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슈퍼 히어로들은 악당과 싸우기보다 집안단속에 바빴다. 3월 선보인 DC코믹스의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슈퍼맨은 배트맨의 거센 도전에 진땀을 빼야 했다. 그리고 4월 말 세계최초로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아래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엄청난 완력을 앞세운 싸움을 벌인다.
<배트맨 대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모티브는 유사하다. 먼저 캡틴 아메리카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부제를 말 그대로 ‘시민전쟁'을 뜻하는 시빌워 보다 ‘내부갈등'이 더 적당했다고 본다.
<시빌워>의 얼개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전작인 <윈터솔져>, 그리고 <어벤져스 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먼저 봐야 한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슈퍼 히어로들(어벤져스)은 가상의 국가 소코비아로 뛰어들어 거대 악당 울트론의 음모를 막아낸다. 영화상 <시빌워>의 출발점은 1991년이지만, 실제 시작지점은 소코비아로 봐도 무방하다.
소코비아 암살단 장교 출신인 제모 남작(다니엘 브륄)은 소코비아 사태에서 가족을 잃는다. 이에 제모 남작은 어벤져스에게 원한을 갖게 되고, ‘윈터솔져' 프로그램을 미끼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내분을 부추긴다.
이제 <배트맨 대 슈퍼맨> 차례다. 영화의 줄거리를 빨리 쫓아가고 싶으면 전작 <맨 오브 스틸>을 보는 편이 좋다. 전작에서 슈퍼맨(헨리 카빌)은 악당 조드 장군(마이클 셰넌)의 지구 정복 음모를 저지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브루스 웨인(벤 애플렉) 소유의 회사에서 일하던 직원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이에 브루스는 슈퍼맨과 겨루기로 마음먹는다.
내적 갈등에 휩싸인 슈퍼히어로
두 영화 모두 막판에 슈퍼히어로들은 화해하지만, 자신들의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다친다는 점 때문에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악당인 렉스 루서(배트맨 대 슈퍼맨)와 제모 남작(시빌워)은 이런 약점을 공략해 슈퍼히어로들의 내분을 부추긴다.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구성의 짜임새와 영화적 재미로 따져 볼 때 <시빌워>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벤 애플랙, 제레미 아이언스, 에이미 애덤스가 포진한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근소한 우위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엄청한 힘을 뿜어내며 싸움을 벌이던 슈퍼히어로들이 화해하는 대목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은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반면 <시빌워>는 아이언맨이 왜 그토록 캡틴 아메리카를 제압하기 원했는지 잘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갈등 과정에서 그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아이언맨 /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도 드러낸다.
캡틴 아메리카의 ‘맷집'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캡틴 아메리카는 기술력에서는 아이언맨에게 밀린다. 그러나 적어도 주먹싸움에 관한 한 캡틴 아메리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이언맨의 반격에 쓰러진 캡틴 아메리카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곤 아이언맨을 향해 한 마디 툭 던진다.
"하루 종일 싸울수도 있어."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1편 <퍼스트 어벤져>를 본 이들이라면, 캡틴 아메리카의 대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 스티브 로저스는 왜소하고 만성 폐렴에 시달리는 약골이었다. 그럼에도 기질은 강인해 뒷골목 건달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캡틴 아메리카가 지닌 특유의 강인한 기질은 슈퍼 히어로가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마블 스튜디오는 <아이언맨>,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며 이른바 ‘마블 코믹스 유니버스'를 구축한 모양새다. 올해는 DC코믹스가 <배트맨 대 슈퍼맨>을 내놓으며 마블이 장악한 판을 뒤흔들려 했다. 그러나 DC코믹스의 야심찬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단, 갤 개돗이 연기한 ‘원더우먼'이 꽤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긴 것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