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가운데 가장 무서운 구절들 중의 하나는 마태복음 6장14-15절일 것이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티셔츠나 머그잔이나 장미꽃들을 배경으로 한 컴퓨터 화면보호기에서 본적이 있는가?
이 구절이 이처럼 인기가 없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의 불편한 영역을 깊게 파고 들어서 우리 자신이 실행하기 어려운 행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예수께서는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진정으로 받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계신다. 아니면, 이보다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해석을 해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용서의 복음을 이해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가장 실질적인 방안이 우리가 용서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세상에 보여주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그러면, 용서란 무엇인가?
용서의 가장 적절한 정의는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이 온라인백과사전은 용서를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피해에 관하여 감정적으로나 태도상으로 변화를 보이면서 보복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서 가해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능력을 증대시켜 가는 의도적이며 자발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멋진 정의다! 진정한 용서란 분노, 원한, 앙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을 축복하기까지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는가? 기도하면서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길 요청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것은 무척 어렵지 않은가?
솔직해지자.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거나 원한을 품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로 실없거나 사소한 상황 때문에 초래된다. 그러나 실제로 상처를 받고 낙담하며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용서는 하나님만큼 커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용서에 대한 오해가 우리를 방해하고 혼동시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승리를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용서에 대한 오해를 확인하고 그것들이 근거 없는 것임을 규명해보자.
아래에 용서에 관한 7가지의 오해가 있다.
오해 1. 용서란 당신이 잊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당신은 영화 <맨인블랙>에서처럼 일종의 망각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는 그 장치의 불빛을 보기만 하면 기억이 지워져버린다. 기억은, 특히, 그것이 상처에 싸여있으면, 매우 생생하다. 항상 현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잊어버릴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잊어버리기로 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기억을 조절할 멋진 기회가 분명히 있다.
오해 2. 용서란 당신이 가해자들의 행위를 묵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용서란 누군가가 우리에게 행한 짓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용서는 하나님을 궁극적이며 완전한 심판자로 신뢰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분쟁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해결하는 법을 알고 계신다. 실제로 그분은 죄인들과 범죄행위들을 다루는 전문가이시다.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범죄행위를 어떻게 완벽하게 처리하셨는지를 잊지 말도록 하자.
오해 3. 용서란 당신이 당하더라도 그저 잠자코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반복해서 상처를 당할까봐 두려워서 용서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용서란 내 자신이 계속 학대당하고 이용당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당하고만 있으면 상대방이 나에게 가해를 입히도록 허용한 잘못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은 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용서란 가해자가 유발한 원한을 마음속에 품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고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오해 4. 용서란 당신이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계속 "친절하거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끔 두 사람에게는 거리두기가 가장 유익할 때도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명령하기는 한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지 않다.
오해 5. 용서란 사과를 받고 난 뒤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말이 모든 상처를 치료할 것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간결한 사과의 말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먼저 용서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용서하신다. 그러면 용서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실제로 경험하며 즐기게 된다. 그때, 바로 그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범죄자들에게 용서를 베푸시게 하는 건강한 자리에 서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용서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오해 6. 용서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종종 "그 사람들이 내게 용서를 빌고 나의 용서를 받을 만한 일을 먼저 하면 내가 용서할 것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우리는 요청받든 받지 않든 용서하라고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은혜란 상대방이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에라도 먼저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오해 7. 용서는 쉽다.
슬프게도 용서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용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의 자연적인 성정에 의하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고 원한을 품고 분노에 집착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우리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처럼 상처 받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느낌을 혼자서 바꿀 수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느니라"(눅1:37).
이처럼 용서에 대해 많은 오해들이 있기는 하지만, 단 한 가지 진실이 있다: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않으며 분노하는 것은 우리가 견디기에 힘겹고 비참한 짐이다. 그러므로 그 무거운 짐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내려놓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용서의 승리를 바로 지금 진정으로 경험해보지 않겠는가?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myths-about-forgiveness-162782/#Gh6Eb5dMtMdQrAOb.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