니다. 그 사람을 예수께서는 마지막까지 동행자로 만들어 줍니다. 마리아를 본받아 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절을 지킵니다. 이제야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이미 있었습니다. 부활은 부활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눈물로 호소하고 십자가를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은총을 항상 베풀어 주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일상 속에 늘 있습니다. 4월에 와서야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있고, 어디서나 있습니다. 오늘 지극히 작은 자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 혼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함께 끌어안았던, 예수께서 대표했던 등에 업었던 세상도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예수 혼자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구원하시기 원했던 온 세상도, 온 우주도 함께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지만, 그분 자신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우리보고 깨달아 알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각기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또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속에 대한민국을 품고 삽니다. 제가 죽으면 내가 품은 대한민국도 같이 죽습니다. 내가 부활하면 원하고 희망하는 대한민국이 같이 부활합니다. 사람은 개인이 아닙니다. 사람 속에 역사가 있고, 세계가 있고, 우주가 있습니다. 세계 속에 사람도 있고,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 세계를 품고 살라고 공동체적 인간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부활은 한 사람 예수의 부활만이 아닙니다. 예수와 함께 한 온 땅과 온 세상이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세상도 함께 못 박혔고, 부활은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총체적 은총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문명이 발달해서 안전이 보장되고, 문명의 극치에 다달아 하늘도 날라 다니고 마음대로 안전을 구가 했는데 조종사 한 사람의 병든 생각 때문에 세계문명의 요체인 비행기가, 문명의 최첨단인 우리의 상품인 독일 비행기가 아주 오래된 알프스 산 중에 처박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고도의 문명이 산간 바위에 깨졌습니다. 한 사람이 생각하는 악한 생각 속에 134명이 넘는 인간들이 모두 몰살당해야 했습니다. 아니 130명이 가지고 있는 온 세계와 공동체가 함께 몰락했습니다. 당연히 체제가, 문명이 제도가 좋아야 합니다. 허나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이 나쁘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사람 속에 세상이 있고, 세상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질서의 복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하늘나라를 대변합니다.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 속에 하늘나라가 있고, 사람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오늘 내적인 사람과 외형적인 구조를 구분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보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를 받는 여러분은 이렇게 사셔야 한답니다. 우리가 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사람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살아갑니다. 그분 앞에서 책임지며 삽니다. 그러면 비행기가 추락하여 몰살케 하는 버튼을 조종사가 누를 수가 없습니다. 또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나" 앞에서 살아 갑니다. "보이지 않는 나"란 세상이 말하는 양심, 도덕, 윤리, 신앙 입니다. 그건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의 거울이 되어 삽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인류의 양심 속에 비친 제가 세계를 걸머진 인간으로 삽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저의 모습은 나와 함께 사는 주위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 얼굴 속에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을 압니다. 보이는 제 이웃 속에 제 얼굴이 보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갑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가 합하여 하나님 나라와 세상나라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며 삽니다. 십자가도 함께, 부활도 함께 지고 경험하며 삽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자,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부활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이제 부활의 은총은 말합니다.새 사람 되어 사십시오.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말입니다. 부활이란, 낡은 세상이 물러가고, 죄악 된 세상이 물러가고, 그 뒤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사건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삽시다. 하늘은 땅을 좋아합니다. 하늘은 땅에 임해서 땅을 바꿔놓고 싶어 합니다. 땅은 열린 하늘을 향해서 삽니다. 하늘 없이 홀로 살면 땅이 뒤집어 집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인 우주의 양면입니다. 땅과 하늘은 십자가 안에서 그리고 부활 안에서 하나입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땅과 하늘이, 부활의 은총으로 땅과 하늘이, 모두가 구원받고 새 하늘 새 땅으로 거듭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받고 즐기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이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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