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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지 마라

댄 델젤(Dan Delz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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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Christian Post)
▲댄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 주 파필리온 시 소재 웰스프링교회의 담임목사이다. <크리스천 포스트>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믿음과 행위 사이의 관계를 멋지게 조율했다. 그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순종"(롬1:5)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했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칭의와 성화를 명확히 설명하는 편지들을 썼다.

칭의는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는 순간에 완성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칭의는 성화라는 "집"의 토대에 해당한다. 기독교인의 삶(성화)은 영적 성숙도와 순종이 커지면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 믿음은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반면, 순종은 믿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는다. 동시에 믿음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항상 좋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열매가 없이는 그 "믿음"이란 것도 살지 못한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그런 "믿음"을 "죽은" 것이라 규정했다(약2:17).

행위 없는 진정한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있을 수가 없다. 믿는 순간 성령이 믿는 자 안으로 들어오면 좋은 열매가 즉시 맺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들이다(요15:5). 하나님만이 자신의 자녀들 속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다.

칭의와 성화를 혼동할 때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선한 행실은 믿음에서 유래하지만, 그것이 믿음의 성질을 더하거나 구원의 내용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구원은 믿는 순간에 주어진다. "집"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을 얻는다. 죄인이 속량을 받는다. 그리고 믿는 자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계13:8)에 기록된다.

일단 당신의 이름이 천국의 예약 장부에 기록되었으니, 당신은 그곳에 가도 된다. 낙원에서의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죄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롬6:18) 구애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 있다. 바울 사도가 같은 구절에서 말했듯이, "당신은 죄로부터 해방되었다."

따라서, 계속 죄를 좇아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6:16). 믿는 자는 이제 예수를 위해 산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섬기기를 원한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된 것이다.

그러면, 믿는 자들은 완전한가? 물론 아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고전2:16)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믿어서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과 다른 종류의 "순종"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고 다만 인간 본능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이지 않으며 종교적일 따름이다. 세상의 많은 종교인들은 모종의 윤리적 규칙에 순종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순종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며 실행하는 순종이다. 어쨌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히11:6).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이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한다. 일단 토대가 놓여지면 그 위에 세울 "집"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작업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의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작업인 것이다. 당신은 그 토대에 대해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집에 대해서도 공적을 자랑할 수 없다.

주님께 대한 순종에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대화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그분께 순종한다. 우리의 말 속에는 우리 마음속의 생각이 종종 드러난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하나님께 복종하기 전에 우리는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롬3:21)를 받아야만 한다. 이것은 친절한 사람이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의로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는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완전하다. 이 의는 믿는 순간 믿는 자에게 그의 것으로 주어진다. 즉시 영생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딛3:7).

일단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그 사람은 용서를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으며 구원을 얻고 새로 태어나 구속함을 받는다. 그러한 복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면 믿는 자들은 즉시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식이기 때문에 구원의 과정은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은 믿음 자체만큼이나 기적적이다. 영적으로 성숙한 "집"은 그 토대만큼이나 두드러진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의 삶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의 연출자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이웃이 된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면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일단 가족이 되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 안에 넣으신 거룩한 능력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이 과정이 실제로는 복잡하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시간이 걸려서 성숙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먼저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한다면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그런 시도로는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어쨌든, 만일 우리의 행위가 그 토대를 놓는다면 예수님이 굳이 하늘을 떠나 이곳에 와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통당하다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믿는가, 아니면, 그분이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인가? 그리스도가 당신의 전부인가, 아니면, 그분은 당신께 아무런 의미도 없는가?

성경은 그 문제에 대해서 매우 분명히 말한다. 믿음에서 나온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는 결실이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당신을 더 잘 돌보실 분은 아무도 없다.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dont-confuse-justification-with-sanctification-160826/#Jr4QrtzkFvyoktfR.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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