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절 최악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19대 국회에서 무산됐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훈령 410호가 공포되면서 설립됐고, 이어 전두환 정권이 거리 ‘정화'를 명분으로 일반인들을 부랑아 취급하며 마구잡이로 수용했다.
군 하사관 출신이자 부산 ㅅ교회 장로였던 박인근 원장은 조직을 군대식으로 편성하고, 폭행, 강간, 강제노역 등 온갖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졌던 가혹행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이어서 국내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졌고, 지난 4월엔 미AP 통신이 탐사보도로 실태를 전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2013년부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회엔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법)은 2014년 3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담당 상임위인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5월11일(수) 19대 국회 마지막 소위원회 회의가 열렸지만 형제복지원법은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의지가 강해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 기독교계도 일정 수준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처지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한종선 씨는 박 원장이 원생들에게 찬송가, 기도문을 강제로 외우게 했다고 증언했다. 한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120명의 소대원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30분 동안 세면한 뒤 5시에 일조 점호를 받아야 했다. 그동안에 복지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찬송가가 흘러 나왔다. 박인근 원장은 일조 점호 때 성경에 있는 내용을 물어봤는데 원장은 원생이 제대로 답을 못하면 두들겨 팼다. 소대원들도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찬송가와 기도문, 성경 본문을 외워야 했다. 난 성경에 기록된 노아 가족의 족보도 기억한다. 박 원장이 이 내용을 묻기도 해서다."
한 씨는 형제복지원을 나와서도 기독교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독교인들의 태도에서 회의가 들었다는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한 씨의 말이다.
"그동안 만난 기독교인들은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시련을 주신거다', ‘하나님께서 보살펴 죽지않게 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확인된 수자만 551명이다. 살아 남았어도 불구나 정신이상이 된 피해자들도 많다. 이분들도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셨단 말이냐?"
그럼에도 한 씨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에 기독교계가 앞장서 주기를 바랬다.
"박 원장 사례는 일부 기독교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계가 나서서 이런 일탈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은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독교계가 힘을 보태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