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전체를 주님 앞에"
(미 6:1-8, 롬 12:1-8, 마 25:31-40)
창조절 열둘째주일
[한 사람을 기억하는 복음서]
1947년 7월 20일, 함석헌 선생은 한 편의 시를 씁니다. 갑작스레 해방을 맞은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무정부 사회가 되었고, 무주공산인 이 땅에 미군정과 소련군이 각각 남북에 주둔하면서, 해방공간은 항일과 친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갈등과 혼란이 지속됩니다.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을 맡았던 함석헌은 제대로 된 나라를 기대했으나, 계속되는 소련군의 횡포에 "신의주 학생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감옥을 살고, 자칫하면 처형을 당할 수도 있기에, 1947년 2월 26일 집을 떠나 3월 17일에 월남합니다. 그리고 7월 20일 한 편의 시를 쓰는데, 제목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입니다.
만릿길 나서는 날 / 처자를 내맡기며 /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을 감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러분은 그 사람을 가졌나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절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無言)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잊을 수 없어서 쓰인 문서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네 번에 걸쳐 네 복음서를 본문으로 연속 하늘뜻펴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이 예수에 관한 글을 썼지만(눅 1:1) 우리에게는 네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복음서는 저자가 속한 교회의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예수의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네 복음서와 향린교회의 창립 정신 네 가지를 연결하여 살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첫 교회들의 모습과 71년 전 향린교회의 초기 모습을 병행함으로써, 우리의 뿌리가 어떠한지, 차곡히 쌓아온 우리의 신앙 역사를 발판으로 하여 오늘을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내일을 마련할 것인지를 살피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마태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서가 나오기까지]
마태복음서는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 바벨론 포로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에 제일 먼저 쓰인 마가복음서보다 앞에, 복음서 중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1세기 후반 유대 역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들은 66년부터 72년까지 진행된 유대-로마 전쟁이라는 트라우마 위에 쓰인 문서입니다. 유대-로마전쟁은 참혹한 전쟁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70년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60만이 죽었다고 하고, 요세푸스에 따르면 11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은 성전을 공략하기 위해 성전 주위에 반-영구적인 진지를 구축하여 성 높이만큼의 벽을 쌓고는 탈출하는 사람들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았는데, 전쟁이 마무리될 때쯤 예루살렘 주위에는 만 개의 십자가가 섰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안에서는 과격파 유대인들이 결사 항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해 모든 식량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서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유대 군인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성전을 약탈한 로마군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만 6만 명을 투입했고, 수만 명의 식민지 유대 청년들을 징발했으며, 이들은 로마군과 함께 무자비한 학살자 대열에 끼어야 했습니다. 같은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들은 유대-로마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신은 파괴되었고,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대(對) 로마 항전에 실패하고 잿더미가 된 유대 사회를 복구하기 위해 바리새파 계열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얌니야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유대인의 단결을 외쳤습니다. 그는 전쟁에 반대했던 온건파였으나, 2대 수장인 가말리엘 2세는 전쟁에 가담했던 행동파 바리새파 랍비 출신으로, 매우 공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엄격한 율법 규정을 적용하여 모든 유대 회당에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 이 가르침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집단을 선별하여 추방하고 잡아다 매질하였습니다. 이때 18개의 기도문이 만들어지는데, 제12조는 '나자렛 도당에 대한 저주'였고, 랍비적 바리새파 숙청 작업의 표적이 된 대상은 바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 유대 그리스도인 교회였습니다.
마태교회는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난 예수에게서 전혀 다른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헤롯 정권은 로마의 주구(走狗)가 되어 마치 애굽 왕이 히브리 갓난아이들을 죽이듯 자기 백성을 학살하는데, 예수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이방인의 땅이라 불린 갈릴리로부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합니다(4:12-17). 그는 백성의 멍에를 함께 메어주어 짐을 가볍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11:30).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12:17-21). 그래서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도 빛이 비치며(4:16), 모든 이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겁니다(12:21). 당시 왕들은 군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메시아 예수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옵니다(21:5). [21세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면 아마 '에쿠스'를 타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대신 지금은 없지만 '포니'를 타셨겠지요.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이고, '포니'는 '작은 조랑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왕은 전쟁으로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5:5)라고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로마 황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절대 아니라고 말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5:9) 선포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교회 교인들은 이런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로마의 핍박을 받은 것은 물론 같은 유대인 동족에게도 미움을 삽니다. 어떤 이는 매를 맞아 죽었고, 어떤 이는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한마을 유대 회당 공동체로부터도 추방당해야 했고, 어떤 이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료를 밀고해야 했습니다. 때론 밀고하고도 함께 추방당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배신감에 분노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 배신한 자신을 저주해야 했습니다. 온 동족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마의 거대한 폭력의 희생자이자, 또한 같은 동족에게서조차도 핍박받은 마태교회는 무엇보다도 안팎으로 가득한 전쟁의 흔적과 폭력의 잔재들을 없애야 했습니다. 원수를 향한 분노가 몸속 깊이 아로새겨 있지만 복수할 대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복수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이들이 마태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보통 마음속에 분노를 채우면 그것은 자기 안에 생채기를 내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이에게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처받은 가부장은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하고, 당한 이는 더 약자인 자녀에게 화풀이하고, 그 자녀는 학교에서 친구를 '왕따'로 만들어 괴롭히는 폭력의 먹이사슬이 이어지게 됩니다.
[마태교회의 다짐과 신앙의 실천]
그런데 마태교회는 로마가 제공한 폭력의 사슬에서 마지막 희생양이 되었던 스승 예수의 죽음을 기억했기에, 자신들이 그 사슬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와 분노의 마음을 엄청난 윤리적 힘으로 승화시켜 보려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견고한 자아 구축을 시도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3).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자매를 가리켜 얼간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불려갈 것입니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자매가 생각나거든 교회에 가는 발길을 돌려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예배를 드리십시오"(5:22-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앙갚음하지 마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십시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5:38-42, 44).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10).
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놀라운 도덕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는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끝납니다. 예수 탄생이 임마누엘 약속의 성취이고(1:23), 예수의 마지막 명령이 임마누엘 약속입니다(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교회 교인들은 세상 끝날까지 미가 예언자가 외친대로 날마다 정의를 실천하고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매 순간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 본문에 의하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마지막 날, 심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곧 우리 곁에 있던 보잘것없던 그 사람이 우리와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들의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늘 주눅이 듭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헐벗고 병들기 쉽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되어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과연 누가 보잘것없이 여겨질까요? 어린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은 어린 녀석이 뭘 아냐면서 보잘것없다고 여겨집니다. 생명 살리는 가사 노동은 돈이 되는 직장 노동보다 보잘것없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머리 쓰는 일보다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도 역시 보잘것없는 사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대우받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는 역사의 모진 풍상을 겪은 노인들의 경험이 무시됩니다. 또 가끔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보잘것없음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깨달았습니다. 로마제국의 모든 폭력과 억압이 바로 더 뛰어난 것, 더 강한 것, 더 효율적인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저 자신감! 가장 화려한 문명의 제국이라고 뽐내는 것 이면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얼마나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마태는 알았습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려놓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위한다는 이유로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것 또한 공동체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18:10-14). 그래서 예수님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함께 하겠다 하셨고(18:19-20),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용서를 빌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18:21-22). 제국의 폭력이 혹시나 자신에게 전염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가장 무력한 존재인 어린이들을 받아들여 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고(18:1-5),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걸어가는 모든 행동이 누군가를 실족하게 할까봐 노심초사합니다(18:6-9). 일상의 삶에 진실과 정의를 녹여내기 위해 철저한 자기 수행을 합니다. 겉으로만 옳은 척하고,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을 뛰어넘으려고 한 것입니다(5:20, 48-6:4).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라도 좋을 것입니다. 마태교회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 속에서 하나님을 봄으로써, 그들을 품는 공동체가 됨으로써, 참으로 어려운 시절 강풍에도 흔들림 없고 큰물에도 요동하지 않는 자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향린교회가 세워질 때]
향린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 이 땅 곳곳에는 식민지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었고, 온 산하는 참혹한 전쟁 소리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향린교회를 세운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 나라의 방주인 교회를 통해 자신들과 이웃을 구원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의 말씀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이 절망에 빠진 민족을 구해야 할 교회는 교권 싸움과 목사들의 거짓으로 황폐하여 민중의 조소의 대상이 되고, 똑똑하다는 청년들은 교회에 실망하여 고립주의, 또는 냉소주의에 흐르지 않으면 문화운동이니 사회운동이니 해서 제 잘난 멋에, 쓰러져가는 유행병에 희롱을 받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남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그 사태에 휘몰려 갈 것 같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탈 방주, 그리고 우리와 인연이 된 이들을 건질 방주를 만들자! 그리고 남은 무리들에게도 이것을 권해서 각기 발 디딜 자리부터 만들고 그리고 한 사람씩이라도 끌어올리고, 절망한 저 무리들에게 살 수 있는 산 모델로서 보여야겠다. 이것이 이 교회의 발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로 우리 교회는 남을 위하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여 구한다는 일과 유리될 수는 없었습니다."
남을 살리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세운 향린교회는 폐허가 된 삼천리 반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살아 있는 모델이 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하루를 새벽기도회로 열고 저녁에도 성서공부 시간을 가진 것은 삶 전체와 연결되는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주일예배 참석으로 '할 일 다했다' 여기는 것은 존재와 삶의 변화 없는 무력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생활 공동체'라는 창립정신을 세운 것은 삶 전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홍창의 장로님의 회고를 들어보겠습니다.
"향린교회가 처음 생길 때의 특징은 일반교회와 같이 이것저것 구색을 맞추어 형식을 갖춘 교회라기보다는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의미 있는 일에 같은 동지들이 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생활 전체를 주님 앞에 바쳐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인지 그 하나의 패턴(pattern)을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우정을 통하여 서로 힘을 합하고 격려하여 이루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하늘뜻펴기 제목 "생활 전체를 주님 앞에"는 바로 홍창의 장로님의 이글에서 따 왔습니다. 바울 사도도 오늘 우리에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구원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우리 생활 전체를 주님 앞에 바치자는 신앙으로 모인 이들입니다.
향린교회가 태어난 1950년대부터 매 십년 단위로 각 년대를 대표하는 단어를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요? 1950년대는 물론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1960년대는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1970년대는 '유신헌법과 전태일', 1980년대는 '광주민중항쟁'과 '유월항쟁', 1990년대는 'IMF', 2000년대는 '촛불', 2010년대는 '대통령 탄핵'과 '눈떠보니 선진국', 2020년대 초반은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의 농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쟁으로 시작해서 잠깐 민주화의 바람이 불 것 같다가 군인들의 폭압 정치에 이어, 군인에 의한 국민학살, 급기야 경제 혼란과 촛불 정국, 코로나 위기를 잘 넘어갔다가 다시 비상식과 몰상식으로 후퇴하기까지 한국 사회도 폭력의 흔적과 죽음과 억울한 원성의 소리가 이어지는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우리의 신앙은 향린교회로 하여금 그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현장의 목소리로 울려 왔습니다. 향린교회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서 60-70년대 독재에 맞서 싸웠고, 80-90년에는 민주화와 민족분단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으며, 2000년에 들어서는 사회의 약자들과 억울한 죽음,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서 촛불을 드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이만하면 잘 해왔다고 나름 자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며, 가질 수 없는 것도 꿈꾸는 존재입니다. 한순간 자만하고 안주하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 수 있지만, 얼을 곧추세우고 정신을 차리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 이루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더 우리를 단련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주일만 잠깐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교인(Church goer)은 아닌지, 우리 내부에도 혹시나 세상에서 물들어 온 경쟁과 폭력의 잔재는 없는지, 형제자매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어린이/푸른이 교우에게 향린 전통과 신앙을 잘 전수하고 있는지, 일상의 삶에서 신앙의 향기가 계속 피어나는지, 불의를 보고 과감하게 나갈 힘이 남아 있는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신속하게 옮기고 있는지, 매일 기도와 성서 공부를 통해 내공을 쌓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축구 선수들이나 피아노 연주자들의 감각만큼이나 예수를 따라가는 우리 삶과 신앙의 감수성이 발달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각 대학의 교수들이 시국 선언문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경희대학교 교수들이 시국 선언문을 냈는데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A4 용지로 무려 4페이지나 되는 이 선언문의 앞부분은 폐허가 되어가는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뒷부분에는 함께 하자는 작은 소망을 밝힙니다. 건너뛰면서 일부분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퇴계 이황은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편지글 22편을 뽑아 "자기를 살핀다"라는 제목의 책 <자성록(自省錄)>을 쓰는데 그 서문의 첫 구절에 논어를 인용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말을 적게 한 것은 몸이 따라가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이다. 지금 친구들과 학문을 강구하느라 서신을 서로 나누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였지만 그래도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미 말한 뒤에 저 사람은 잊지 않았는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저편과 내가 모두 다 잊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부끄러울 뿐 아니라 아무런 거리낌(忌憚)도 없이 되는 것으로서,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다."
저 또한 오늘 설교가 끝나고 여러분은 제 설교를 잊지 않았는데 제가 설교내용을 잊을까 두렵고, 여러분도 잊어버리고, 저도 잊어버리고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될까 더욱 걱정입니다. 한편의 설교가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성숙시키고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실 많은 고민이 됩니다. 이제 서 말이나 있는 구슬을 꿰는 일은 여러분에게 맡겨졌고, 진정한 예배는 예배실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언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머리의 깨달음조차 없지요. 머리로 깨달으려 하면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윽박지르는 목회자로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향린교회 교인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묻고 싶습니다. 이미 깨달은 우리 향린 식구들은 신앙의 먼 순례길의 어디쯤 가시고 계시는지요? 마지막으로 마태교회에게 분부하셨던 주님의 조언을 들으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윤석열 정권의 검찰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수구꼴통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저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삶의 전체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한 사람의 종교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한 사람의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성서에 밑줄을 그었다면, 이제 생활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변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