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지기'. 조미선 씨 앞에 붙은 수식어다. 2014년 7월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진실서명대에서 서명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귀한 ‘직분'이다. 유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선교지에 파송 받았다는 마음으로 나섰는데 어느 새 시간이 2년 가까이 흘렀다.
지난 해 세월호 1주년 때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공권력은 물리력을 동원해 유족들을 찍어 누르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캡사이신을 뿌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세월호 유가족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에게 다가오는 세월호 2주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막상 만나보니 그는 의외로 담담한 심경이었다.
-. 이제 곧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한다. 1주기 땐 경찰 방패 앞에 서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1년이 지났다.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이전에는 봉사자의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삶의 일부다. 세월호는 삶이자 신앙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 지난 달 28일과 29일 열렸던 세월호 청문회 때도 참석했던 것으로 안다. 청문회를 본 소감은?
답답했다. 어른이라는 게 창피했고, 인간인게 창피했다. 누구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었다.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아이들을 탁구공에 비유했는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딱 그랬다. 보면서 답답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악하고 연약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왜 저렇게 숨길까?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려 할까? 그들도 가족이 있어서 아닐까?'하는 생각에 연민마저 느껴졌다.
-. 왜 숨긴다고 보는가?
저들은 숨길 수 밖엔 없는 처지다. 누구하나 (진실을) 꺼내놓을 수 없다. 전체적인 권력이 저들의 입을 막았다. 누구라도 진실이 퍼져나가게 하면 안되기 때문에 말을 못하도록 막았다고 본다. (진실을) 말 하고 싶어도 못할 것 같다. 그 와중에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강혜성 씨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강 씨의 증언에 따라 승객을 대기시키라는 지시는 선원들이 아닌, 선사인 청해진 해운에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 씨는 이제껏 대기 지시 발언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사망한 양 모 사무장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 총선이 목전이다. 총선 이후 변화가 일 것으로 보나?
아무래도 달라질 것이다. 야당이 단일화에 실패하기도 해서 이번에도 안될 것 같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정치를 참 잘 한다. 선거때만 되면 말도 안되는 행위를 하지만, 또 저런 모습에 넘어가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 때 당시 새정치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마치 세월호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이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선거 지나고 나서는 돌아섰다. 이번 총선에선 도와주는 이들이 없다.
아마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광화문에 마련된 세월호 추모공간을 철거하려 할까 걱정이다. 그러니만큼 시민들이 나서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에 하나 기습 철거를 시도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점이라면 2주기를 맞으면서 시민들은 물론 교회에서 간담회 요청이 들어온다. 1주기 때와 비교할 때 요청건수가 더 많다. 1주기 때만해도 정부는 언론을 통해 ‘이념적, 정치적 이슈다'라고 왜곡했고, 많은 국민들과 상당수 교회들이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정부가 세월호에 떳떳하다면 밝힐텐데 그와는 반대였고, 국민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혹시'하는 생각을 했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1주년까지만해도 잠잠했던 교회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초청한다. 다른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무척 고무적이다.
피상적인 신앙에서 구체적인 신앙으로
-. 신앙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그리고 봉사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본인의 영성이나 신앙에 변화가 있었나?
진짜 많이 변했다. (세월호) 이전에는 신앙생활이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그런 신앙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보수성향의 교회(기하성교단 - 기자 주)를 오래 다녔다. 그러다보니 목사가 이야기한 점이 옳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실제 현장에서 부딪혀보니 모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현장에서 직접 부어주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 ‘교회를 옮겨야 하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나?
이제는 왜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에 놓아 두었는지 알 듯 하다. 힘들어도 그 자리에 남아 조금씩 영향을 끼치라는 뜻 같다. 내 성향에 잘 맞는 교회로 가면 당장은 편할 것이다. 새로 옮긴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겠나?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힘들겠지만 조금씩 영향을 끼치면서, 때론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그 안에 남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