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성화 없는 칭의는 죄인의 칭의 아닌 죄의 칭의(I): 종교개혁적 칭의론에 대한 역동적 이해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머리말

kimyounghan
(Photo : ⓒ베리타스 DB)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미국 풀러신대원의 김세윤 교수가 방한하여 2016년 4월 한 강연에서 "칭의의 온전한 수확은 종말에 유보돼 있다," "칭의와 윤리(성화)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 2015년 10월 소망교회에서 그는 "사도 바울의 복음"을 주제로 "칭의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이해돼야 바울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칭의는 '이미 이루어짐-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음'의 구조 속에 있어 믿는 자로서의 첫 열매를 받은 것이지만, 그 온전한 수확은 종말에 유보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바울신학의 "새 관점"이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라는 큰 틀을 새로운 칭의론 구축에 제공했다고 본다. 샌더스(E.P. Sanders), 던(James D. Dunn), 라이트(N.T. Wright) 등이 중심된 "새 관점"의 학파는 칭의 교리를 바울신학의 핵심 교리가 아니라 외연으로 본다. 칭의 교리는 이방인 사도로서 바울이 이방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 유대주의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선교현장에서 만든 일종의 논쟁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N.T.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Grand Rapids: Eerdmans, 1997], 119). 영국의 복음주의자 톰 라이트는 바울의 이신칭의 구원론의 중요한 요소인 전가(imputation) 교리를 거부하고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갖는 "언약적 신실성"(covenantal faithfulness)을 주제화한다(N.T. Wright, Justification, God's Plan & Paul's Vision [Downers Grove: IVP Academie, 2009], 158-67). 김 교수는 라이트의 전가 교리 거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칭의를 현재적 칭의와 최종심판에서 주어지는 칭의로 나누는 견해를 수용한다. 라이트는 현재적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결정되어지나 최종심판 때 주어지는 칭의는 신자의 전 삶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여 칭의의 종말론적 유보를 주장한다. 김 교수는 라이트의 종말론적 유보 칭의론을 수용하고 있다.

김 교수의 칭의론은 '언약적 율법주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때,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언약적 율법주의'는 종말론적 유보, 곧, 구원이 벌써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구조 속에서 구원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칭의와 성화, 곧, 칭의와 윤리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준다고 한다. 바울신학의 "새 관점" 학파의 칭의론은 선교적 교회론적 의미에 집착한 탓으로 전통적 칭의론이 바울 신학 해석에 있어서 중요시한 법정적 의미를 무시한다. 동시에 전통적 칭의론은 지나치게 법정적 의미만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이 전통적 칭의론 관점과 새 관점 칭의론의 통합을 시도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톰 라이트의 통합 방식에 동의하며,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김 교수는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개념을 바울의 칭의론에 적용하고, 두 관점을 통합하는 길을 찾는다. 즉, 칭의를 의인(義人)이 되었다는 법정적·선언적 의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신분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관점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한다(김세윤, 『칭의와 성화』 [서울: 두란노서원, 2013], 71-72, 74, 78). 이것이 바로 그가 칭의의 종말론적 유보론을 제시하게 된 배경이다.

이에 대하여 브니엘 신학교 교수 최덕성과 개혁신학포럼은 2016년 5월 6일 김세윤의 종말론적 유보의 칭의론에 대하여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구원받은 자의 탈락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둘째, 종말론적 유보의 칭의론은 로마 가톨릭의 믿음과 행위 구원론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질문하였다. 교회의 전통 교리를 지키고자 하는 학자들의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학문적 토론이 인신공격이나 사상논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한국교회의 건전한 신학적 논의와 한국교회의 칭의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우는 풍토 조성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종교개혁적 정통주의 입장에서 칭의의 의미를 필자가 이해하는 10가지 항목으로 설명하면서 양자의 논거가 지니는 공헌과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비판적으로 종합하고자 한다.

I. 종교개혁적 칭의론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종말론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칭의론을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대들보 교리(articlus standis et cadentis ecclesiae)라고 하였다(Martin Luther, Works 6, 461). 그는 로마가톨릭의 믿음과 행위 구원론이 바울이 증언한 복음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오로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됨"(justification only through faith)을 역설하면서 어거스틴 이래 중세 천년동안 상실되었던 기독교의 칭의 교리를 재발견한 것이다. 루터의 칭의론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구원이라는 종말론적 지평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친구와 같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벼락을 받아 친구는 즉사하고 자신이 살아남았을 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중세 교회가 가르쳐준 수도사 생활에서의 행위의 의로 고민하여 지옥의 문턱에서 헤매다가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낯선 의(foreign righteousness)를 발견하고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칭의 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루터 자신이 이러한 지옥의 문에 이르는 심판의 체험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적 칭의 교리는 결코 재발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개혁 전통은 칭의 받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심판의 차원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필자의 독일 스승인 하이델베르그대 루터교 신학자 알브레히트 페터스(Albrecht Peters)는 그의 『칭의론』에서 칭의의 종말적 지평에 관하여 다음같이 피력한다: "종교개혁적 착상에 대하여 결정적인 것은 모든 사람들이 창조자와 심판자 하나님 앞에 최종적으로 드러나게 됨에 대한 칭의의 엄격한 종말론적 정향이 은폐되지 않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삶의 이러한 종말적 지향을 둔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첨예화시켰다"(Albrecht Peters, Rechtfertigung, Handbuch Systematischer Theologie, Bd. XII [Gerd Mohn: Gütersloher Verlagshaus, 1984], 33). 루터의 종교개혁적 교회는 중세교회가 행한 회개실천["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을 늘 염두에 두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는 준비를 매일의 회개, 예배 시의 죄고백, 죽음에의 준비에서 집중적으로 하였다. 루터의 1518년에서 1520년의 「위로 서신」과 「주기도문 해설」은 우리가 죽음과 함께 바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말한다. 루터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오 아버지여, 우리를 당신의 영원하신 진노와 거룩한 고통의 지옥에서 구원하소서. 죽음과 최후 심판 때 당신의 준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칭의론이 가진 종말론적 측면, 즉,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종말론적 신앙은 멜랑히톤과 칼빈에서도 유지되었으나 종교개혁적 교회가 1세기 지난 후 루터교 정통주의라는 제도종교로 자리잡고 난 후에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과 운동이 가진 역사적 생리라고 말할 수 있다. 1937년 독일 루터교 신학자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Nachfolge)에서 이러한 루터교 정통주의의 안일한 상태를 다음같이 비판하고 있다: "값싼 은혜라 함은 교훈과 원리와 체계 같은 은혜를 말한다. 죄의 사유는 보편적 진리라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독교적 신 이념이라 했다. 이것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자는 이미 죄의 사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론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는 은혜가 흡족한 옳은 교회라 하였다. 세상은 죄를 뉘우칠 필요도, 죄에서 해방되기를 애걸할 필요도 없다. 이 은혜의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덮어 감출 뚜껑을 얼마든지 싸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Dietrich Bonhoeffer, Nachfolge, [München, 1937, 1967(9판)]; 허역 역, 『나를 따르라』 [대한기독교서회, 1979], 24). 종교개혁신앙 운동조차 처음에는 서구 역사에 대변혁을 일으켰으나 점차 제도권 안에서 개신교 정통교회로 안주하게 되면서 초창기의 그 뜨거운 정신이 퇴색되어 갔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 정신의 열정과 신선함은 정통주의에 이르러 경직되고 종말론적 지평을 상실하면서 제도적 종교에 만족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종말론적 신앙이 흐려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소속된 우리는 종교개혁의 칭의론을 다시 논의하면서 초기의 그 종말론적 지평을 다시 불러내고 정통주의의 오만과 안일과 독선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II. 칭의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전가된 것이다

루터는 로마서 4장을 주석하면서 나의 죄가 그리스도의 죄로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로 전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그리스도]는 그의 의를 나의 의로, 나의 죄를 그의 죄로 간주(전가)하였다"(Martin Luther, "Lectures on Romans," in Luther's Works, ed., Hilton C. Oswald [Saint Louis: Concordia, 1972], 25). "사람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것은 행위의 의를 배제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는 것이요,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인으로서가 아닌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이 칭의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서 이루어진다"(John Calvin, Institutio, III. 11. 2).

로마서 8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사단의 세력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모든 피조 세계를 구속하도록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된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속죄 제사와 중보를 통해 사탄의 세력을 꺾음으로써 죄인을 대속하셨다. 바울은 이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갈 1:4)고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다. 그러므로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나사렛 예수의 복음과 바울이 전한 칭의의 복음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종교개혁적 칭의론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의 회복은 피조물들인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통치를 받는 관계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주권의 이전(移轉)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킴과 하나님 우편에 높임을 받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므로, 이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칭의는 지금까지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의인'이 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진입한 자가 되는 것이다.

의인(義人)이라 칭함을 받은 신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자이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현재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순종'을 하며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죽은 자를 일으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엡 2:1-10). 믿을 그 때,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신다(시 103:12).

김세윤 교수는 피력한다: "신자는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완성될 때까지 계속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서 있어야 한다." 이 표현에서 칭의가 믿을 때 일회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종말에 완성된다는 것은 칭의의 기준을 그리스도의 의에 두지 않고 나의 행위에 두는 것이 아닌가?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김 교수가 말하는 것 처럼 처음 믿음에서 시작하여 성화를 거쳐 종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가서 처음의 믿음과 칭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칭의는 나의 의로운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주어진 것이요, 나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나,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 아들의 의로서 처음이나 중간이나 나중이나 동일한 의이기 때문이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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