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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는 누구냐?

2016년 3월 20일 강남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junbyungkeum
(Photo : ⓒ베리타스 DB)
▲강남교회 전병금 담임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 21장 1-11절)

설교문

세계 1차 대전 이후 혼란과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강력한 독일을 재건하겠다는 핑크빛 전망을 내걸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군부와 보수파를 등에 업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외교적으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한 히틀러는 군비 확대에 박차를 가하여 독일의 지위를 유럽의 최강국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전국민은 그런 그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또한 탁월한 연설가였습니다. 그는 대중집회에서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적인 연설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독일교회도 그를 온 국민의 영웅으로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 목사를 비롯한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숨겨진 악마성을 지적하고 반나치 세력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 본회퍼 목사와 고백교회는 독일 국민과 독일교회의 엄청난 비난과 철저한 따돌림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나치 정권의 무서운 박해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온 인류를 불행으로 끌고갈 히틀러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훼퍼 목사와 고백교회가 지적한 대로 히틀러는 전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 준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었고 결국 자살로 그 인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독일교회가 본훼퍼 목사나 고백교회처럼 히틀러의 정체를 알았다면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재앙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와같은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등이 12.12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지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인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내노라하는 교계 대표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습니다.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고 이후에 녹화중계까지 된 이 기도회에는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신현균, 김창인 목사 같은 당시 유명한 교계 지도자 23명이 참석했습니다. 신군부 세력은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고자 이 기도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색이 예수님의 제자요, 기독교계의 지도자라고 하는 참가자들은 불의한 세상 권력에 대항하기는커녕, 죄 없는 백성들을 총칼로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의 핵심인물인 전두환을 위해 "사회의 악을 제거하고 정화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들이 다윗 앞에 선 나단 선지자처럼, 본 훼퍼와 고백교회처럼, 전두환과 신군부의 악마적 속성을 폭로하고 한국교회와 함께 그들에게 맞서 저항했다면, 군부의 독재 통치라는 어두운 역사는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들도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본질과 정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그럴듯하지만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진실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된 사람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거나 진실된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것처럼(삼상 16:7)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의 정체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예수의 정체와 본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먼저 로마 당국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제국은 일찍이 유대를 점령하고 이두메 귀족 출신인 헤롯을 분봉왕으로 내세우며 대제사장 그룹을 장악하여 완벽하게 유대를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종종 혁명적인 민중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유대해방운동을 벌이며 로마에 대항하는 일이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는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떠오르는 민중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당국은 처음에는 예수를 따르는 군중들이 많고, 그를 새로운 왕으로 세우자는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려와 경계는 얼마가지 않아서 그리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결론과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예수라는 자는 다른 혁명적 민중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주로 '사랑'이나 '용서' 혹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과격한 언행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지만, 그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모습은 새끼 나귀를 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뒤를 따른 무리들도 노래를 부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정도여서 과격한 시위로 번질만한 조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러한 모습들은 '바보들의 행진' 같았습니다.

후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손에 붙잡혀온 예수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발견할 수 없다고 석방해주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로마 당국은 예수를 유대교 내의 신흥 종교 지도자 정도로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그저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 위인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존경할만한 사람 정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들이며, 우리의 구주입니다.

2. 다음으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장로, 서기관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세 번에 걸쳐 수난예고를 하실 때(마 16:21, 17:22, 20:18-19), 장차 예수를 핍박하게 될 주범으로 지목된 그룹이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그들은 바리새인 혹은 사두개인 출신들로써 많은 무리들이 갈릴리 목수 출신인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고 많은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 등의 기적을 일으켜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가 예루살렘에까지 들어와 성전에서 가르침을 베풀고, 기적을 행하며 자신들의 위선과 불의를 드러내자, 이 예수를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여 결국 예수를 제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 11:18)

그들은 결국 예수를 신성모독죄와 반란 선동죄로 몰아 로마 당국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해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전면 부인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미움과 불의와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입니다.

3. 이에 비해 유대인 군중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 곧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야, 혹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당시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만연해 있었는데, 다윗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이방인을 몰아내고 이 땅에 강력한 유대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이적을 베풀었던 예수를 유대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그들의 환영의 노래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마 21:9) 라고 했는데, 여기서 "호산나"라는 말은 "지금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유대의 가장 위대한 임금인 다윗의 후손 가운데 강력한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염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왕 헤롯은 이두매 출신으로 유대인도 아니며, 다윗의 후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다윗의 후손이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여 이방인을 물리쳐주기를 간구하고 있었는데, 예수가 바로 기다리던 다윗의 자손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치적 지도자로서 유대인의 메시야만을 갈구했던 것이지, 예수님의 대속적 인류구원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단지 세상적이요, 사업적이요, 정치적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신자들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입니다. 세속적인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하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나귀 새끼는 아직 어미 나귀와 함께 다닐 정도로, 멍에도 한 번 메지 않을 정도로 어린 새끼였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서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또한 이러한 모습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모두 백마를 타고 개선행진을 하는데, 이는 상대편 나라 백성들에 대한 비참한 살육과 약탈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폭력적 개선장군의 모습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자신이 먼저 희생당하신 '평화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심으로써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님을 본받아, 겸손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무시하고 평화를 깨는 사람이 되서는 안됩니다. 어디에서나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가정도 평화롭게 섬기고, 교회와 일터에서도 평화를 만들고, 특별히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처럼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곧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노래한 것은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는 참된 왕을 향한 찬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인류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향해 "호산나"라고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야말로 이 세상의 생명이요, 이 세상의 소망이요, 이 세상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께 드리면서 찬양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자신이 가진 전부였던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예수님을 맞이했는데, 우리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면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구원자, 참된 목자, 참된 소망이신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리면서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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