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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유산

2016년 5월 8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딤후1:3-8

(2016/05/08)

설교문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어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  생명이 중심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그리고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줄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린이 날이 지났고, 오늘은 또 어버이 날이기 때문에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나날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 끈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한과 아픔이었습니다. 좋은 수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가 죽음의 독을 품고 있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폐 손상증후군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결코 시판될 수 없었던 이런 제품이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판매될 수 있었던 것은 관계자들의 부당한 담합 때문이었습니다. 신제품을 판매하기 전에 기업은 대학에 자문료를 주고 연구용역을 맡깁니다. 돈을 받은 대학의 연구소는 기업에 유리한 데이터를 만들어줍니다. 기업은 그 결과를 홍보비를 주고 언론에 노출시킵니다. 정부 부처의 관계자들은 그 제품의 시판을 허용해줍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에 기업-대학-언론-로펌-정부가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소통을 손에 든 채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생명에 관련된 일이 경제논리에 좌지우지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생명 존중의 문화를 일구는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서 있는 삶의 자리가 어디든 이익이 아니라 생명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확고히 믿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생명을 해치거나 위축시키는 일에 가담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의 표상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주술적 기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을 아주 간명하게 고백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10:10b). 이 한 마디 속에 기독교인들의 삶의 목표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 살림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을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좌파들의 선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정수입니다. 생명보다 높은 가치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  검버섯을 기르다

부모 공경을 명하는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도 생명의 연속성과 관련된 계명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출20:12).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단순히 잘 봉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는 '생명의 전달자들'입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생명의 원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다섯 번째 계명은 나이가 많아져 노동력을 잃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가정이나 사회의 온전성을 재는 척도가 될 것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회는 경제적 능력이 좀 떨어지고 몸이 약한 이들도 인간적 존엄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맘 때면 꺼내 다시 읽어보는 시가 있습니다. 반칠환 시인의 <어머니5>인데 부제가 '검버섯'입니다.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산 바라보신다

칠십 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반칠환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중에서, 시와시학사)

어떤 광경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시인은 산골짜기를 터전 삼아 일평생 노동하며 살아온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허리는 굽었고 눈도 약해져 자꾸 눈물이 굅니다. 마루에 걸터앉은 어머니는 하염없이 먼산을 바라보십니다. 그 무심한 눈길이 향하는 곳은 단순한 풍경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회한조차 없이 자기 생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어머니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가 어머니 얼굴을 밭삼아 뿌리내린 겁니다. 시인은 담담하게 그 광경을 그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애잔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생의 엄중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주어진 자리에서 견뎌야 할 생의 몫을 잘 살아내셨습니다. 검버섯이 늘고 머리에 흰 이슬이 내린 이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시려집니다.

오늘 우리 정치권의 어떤 세력들은 그런 노인들을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 동원함으로써 젊은 세대로 하여금 노인들에 대한 존경을 철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나쁜 일입니다. 욕하고, 화내고,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들을 거리에서 보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을 보면서도 마음의 벽을 세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의 단절을 획책함으로 이익을 보려는 이들은 막힌 담을 허물어 화해를 이루려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이들입니다.

  •  거짓 없는 믿음의 뿌리

우리 이름은 누군가에게 어떤 정서를 환기시키게 마련입니다. 어떤 이름은 듣는 순간 마음을 환하게 하고, 어떤 이름은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새롭게 살아갈 희망이 솟구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울 사도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호명할만한 이름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안부를 묻고 있는 그 이름들이야말로 그를 든든하게 지켜준 성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뵈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 유니아 등등. 그들은 그 이름만 떠올리면 마치 어둔 밤하늘을 비추는 별빛처럼 바울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디모데도 그런 이름 가운데 하나였을 겁니다.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딤후1:3-4)

바울은 디모데를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이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신실한 유다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진실한 사람임을 알아보고 즉시 자기의 선교 여행에 동참시켰습니다. 그날 이후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곤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름과 더불어 디모데의 이름을 공동 발신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디모데는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을 생각하며 흘리는 디모데의 눈물이야말로 바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와 만날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바울이 그를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것은 그가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깨끗하다는 것은 말끔하게 비워졌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길이란 채움의 길이 아니라 비움의 길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의 신비를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스스로를 비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의 높으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 비우심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기에 저절로 깨끗해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자기를 성찰하면서 자기 비움에 충실한 이들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를 비우지 못해 누추해진 이들이 참 많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기독교인을 가리켜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처럼 벗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면 우리가 어찌 믿는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작은 손해라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세상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은지 늘 생각하며 살 때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공성이 무너진 자리에 극한의 이기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기자들은 공공연하게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합니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그 말 속에 우리 사회의 살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이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어 있던 것이 그에게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디모데의 존재 자체가 그분들의 존재에 대한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후손들의 영혼을 크고 맑게 만드는 일의 바탕입니다. 돈이나 재산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나님의 영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그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를 일깨워서, 바울과 교회의 원로들이 그에게 안수함으로 교회의 직무를 맡길 때 싹텄던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성도들은 기독교인의 완전에 이르기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은 어중간한 만족에 취하면 안 됩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나는 괜찮은 신자지' 하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한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이나 인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새로워짐입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의 목표를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빌3:10-11)

바울은 자기가 그 목표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앞을 향해 몸을 내밀면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러할진대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가야 할 길이 참 멀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하여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앞서 간 이들의 발자취를 잘 보고 따라가면서 또한 누군가를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자주 쓰신 휘호가 있습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나의 행적이 능히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참 두려운 겁니다. 함부로 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보다 조금 앞서 걸어간 사람으로서 디모데가 바른 길을 따라 걷도록 안내해주고 싶어합니다. 그 바른 길은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딤후1:7)

우리 영혼의 지향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영, 곧 비겁함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때, 악에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악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지도 못할 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이들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십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끝끝내 관철시키려는 검질긴 힘입니다. 진리를 위해 고난까지도 넉넉히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것조차 사랑으로 품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 사랑은 나와 무관하게 생각되던 사람을 맞아들이고 그의 따뜻한 품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 좋을대로 살지 않고 자기 욕망을 잘 조절하여 다른 이들에게 복을 전하려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멋진 삶에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초대에 응하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 삶은 아름다워질 것이고, 우리 속에 싹튼 그런 신령한 기운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믿음의 계승보다 아름다운 계승은 없습니다. 좋으신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에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 임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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