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의 엄마는 다시 옷을 입었다. 수지 아빠의 회사 사장이 그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그는 일을 수습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고만 있으면 봉급은 어디서 나오겠나?
수지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자기에게 짐을 덜어놓으려고 하려 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동생들에게서 도시락통을 받아 개수대에 넣고는 그들에게 "인형 옷 입히기 놀이 하자! 너네 둘은 내 장난감 드레스, 신발, 엄마의 낡은 화장품을 갖고 와라. 우리 함께 패션쇼할까?"라고 말했다. 두 여동생은 뛰쳐나갔고 그녀는 자신이 엄마를 달랠 시간이 충분할 만큼 여동생들이 시간을 끌었으면 하고 바랬다.
엄마는 아이들의 방과후 간식을 준비하면서 아빠에 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수지는 늘 그랬듯이 그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나중에 어린 동생들에게는 하소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랬다.
수지는 나이가 들어갔다. 그녀는 동생들에게 끼쳐질 부담을 대신 지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엄마의 기분을 감지하고 그 기분을 조절해주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아빠를 싫어하게 됐다. 그녀에게 아빠는 늘 무책임하고 엄마를 먼저 화나게 만드는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지와 같은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우리 여성들은 말하기를 좋아해서, 주위에 말할 대상이 자녀들 밖에 없으면 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한다. 집안 형편이나 실업, 혹은 당신이 겪고 있는 다른 어려움 등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녀들도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으면 감지할 능력이 있는데다 그러한 스트레스의 원인을 밝혀주면 실제적으로 자녀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당신의 평가를 말하는 것은 당신의 자녀가 비밀도 지켜줄 막역한 친구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사안이다. 자녀를 감정적 결속을 얻는 도구로 이용하거나 신체적 애정의 출구로 이용하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들로 하여금 성인의 역할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수지처럼, 다른 형제나 자매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자기도 모르게 익히게 된다.
당신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됐을 때(남편이 사역 중에 있어서 가족의 대소사를 의논할 수 없기 때문이거나, 혹은, 예를 들어, 당신이 홈스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을 감정의 쓰레기처리장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마라.
힘들겠지만, 결혼생활의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처하라. 남편에게 진실을 말하고 일들을 직접 해결하라. 그러나 자녀에게는 의존하지 마라. 그것은 자녀들에게 공평치 못한 일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당신의 관계에도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기사출처:
http://blogs.christianpost.com/guest-views/dont-use-your-kids-as-your-emotional-outlet-27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