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는 한동안 한 남성에게 피살당한 한 여성을 추모하는 메모로 뒤덮였다. 메모지에 적인 글귀 한 줄 한 줄엔 언제 어느 때 범죄의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이 가운데 자신을 남성 성소수자라고 밝힌 이의 메모가 유독 눈에 띤다. 메모에 적힌 글귀 그대로를 옮겨 본다.
"저는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일상 속에서는 안전하지만,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문득 누군가 나를 희롱하거나 해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여성의 삶은 이런 공포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조현증을 앓고 있는 범인의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조현증, 쉬운 말로 망상증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묻지마 살인이라는 결론은 쉽사리 수긍이 어렵다.
가해자는 여성만을 노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 보다 못한 약자여서다. 성소수자 역시 언제든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범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더구나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엔 혐오가 만연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여성, 노인, 성소수자, 장애인 등 약자들은 더욱 위험한 지경에 내몰렸다.
그런데, 약자를 업수히 여기는 심리가 곧장 범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제도다. 사회가 제도적으로 약자를 보호한다면 혐오범죄가 발생할 여지는 줄어든다. 역으로 제도가 약자를 무방비 상태로 내몬다면 가해자들은 활개치는 법이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가 혐오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시류에 편승해 ‘만만한' 대상들을 지목해 혐오를 부추기지는 않았던가? 그리고 그 만만한 대상에 여성과 성소수자가 우선순위에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