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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십자가와 구원

2016년 3월 20일 높은뜻 하늘교회 종려주일 예배 설교자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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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김동호 목사

성경본문

요3:16-18

설교문

1.

제 큰 손녀는 태어나서 두 돌이 되기 전에 지 애비를 따라 미국엘 가서 약 8년 정도를 살다가 한국엘 왔습니다. 둘째 손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둘다 다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엘 왔습니다.

둘째 손녀가 학교에서 사내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게 담임선생님에게 발각이 되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와 같은 괴롭힘은 미국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문제라 양쪽 부모를 학교로 불러 그 쪽 아이의 부모와 아이가 우리 며느리와 손녀에게 사과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다행히 그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 며느리가 큰 아이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이 엄마가 놀라서 그런데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잊어 버렸어'

사실 큰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도 당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고 심지어 말을 걸어도 댓구도 하지 않아 마음 고생이 컸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엘 나와 큰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이곳에서도 왕따 비슷한 것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손녀들은 심각할 수도 있는 그런 문제를 감기 앓듯 앓아버리고 넘어갔습니다. 미국에서도 학교생활 잘 하다가 왔고 지금 일 년이 지난 한국학교생활도 아주 건강하게 즐겁게 잘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그런 문제들을 그냥 감기 앓듯 넘어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넘치는 사랑'입니다.

큰 손녀는 미국에 가기 전 약 1년 남짓 저희 집에서 함께 살다가 갔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는 4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 우리 부부, 큰 아들 부부와 민희, 그리고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 이렇게 모두 여덟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민희는 당연히 우리 집의 꽃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이 첫 손녀 민희에게로 집중되었습니다. 미국에 간 민희가 세 돌 좀 지났을 때 아파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17이라고 썼습니다. 저희 아파트가 17층인데 두 돌도 되기 전 일년 남짓 살았던 우리 아파트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답니다.

'이곳은 소녀가 사랑을 받는 곳이야.'

우리 며느리가 아이를 참 잘 키웁니다. 그런데 우리 큰 아들도 아이들을 참 잘 키웠습니다. 미국에서의 박사공부 피를 말릴 것 같이 힘들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도 가고, 박물관에도 가고, 카네기홀 같은 극장에도 함께 가곤 했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미술관과 박물관은 거의 공짜였고 카네기 홀과 같은 비싼 극장도 유학생들에게는 그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시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제가 알기로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엄두를 잘 내지 못하는 일이었는데 우리 큰 아이는 용감하게 그런 시간을 내곤 하였습니다. 둘을 함께 데리고도 갔었지만 한 주일은 큰 아이와 그 다음 주일은 둘째 아이와 함께 가곤했습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아빠와의 데이트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지 아빠보다는 지 엄마하고 훨씬 더 많이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도서실을 다니곤 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 정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컸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랑이 만만치 않은 상처와 아픔을 감기 앓듯이 앓고 넘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

아내가 나와 못살겠다고 보따리를 싼적이 있었습니다. 외아들 홀어머니 시집살이가 힘들어서였습니다. 그 때 아내는 몸무게가 38kg까지 떨어졌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으셨던 저희 어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저에게 집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제 아내는 연적이었습니다. 천성이 정직하고 반듯한 분이라 못된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괴롭힌 것은 아니셨지만 우리 집에서 아내의 설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견디다 결국 보따리를 쌌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때문에 아내는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풀렀고 그 이후에도 그런 힘듦과 어려움이 계속되었지만 다시는 봇다리를 싸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제 아내에게 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당신 힘든 것 다 안다. 당신이 보따리를 싼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것이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작으면 떠나라. 그러나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 풀러라.'

아내는 내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 사랑을 잊었습니다. 그랬더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을 듣고 남편의 사랑을 기억해 내니 살 수 없어 보였던 어려움이 작아져 보였습니다. 아내의 상처와 힘듦과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지만 남편의 사랑이 그것을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제 사랑이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상처와 힘듦보다는 다행히 컸던 것 같습니다.

3.

아들 셋을 키우면서 크게 속 썩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에게 '아이들 때문에 속썩은 기억이 없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애들이 속을 안 썩인게 아니라 당신이 속을 안 썩은거야'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비교적 다른 집 아이들보다는 쉽게 커주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속을 썩이지 않는 특별 모범생도 아니었습니다. 속을 썩으려고만 했다면 충분히 썩을 수 있을만한 일들은 듬성 듬성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 속을 그렇게 썩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관심과 기대가 없어서는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제법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저도 남에게 상처를 주었겠지요만은 말입니다. 그런데 참 건방진 고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겐 그 상처의 흔적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습니다.

4.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쓰고 동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였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고, 사택을 비우고 은행융자를 얻어 자그마한 전셋집 얻어 이사하고, 두 달 동안을 두문불출하며 있었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고,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 종일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물끄러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벽에 걸려있던 손바닥만한 자그마한 나무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저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십자가가 말을 걸어 온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말을 걸어오신 것이었습니다.

'난 너 죽는 꼴 못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구해내고 말꺼야.'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가 드디어 제 삶의 실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늘 본문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복음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내게 들어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까짓것 때문에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예수님 날 위하여 십자가 지시지도 않으셨다.'

그날 이후로도 이런저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냥 감기 앓듯 늘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상처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앞으로도 이런저런 힘든 일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일어나겠지만 난 넘어지지 않을겁니다. 무너지지 않을겁니다.

5.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떠나서는 사실 수 없으셔서 하나님을 떠난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는 개를 좋아합니다. 엄청 좋아합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아무렇지도 않게 개엄마도 되고 개아빠도 됩니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마치 자식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거의 그 과입니다. 전에 저희 집에서 기르던 시츄의 이름은 곰돌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곰돌이가 아니라 김곰돌이었습니다.

개를 좋아하기 때문에 개애비 소리를 들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한계는 있습니다.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저보다 개를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건 개아비는 될 수 있어도 개새끼는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개를 사람취급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만 자기가 개취급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가 개가 되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낮아지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사람이 되어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붙잡히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세상에 사람에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시는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6.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사망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으려면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죄의 문제는 용서를 통해서 해결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죄사함 또는 속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용서는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자신은 형제의 죄를 7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번의 용서가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꼭 한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정말 490번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부모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 엄마에게 각기 물었습니다. '엄마는 누굴 제일 사랑해?' 아내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제일 사랑하고 그 다음에 너희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해.'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내는 저를 사랑하지만 저보다 자기 아이들을 훨씬 더 사랑할겁니다. 아내는 저의 죄를 490번까지 용서하지 못할겁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의 죄는 그렇게 할 수 있을겁니다.

얼마큼 사랑하는가가 어디까지 용서하는가를 결정합니다. 큰 사랑이 큰 용서를 가능케 합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로 풀었습니다. '이처럼'이 십자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사랑 최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 앞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또 그가 어떠한 죄를 지었던지간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만하면 그의 죄는 흰눈같이, 양털같이 희어지고 깨끗해 질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앞엔 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들도 다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 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4-39) 아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고난은 세상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환난도 세상엔 없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박해도 세상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기근도 세상엔 없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막막할 때도 있고, 앞이 캄캄할 때도 있지만, 꼭 죽을 것만 같아 보이는 상황에 처할 때도 있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를 생각하면,

우리가 그것 때문에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8.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세상은 참 힘들고 만만치 않습니다. 제 아내가 저와 함께 사는것이 힘들어 그만 살겠다고 봇다리를 쌌듯이 이 세상 그만 살고 봇다리를 싸고 싶을때가 어디 한 두번이겠습니까? 말도 못할 고난, 감당 못할 환난, 어떻게 이겨낼 수 없는 박해,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지지 않는 지독한 가난과 헐벗음, 늘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수없는 위험 그리고 전쟁의 소식.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합하여도 그것들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공허와 혼돈과 어둠을 몰아내고 이렇게 밝고 아름답고 생명넘치는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데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다.

'난 너 죽는 꼴 못 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구원해 내고 말꺼야.'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62:1-2) 아멘.

제가 벽에 걸린 손 바닥만한 작은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가 주는 메시지를 깨닫고 두 달간의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신 말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삶의 짐이 무거워 넘어지고, 쓰러지고 죽을 것만 같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의지를 생각하시고 묵묵히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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