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부활절 전야제를 서대문 형무소에서"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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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본지 논설주간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NCCK 주관 부활절 기념예배가 열린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에서 필자(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민주사회의 부활을 염원하던 박형규 목사의 옥고와 그 가열한 열망이 사라지고 없는 현재의 초라한 부활절예배 상황이 중첩되며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한다. [편집자 주]

경애하는 박형규 목사님,

부활절입니다. 오늘 각별히 목사님 생각을 했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바깥 출입을 못하신다는 소식을 아들 박종렬 목사에게서 들으며 추운 겨울이 지나서 좀 따뜻해지면 목사님을 찾아뵈어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올해 부활절 전날 밤 11시에 NCC주최로 부활절 예배를 서대문 형무소 안 뜰에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목사님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주최 측에서 저더러 예배 끝에 축도를 하라는 전갈이 와서 봄 감기를 앓고 있는 것을 무릅쓰고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김영주 총무 초청의 말로는 제가 "최고 원로 목사"라고 치켜세우면서요. 독립문 옆에 역사관으로 남아 있는 옛날 서대문 형무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 무엇일까? 그리고 부활절 예배는 자고로 부활절 주일 새벽 5시 해뜨기 전에 드리는 것이 상식인데, 왜 하필 토요일 밤 11시일까? 이런 저런 질문과 기대를 가지고 밤공기가 추우니 든든히 입고 나오라는 당부에 맞게 겨울 채비를 하고 어두운 밤거리를 조심조심 더듬으면서 형무소 문안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형무소 문안에 들어서면서 유신군사독재 시대 박형규 목사님과 박형규 목사님과 함께 이 문을 드나들었던 권호경 목사, 김경남 목사, 안재웅 목사, 이해학 목사, 나상기, 나병식, 김지하, 김동길 교수, 김찬국 목사님 등등 1973년부터 10년 가까이 이 문을 드나 든 예수님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 얼굴과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형무소 안뜰은 숨을 죽인 듯이 고요했습니다. 형무소 건물들은 그 어둠 속에서도 묵직한 벽돌로 된 붉고 견고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형무소 뜰은 깨끗했고 어두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NCC 직원을 따라, 불빛이 환한 교실 같은 방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오늘 예배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과 교회 청년들이 둘러앉아서 예배 순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순서지에는 저의 질문, 왜 부활절 전날 밤 11시에 부활절 예배냐?에 대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오늘 드리는 부활예배는 3세기경부터 드려지기 시작한 오래된 예식입니다. 금요일 오후, 예수께서 죽으신 시간인 오후 3시부터 다음 날인 토요일 저녁까지 교회는 1년 동안 사용하던 빛을 모두 소등하고 또한 공적 예배를 폐하고 예수님과 같이 무덤에 머무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정을 즈음하여 처음 예배를 부활예배로 드렸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 계산에 대해서 아직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3세기 때부터 내려오는 제가 모르던 교회 전통이 있었구나 하면서 하얀 예복을 입은 성공회 사제들의 뒤를 따라 형무소 뜰에 나갔습니다.

형무소 뜰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아주 찬바람이. 성공회 젊은 사제들이 대형 십자가를 높이 들고 앞장서서 형무소 건물들 사이를 돌고 돌아 대형 태극기가 붙어 있는 벽돌 집 앞에 차려 놓은 제단 앞에 준비된 의자에 착석하였습니다. 형무소 건물 사이사이를 돌면서 목사님과 목사님의 젊은 "죄수" 제자들이 햇볕을 쪼이며 운동하려고 가슴에 번호가 달린 죄수복 차림으로 옹기종기 모여 선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밤 11시 형무소 안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예배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춥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춥다는 생각으로 온 몸을 움츠리면서 계속 옛날 목사님께서 감옥살이 하셨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떨리기만 했습니다.

목사님은 1973년 4월 22일 부활절 새벽 남산 야외음악당으로 등산하셨습니다. 6만 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연합예배로 드리는 곳에서 유신 군사독재 정권에 항의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지를 만들어서 부활절 새벽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주여 어리석은 왕을 불쌍히 여기소서." "선열의 피로 지킨 조국 독재국가 웬말이냐." "서글픈 부활절, 통곡하는 민주주의." "사울 왕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꿀 먹은 동아일보, 아부하는 한국일보." "회개하라 이후락 정보부장." 그런 무서운 말들이 찍힌 전단지 2천여 장, 플래카드 10장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엄한 경계태세로 인해, 예배가 끝나는 대로 펼치기로 한 플래카드는 펼쳐 보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2천 장이나 되는 전단지는 헌금 바구니에 몰래 쳐 넣고 도망 나왔다고 목사님은 자서전에서 회고하셨습니다(『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박형규 회고록』 [창비, 2010], 219).

저는 그 길고도 긴 성서봉독과 연도와 찬송 예식은 들리지도 않고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습니다. 1973년이면 벌써 43년 전 부활절 연합예배 이야기인데, 바로 어제 이야기 같이 저의 뇌리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남산 위에서 6만 명이나 운집한 성도들의 맨 뒤에 외신기자와 함께 서서 귀추를 지켜보고 계셨다지요? 그리고 성공하지도 못한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으로 10만원, 당시로는 상당한 금액을 행동자금으로 마련하셨다는 이유와 함께 사건을 크게 만들어 간 박정희 유신정권은 목사님과 행동 추종자들을 이 서대문 형무소에 가두었습니다. 그 이후 목사님은 민청학련 사건이다 무어다 하면서 이 형무소를 드나드셨습니다. 우리 1970년대의 아픔이었고 한국 민주주의 십자가의 고난의 계절이었습니다.

목사님 옛날 생각에 잠겨서 그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몽롱하게 잠들어 가는 저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젊은 여성 목사의 그 낭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저를 깨웠습니다.

"분열, 불신, 대결, 무기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이 강산은 언제고 전쟁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들의 집합소요 군사력 실험장이 되었습니다. 한때 평화통일의 염원을 잇던 다리는 끊기고, 그 위를 날던 새는 빗물에 젖은 채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6년 남북교회 부활절 공동기도문을 처절하게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멘, 아멘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어둠을 뚫고, 43년 전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예배에서처럼, 누군가가 큰 펼침막을 펴고 전단지를 뿌리면서 뛰쳐나와 소리소리 지르지 않나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던 기동 경찰대가 형무소 안으로 뛰어 들어 와 우리 예배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환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조용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형식에 얽매인 예배는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추워서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배에는 6만 명이 아니라 60명 정도가 모여서 그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씩 들고 서 있었습니다. 부활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덤과 같은 형무소의 암흑 속에서 모든 것이 평화로웠습니다. 거짓 평화였습니다. 모두들의 마음속은 부글부글 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가슴 속이 그렇게도 답답했으니까요. 올해도 우리의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믿음 없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형무소 좁은 문을 빠져 나왔습니다. 저와 함께 좁은 형무소 문을 빠져 나오는 후배 목사에게, "감옥 문을 나왔으니 두부 한 모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말처럼, 감기로 얼어붙었던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봤습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으로 오는 심야 택시 속에서 저는 소리 없이 오열했습니다.

목사님이 형무소에서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위반의 죄목으로 형을 살고 계실 때, 목요기도회에선가 사모님을 만나 뵙고 손을 잡으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제 나름으로는 제법 위로의 말씀을 드렸더니 사모님 하시는 말씀, "박 목사가 거기 들어 가 있으니까, 내가 편해요. 목사님도 거기 들어 가 있는 것이 그렇게 편하시대요. 하하하 원 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사모님 눈에 맺힌 눈물은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해서 유신 반대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한 친구들은 감옥을 "국립대학"이라고 쓴 웃음을 지으면서 "감옥의 역사"를 말했지요. 하루 세끼 밥 먹여 주고 단 칸 방 얻기도 어려운 시절에 친구들 하고 공짜 방에서 지내고, 시간 나면 모여 앉아서 인문학과 신학 담론을 펼 수 있었다고 자랑하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목사님은 감옥에서 인쇄공 노릇을 김 지하와 함께 하셨다지요?

그러나 26일 부활절 전날 토요일 밤 서대문 형무소 뜰, 이른 봄추위에 벌벌 떨면서, 서대문 감옥 안의 차디 찬 방에서 뼛속까지 쑤시고 들어오는 추위에 떨면서 부활의 따뜻한 봄을 못내 기다리던 사람들,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젊은 독립투사들, 그리고 해방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유신 군사독재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민주 투사들, 그리고 오로지 자유만을 말하다가 정치범으로 아오지 탄광에서 숨을 거두어야 하는 북한의 민초들 - 부활의 새벽을 기다리면서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한 고 김영삼 장로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박 목사님의 자서전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그 책을 비몽사몽(非夢思夢)간 밤이 새도록 읽다가 부활절 아침 동네 교회에서 울러 퍼지는 찬송 소리에 깨어 일어났습니다. 부활절 아침입니다.

2016년 부활절 아침에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서광선 드림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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