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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국을 위하여 울어라

2016년 2월 28일 강남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junbyungkeum
(Photo : ⓒ베리타스 DB)
▲강남교회 전병금 담임목사

성경본문

(누가복음 19:41-44)

설교문

지난 2015년 12월 28일에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으면서, 아베 수상의 사과와 함께 10억 엔(한화 97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발표문에서 "자손들이 앞으로 사죄의 숙명을 져선 안되기에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상 이전을 조건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이 합의문에 대한 반발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먼저 소녀상은 합의와 관계가 없는 우리 나라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후대에 알려주기 위한 상징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주는 97억원도 위안부들의 재판에 배상금도 아니고 지원금 명목이라는 것입니다. 지원금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냥 주는 것이고지 그들의 죄에 대한 배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번 2011년 일본이 쓰나미로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가 준 성금만도 155억원 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알아보면, 일본 정부가 우리 나라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실제로 일본 군대에 끌려가서 성적 착취를 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과는 아무 상의도 없이 협상을 타결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정부 고위 당국자가 할머니들에게 사후 설명을 하였으나, 할머니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38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군이나 관헌이 직접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엔(UN)에 전달했습니다. 사과는 말뿐이고 그들의 입장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무능한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는커녕 북핵문제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며 아예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맞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친 3.1절 9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9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본군 3대 사단이 주둔하고 있었고, 경찰서가 16,214개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고, 22,000명의 헌병과 20만 명이 넘는 헌병 보조원들이 활개를 치며 포악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을 탄압하였습니다.

이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며,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이 3.1 만세 운동입니다. 이러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일본 정부는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었는데, 일본 정부에 의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보면, 사망자가 7,509명, 부상이 15,961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또 소실된 민가가 715채에 이르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 당시 일제가 교회에 준 피해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소실된 교회당만 해도 47개소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피해사례는 제암리교회였습니다. 일본군과 경찰은 1919년 4월 15일에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 교회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교회 출입문을 막고는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이때 교회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이고,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네에도 불을 질러 온 동네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것 같았던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숨죽이고만 있던 백성들에게 독립에 대한 강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 의지와 역량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소수만이 참여했던 독립 운동에 신분, 계급, 남녀노소 등의 차별없이 폭넓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결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으로써,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밖에도 항일 무장 투쟁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어 자주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도 우리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처럼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로마제국 식민지의 억압받는 백성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서, 자기 민족의 현실과 미래를 보시면서 우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눅 19:41-44).

이 장면은 실제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역사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한 로마군의 지휘자 티투스는 성벽 외곽 지역을 불사르고 목재와 흙으로 토성을 쌓은 다음, 그 위에 공성장비와 궁수, 투창병을 배치하여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예루살렘 성은 결국 함락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으며,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민족이 앞으로 겪게 될 이러한 비참한 장면을 미리 내다 보시고, 비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전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 자기 민족인 유대인만 위한 십자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민족만 생각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를 구원해야 하는 세계 복음화를 향해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자기를 낳아준 자기 민족의 고난을 등한시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현실을 보시고 통곡하신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사장이나 레위인 등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받든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핵심을 망각하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로마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만 추구하고 권력투쟁만 일삼았을 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구축하고 있던 지도자들의 모습이 다 이랬으니, 유대교는 더 이상 종교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거의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어떻게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런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그들을 정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백성들이 당할 고통이 너무나도 끔찍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교권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 타락할 대로 타락한 한국교회는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인 천도교 15명, 불교인 2명에 비하면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이 얼마나 깨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때 기독교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축복만 추구하는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구원, 공동체 구원, 사회구원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개인적 안위만을 추구하는 개인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는 존경받는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신앙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많은 목회자들도 자신의 영향력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데 애쓰기 보다는, 권력과 금권에 눈치를 보느라 가진 자들의 나팔수 노릇을 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한국교회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통곡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보듯이,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날로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서민들을 위해서,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세월호 피해자들을 위해서, 억울한 한평생을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소수자들을 위해서,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여주고 있는 기독교인의 모습이며,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고 통곡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일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시절 독일교회는 히틀러가 기독교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그의 악마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독일교회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히틀러 정권에 저항 운동을 하면서, 교회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정의와 양심을 따르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옥중에서 본훼퍼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들도 본훼퍼처럼 역사와 교회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독일교회가 본훼퍼의 외침을 들었더라면 그 무서운 나치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일어나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가정과 나라의 주인으로 서기만 하면 그 가정과 그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남북 간의 긴장과 사회적 갈등 등으로 어두워져 가는 이 나라와 민족을 바라보며,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 백성들을 바라보며 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눈물이 이 나라와 민족을 회복시키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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