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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과 교회

2016년 5월 15일 경동교회 성령강림주일 예배 설교자 채수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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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

성경본문

사도행전 2:14-21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로마서 8:14-17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요한복음서 14:26-27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설교문

1. 오늘은 성령강림절, 스승의 날,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입니다. 시차를 두고 일어난 사건들이지만, 이 세 사건은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성령 강림은 교회의 출발 사건이었습니다. 진리의 영, 자유의 영인 성령은 인류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고, 성령강림 사건은 모든 사람의 평등, 곧 민주화의 한 부분을 성취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빠른 기간 안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나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유교적 전통에서 온 높은 교육열과 스승에 대한 존경, 한국인의 뛰어난 개인적 능력, 부지런함과 열정의 표현인 '빨리 빨리'에 덧붙여 기독교의 평등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급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는 겨우 130년을 넘긴 짧은 선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교회급성장의 배경에는 일제 식민 지배, 남북분단, 한국전쟁, 개발독재와 근대화, 도시화와 산업화 등의 사회적 요인 외에도, 19세기 초, '대 부흥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성령운동'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령운동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믿음의 확신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방언과 치유의 은사, 거듭남의 체험 등이 그것입니다. 성령운동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차별 받던 여성들을 해방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교역자 중심적인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를 일깨우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령운동은 마치 양면에 날이 선 칼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성장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성령운동이 지나치게 물량적인 성장지상주의를 부추겼다는 것, 교회를 대형교회와 민중교회로 양극화시켰다는 것,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는 했지만,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는 것, 개인의 '영혼구원'에 더 관심이 있지 고난 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정말로 그리스도인들을 이기적인 영혼구원론자로 만드는 것일까요? 성령 체험을 갈구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사람들일까요? 복음화와 인간화는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일까요? 성령은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성령 받은 표징은 무엇이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어떤 은사'를, 그리고 '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2. 사도행전에 따르면 성령은 회개하고 용서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행 2,38).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을만한 믿음을 가졌거나, 특별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자신의 신앙, 특별한 영적 능력이나 경건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누가 성령을 받느냐는 것은 인간적 척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실 뿐입니다. 성령은 마치 바람처럼 하나님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곳에 보내십니다(고전 12,11).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의 다양성은 공동의 이익, 곧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고전 12,7-11).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의 일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을 사람의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고전 12,25-26).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목적은 이 세계로부터 종교적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갈등 있는 이 세계의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의 구원하고 해방하시는 주권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구원하십니다.

영을 분별하는 일은 예수님 당시에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쫒아내셨을 때,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바알세불의 역사인지를 구별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적과 기사가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분별하는 문제에 직면했고,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갈 5,22)로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평화의 하나님이시고(고전 14,33),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고전 14,20)라고 권면합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는 세상에서 영을 분별하는 일은 중요하고, 그것은 교리와 신학만이 아니라, 창시자와 추종자들의 삶이 과연 성서가 증언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인지에 따라서 판단될 것입니다. 영들을 구별하는 기준은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의 표징'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창시자의 이름을 높이고,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을 약속하는 영은 거짓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개역개정판). 마태와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보도하는데, 마가복음에 의하면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몰아내셨다'(the Spirit sent him out into the desert:NIV/ 독일어 성경은 treiben)고 합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신 성령께서는 주님을 믿는 우리도 인생이라는 거칠고 황막한 광야로 몰아내실 때가 있습니다. 성령과의 사귐 속에 있는 삶이 곧 무풍지대에서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령 받았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령 받은 사람도 광야 같은 인생 한 복판에 내던져집니다. 고난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는 삶이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의 사귐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이 진실로 사랑하기 어려운 대상은 밖에 있는 원수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원수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내가 스스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할 수 없는 '나 속의 나'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3,16-17). 우리는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6,19-20).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는 성도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영광과 기쁨도 나누어 가지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 안에는 높고 낮음도, 귀하고 천함의 구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쓸모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은 참 인간성만이 아니라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인간성의 모든 불행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적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진 삶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요엘 예언서를 인용하여 설명 합니다. 예언자 요엘은 무서운 파국의 종말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에게 부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의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행 2,17-18).

모든 육에게 성령이 부어진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 현실, 이 세상의 세속성의 심연에까지 예수님의 주권이 도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체험은 특수한 종교적 현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모든 육체적, 사회적 삶의 영역이 성령의 현존과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자 요엘은 '모든 육'이라는 말로 무엇보다 약한 사람, 힘없고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을 표현합니다. 아들과 딸들, 젊은이와 늙은이, 남종과 여종은 당대 시대의 주류가 아니라 주변부 사람들입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젊은이들, 더 이상 충만한 삶에 참여할 수 없는 노인들이 먼저 생명의 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세대 간의 평등이 탄생합니다. 누구도 너무 젊거나 너무 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드리는데서 평등합니다. 젊다는 것이 어떤 장점도, 늙었다는 것이 어떤 단점도 아닙니다.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고, 남종과 여종이 영을 받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합니다. 성령의 체험에서 남성과 여성, 남종과 여종,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의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회적 차별을 지양합니다. 오늘 성령의 은사 속에 있는 교회는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주인과 종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한 삶, 충만한 삶을 사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병든 이들이 치유를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절망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그들의 삶은 은사가 됩니다. 까닭은 그들의 삶이 성령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초대교회 제자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었습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신과의 대화를 위한 이상한 언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동시에 방언은 외국어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예루살렘에 모인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방언, 곧 외국어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증언은 '의사소통'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일방적인 주장이나 독백은 증언일 수 없습니다. 선교가 대화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는 선교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닙니다. 대화 자체가 선교입니다. 대화 속에서 역사하고 드러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영,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종교간 대화, 무신론자들과의 대화,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이 아니라, 진리 자체, 곧 하나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화로서의 선교'는 언제나 '초대'이지 '개종 강요', 혹은 '감언이설의 유혹'이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 성령과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는 어떤 공동체일까요? 의사소통이 활발한 교회입니다. 신자와 목회자, 어린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외국인과 내국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은사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 활발한 교회,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 존중받는 공동체,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신앙 공동체,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신앙공동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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