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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신은 성경적인가?

커티스 화이트맨(Curtis Whiteman)

문신
(Photo : ⓒ Christian Post)
▲ 문신시술 장면

고린도전서6장12절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질문은, 그것이 죄인가? 이다. 질문에 즉시 답을 하겠다: 문신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문신 자체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다. 우상숭배 관습이나 이교도 풍습을 따를 때 잘못된(매우 잘못된) 것이다.

문신에 대해 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레위기19장28절이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19장에는 다른 구절도 있다: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레19:27).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레위인들에게 해당하는 계명들이다. 이러한 구약의 계명들을 연구해보면, 그 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변의 우상숭배 민족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레위기19장 전부를 읽어보길 바란다). 성경구절을 그 맥락과 상관없이, 혹은 다른 구절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인용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문신과 관련된 바로 이 구절이 단 하나의 구절을 특정해서 뽑아냄으로써 부정확한 율법주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알다시피, 레위기에 나오는 많은 다른 '규칙들'이 오늘날 지켜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레위기 전체나 성경 말씀 자체를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의 주제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오늘날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말일 뿐이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강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제정된 몇 가지 '율법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당시에 문신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럽고 부상이나 질병, 혹은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구절은 또한 죽은 자를 위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김으로써 영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 이교도의 풍습을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왜 문신을 해야 하는가?

각 개인은 문신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누구든지 문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문신한 사람들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그들이 기독교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충성스런 신앙을 보여주기 위해서 문신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문신이 그저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무엘상16장7절 후반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옷이나 문신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나 헌신의 정도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로마서10장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갈라디아서3장23-25절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그리스도가 새로운 언약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에서 읽은 것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적혀있다고 들은 것 때문에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매우 잦다. 우리 모두가 성경을 스스로 읽으면서 주어진 주제에 관해 무엇이 씌어져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성경을 대충 혹은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대충 해석하는 경우는 성경에서 원하던 진술을 찾고자 하거나 그런 욕망조차 없을 때이다. 율법주의도 역시 나쁠 수 있다. 율법주의는 성경을 부정확하게 해석한 결과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파괴적일 수도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 나는 (매우) 보수적이다. 예를 들면, 나는 레위기의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맞다, 문신을 해도 된다. 다만 우상을 숭배하는 관습이나 이교도적 관행이 아닌 한도에서.'

기독교인에게 자신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가?

두말하면 잔소리다. 나는 내 몸이 "성전"이 되기를 분명히 원한다. 나는 이교적이거나 우상숭배적인 문신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 문제가 개재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경험이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품이 우리의 품과 같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교회 음악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우리와 같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 의해 모두가 독특하게 창조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문신을 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그들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문신이 죄인가? 아니다. 문신을 새기는 이교도적 관행이 죄인 것이다.

문신을 새긴 것 때문에 지옥에 가는가? 아니다. 회개하고 예수가 주님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셨고 죽은 뒤에 부활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 된다.

그리고 동시에, 문신을 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이 구절이 문신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거한다고 생각한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28).

하지만, 그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레위기19장25-31절에는 이교의 신들을 숭배하는 다양한 풍습들을 금지하는 일련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고대 민족들(출애굽기32장1-6절, 민수기25장1-3절, 등)의 이교적 풍습들에 빠져들도록 늘 유혹을 당했기 때문에 이교적 제의의 모습을 띤 것이면 그 무엇이라도 행하지 않도록 금지 당했다.

살을 베거나 문신을 하는 것은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이교도들이 흔히 행하던 풍습이다. 그래서 맥락상 문신에 대한 금지는 피부 위에 새긴 표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교도의 숭배관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문신과 그런 풍습들을 연계시킬 만한 일이 거의 없다.

문신을 금지하기 위해 인용되는 또 다른 구절은 사도바울이 썼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그러나 맥락상 고린도전서6장13-20절은 성적 부도덕에 관한 것이지 문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문신을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증오나 폭력, 혹은 사악한 이미지를 묘사하는 문신이라면 성경의 원칙에 보다 명백히 어긋난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신하는 것이 자신과 하나님과의 분리를 초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문신을 한 사람도 사용하실 수 있고 실제로 사용하신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성령이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 각 개인과 소통하시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는 다른 부담과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예민해야 할 것인지는 각 개인에게 달려있다.

기사출처: http://blogs.christianpost.com/guest-views/tattoos-are-they-godly-27451/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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