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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편지

2016년 4월 5일 높은 뜻 정의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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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김동호 목사

성경본문

고후 3:1-5.

설교문

1.

책을 제법 많이 썼습니다. 글은 거의 매일 쓰다시피 합니다. 평생 설교를 하고 설교문을 작성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책은 생각처럼 그렇게 많이 읽지를 못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연습하려고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을꺼고 나름 잘 할 수 있을꺼라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은퇴 후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책을 다독하지는 못했지만 깊이 읽은 책들이 있습니다. 제 평생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정말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책 읽기의 유익과 축복을 저만큼 받은 사람도 많지 않을꺼라는 생각을 감히하곤 합니다.

제 삶에 깊이 영향을 끼친 책 중에 하나는 에릭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는 책입니다. 에릭 프롬은 그 책에서 인간을 두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입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표 그리고 목적을 to hav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이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표 그리고 목적을 인간답게 to be 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책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무엇을 더 많이 소유하는데 두고 사는 소유형의 인간이 되지 않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하는데 두고 사는 존재형의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깊이 결심했습니다.

2.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중에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설교 중에 자주 이야기하는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사랑받는 존재를 존귀하게 여깁니다. 천하보다 귀히 여기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심지어는 당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시며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천하보다 크고 귀하기 때문에 천하를 다 얻어도 그것 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제 평생의 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돈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소유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도 그것을 좋아하고 욕심을 내는 지극히 평범한 지극히 보통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매달려 살면, 지나치게 욕심부리고 살면 결국 솔로몬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으며 '모든 강물은 바다로 연하여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도다'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래서 평생 그것을 좋아하되 그것에 빠져 살지 않으려고 무척노력하고 애쓰고 기도하였습니다.

3.

92년도 큰 아이가 15살, 둘째 아이가 13살, 막내 아이가 11살 이었을 때 한국의 아이들이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운동화들을 신고다녀 그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에게 편지 한 장을 써보냈습니다.

왜 그런 운동화를 신으면 안 되는가를 나름 납득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이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운동화를 신고다니는 이유는 자랑하고 싶어서인데 그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내가 10만 원짜리가 안 되니까 10만 원짜리 운동화를 자랑하는거라고, 너희들은 이후에 신발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의 사람됨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그 말 뜻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공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그 편지가 우리 아이들의 삶에 나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 그와 같은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백 퍼센트 공감한다고해서 삶이 그렇게 백 퍼센트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의 뿌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입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가 유독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그 유혹을 이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세상엔 참 선악과 같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욕심낼만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니 아이들에게는 신발 자랑하며 살지 말고 너희 자신의 삶을 자랑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이야기했지만 정작 저 자신은 아이들 신발 욕심내고 그것을 자랑하듯, 욕심내고 그것을 얻은 후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동차, 아파트, 넉넉한 소득과 그것이 주는 여유로움, 명예, 칭찬, 권력 등등등등.....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고,

제법 인기있는 유명강사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하는 일마다 큰 성공을 거두고,

연예인처럼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팬이라고 인사하고, 그 인사를 받고....

몇 달 전 큰 손녀와 함께 식당엔가를 갔었는데 뒷 자리에 있던 어떤 분들이 수근수근 거렸습니다.

'김동호 목사다. 김동호 목사야'

민희가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게 저는 자랑스러웠습니다.

창피하게도....

마치 명품 옷을 입고 명품 백을 메고 다니는 것처럼 저에게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은근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명품같은 것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솔직히 그것 때문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안 그런척 했지만. 그리고 그것들을 즐겼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신발자랑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의 사람됨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놓고 말입니다.

5.

큰 교회 목사가 아니었어도 행복했을까?

좋은 자동차 타지 못했어도,

내 집 한 칸 장만 못하고 60 넘어 셋방 살이했어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때처럼 늘 생활에 쪼들리며 살았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삶을 살았어도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난 결국 평생 신발 자랑하며 산 사람은 아니었을까?

난 결국 에릭 프롬이 이야기한 소유형의 인간을 평생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 모든 허울과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몸과 삶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나의 존재는 가치가 있을까?

의미가 있을까?

6.

은퇴를 앞두고 은퇴를 생각합니다. 교회와 하던 일로부터의 은퇴도 중요하지만 내가 실제로 소중히 여기고, 뽐내고, 자랑하던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진정한 은퇴의 필요성을 생각합니다.

소유도 좀 줄이고,

소비도 좀 줄이고,

명예와 자랑도 좀 줄이고,

심플한 삶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저는 음식에 별로 큰 욕심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선듯 대답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송이를 넣고 끓인 국입니다.

특별한 국이 아닙니다. 그냥 물에다 송이를 넣고 끓이고 소금으로만 약간 간을 한 국입니다. 레시피도 필요없습니다. 훌륭한 쉐프만이 끓여낼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냥 누구나 송이를 넣고 물이 끓을 때까지 끓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정말 맛있습니다. 송이라고 하는 식재료가 워낙 뛰어나서 그렇습니다. 특별한 양념도 필요없고, 특별한 조리과정도 필요없습니다. 누가 끓이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송이, 송이 하는가 봅니다.

송이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송이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

존재로 말하는 사람.

존재자체가 가치 있는 사람.

존재 자체에서 향기가 나고 맛이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존재가치는 존재목적으로부터 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존재목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목적없이 존재하는 것은 생명이든 무생물이든 상관없이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목적대로 존재하면 가치가 발생합니다. 존재가 목적을 잃어버리면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사람의 존재가치는 그가 무엇을 소유하였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위에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목적대로 존재하는 사람인가에 달려있습니다.

모든 존재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의 목적은 존재케 한 이로부터 말미암습니다. 마이크의 존재목적은 마이크를 만든 사람이 만듭니다. 시계의 존재목적은 시계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시계를 만든 사람이 결정합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존재목적을 우리가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존재가치가 있는 그런 훌륭한 삶을 살려면 자기 욕심과 뜻대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

편지쓰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외국에 집회를 나가면 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곤했었는데 그때마다 호텔 책상에 앉아 한 아이. 한 아이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습니다. 아침에 호텔 로비에가서 편지를 부치고 귀국하면 제가 편지보다 더 먼저 도착할 때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랬지만 저도 아내와 연애할 때 편지를 자주 썼었습니다. 글씨가 악필이어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진데 글씨도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씨를 그렸습니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썼습니다. 손에 땀이 나면 손을 씻고 와서 쓰곤 했었습니다.

그 때 그 마음을 담아 '편지'라는 시를 썼습니다.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진실이고파

아름답고파

썼다간 지우고

또 썼다간 지우고

마음 같이 써진 편지 마무리하다

그만 잘못 써진 글씨 하나

그냥 죽죽 두 줄 그어 지워버리고

계속 쓰면 될 것을

다시

손 씻고와

처음부터 쓰는 편지

당신께 쓰는 편지

9.

내 삶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쓸데 없는 욕심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보면

내 삶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지 않을까요?

내 삶이 송이같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나고 향이나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내 삶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다보면,

그 편지같은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냥 내 삶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지 않을까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높은 뜻 교회입니다.

높은 뜻 정의교회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뜻 교회는 유명 브랜드처럼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영향력있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 높은 뜻 자랑은 무엇일까요?

교회성장?

교회분립?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열매나눔재단?

열매나눔인터내셔널?

좋은 정관과 시스템?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들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우리 높은 뜻 교회와 높은 뜻 정의교회의 자랑은 그냥 우리 교인들이 정말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이고, 그리스도의 편지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평생 신발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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