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특수목회 사역을 시작한지 4년이 되었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내 눈에 유독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혼잣말을 크게 하는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안내견을 동반한 사람, 수화를 하는 사람 등, 이처럼 신체의 일부나 정신적 불편을 겪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장애인들이다.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이었지만. 그들도 나와 같은 터 안에서, 이러저런 모양으로 동일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장애인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일상을 보내다보면 알 수 없는 행복을 종종 느끼게 된다. 그들은 찬양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작은 일들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데, 그러한 모습들이 오히려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큰 감동을 준다. 이것이 장애인 사역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장애인을 예수님이 치료하셨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이 치료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예수님이 모든 장애인을 치료하시진 않았다. 예수님이 치료해주신 장애인들에게는 특징이 하나 있다 있는데, 바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애를 치료해주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장애가 장애되지 않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를 볼 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힘들 때 서로 위로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며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삶,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생활이 아닐까 생각된다. 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하여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땅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4월 이 맘 때면 장애인 주일이라는 절기를 지킨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지난 첫 주일을 장애인 주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많은 교회에 장애인이 없다. 장애인이 올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 수화를 통역하는 통역사,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성경 등, 장애인이 없는 장애인 주일을 지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섬기는 교회의 로고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교회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많은 장애인들이 교회의 성도로 다닌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장애인의 장애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함께 살아가려고 고민하다보니 승강기를 설치하였고, 휠체어를 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수화통역사가 설교말씀을 통역하고,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센터를 운영한다. 나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교회다움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당연히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보고 많은 교회들이 귀감을 얻는다고 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모습을 보고 교회의 모습을 칭찬한다. 교회는 교회됨의 역할을 마땅히 잘 감당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교회를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주일은 교회의 많은 역할 중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장애인을 품겠다는 결단이 이루어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이미 그렇게 하는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가진 영적 장애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장애라는 모티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보고 있지만(육체적인 눈) 보지 못하고(영적인 눈) 듣고 있지만(육체적인 청력) 듣지 못하는 것들(하나님의 음성)이 얼마나 많을까. 무엇보다 시작은 장애인 주일에 성경에 나오는 많은 장애인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해보기를 제언한다. 죄의 결과, 징벌로서의 장애 이해를 넘어 장애를 입으신 예수님, 그로인해 대속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장애는 그 자체로 값진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방법이라는 재해석이 새롭게 일어나기를!
한창희 - 하나비전교회 수련목회자
감리교신학대학교 동 대학원졸업
경력
베다니교회 아름다운 사역팀 前교육전도사
하나비전교회 비전부 現교육전도사
현재 교회에서는 비전부(발달장애인 부서),
비전센터(발달장애인 센터),
장년 장애인 담당 전도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