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극장가의 최대 화제작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일 것이다. 이 작품은 개봉 15일만인 지난 5월26일(목) 누적 관객수 5,047,716명을 기록했다. 역대 5월 개봉 영화 중 최단 기간 500만 돌파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각각 개봉 17일째와 18일째 500만을 돌파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곡성>이 천만 관객을 넘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영화가 흥행돌풍을 일으킬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흥행배우 황정민을 기용했다고는 하나,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조연에 그친다. 게다가 무속신앙, 악마주의, 좀비 등의 코드가 뒤범벅이된 이야기 전개는 일부 마니아들에게나 흥분을 일으킬 요소들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몰입력은 굉장했다. 가장 먼저 배우 곽도원의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변호인>,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 영화에서는 귀신 들린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 종구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매 장면 얼굴을 비치며 ‘미친 존재감'을 뿜어낸다. 무당 ‘일광'으로 분한 황정민의 연기도 명불허전이다. 특히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은 <신세계>에서 보여준 퍼머 머리에 버금가는 인상을 남긴다. 늘상 내뱉는 전라도 사투리 역시 요사이 유행하는 말로 ‘착착 붙는다'.
아무래도 그의 연기의 백미는 살굿 장면일 것이다. 약 10분 가량 이어지는 이 장면에서 그는 약간은 어설퍼 보이면서도 신들린 듯한 무당연기로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는다. 그는 지난 해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 등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왕성히 활동해 왔다. 그런데 그의 활동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식상하다',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는 반응을 보인 관객들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일광 연기는 그간의 곱지않은 시선들을 싹 날릴만큼 뛰어났다. 특히 살굿 장면에서의 존재감은 주연 곽도원을 주변으로 밀어낼 만큼 강렬했다.
의심을 의심하다
이제 내용으로 들어갈 차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의심을 의심하게 됐다. 종구의 직업은 경찰이다. 경찰은 늘 증거 더미 속에서 끝없이 의문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종구 역시 극 초반에서 연달어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실체에 의심을 품는다. 감독은 극중 무명(천우희)의 입을 빌려 종구의 의심 때문에 귀신이 종구의 딸 지혜(김환희)에게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딸에게 귀신이 들린 건 종구의 의심 때문에 내려진 징벌인가?
영화는 이 같은 의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답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일광은 단지 미끼를 문 것 뿐이라며 종구를 안심시킨다. 반면 무명은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징벌일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사실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렇게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게 흘러간다.
영화든 소설이든 연출자(작가)들은 기승전결의 꽉 짜여진 구성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관객(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과관계를 깨는데 더 공을 들인 것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보는 시선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 심어 놓고 관객들의 반응을 떠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감독의 이 같은 의도는 악마와 부제와의 대화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동굴에 은신해 있던 악마는 자신을 찾아온 부제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러나 직접화법은 아니다. 부제가 악마라고 했기에 자신이 악마라는 것이다. 이러자 부제는 엄청난 혼란을 일으킨다. 바로 이때 악마는 신약성서 <루가복음>의 말씀을 부제에게 들이댄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 공동번역 성서 루가복음 24:38~39
아마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악마가 성서 말씀을 인용하는 광경이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악마 역시 성서를 잘 안다. 예수는 광야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악마는 성서 말씀을 들먹이며 예수를 유혹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성서가 악마적 욕망과 결합해 자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 이 나라는 어떨까? 이른바 주류 기독교계는 성서 말씀을 무기 삼아 여성, 타종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부추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종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
나홍진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코미디라고 규정했다. 감독이 재미 삼아 갖가지 소재들을 뒤섞어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코미디라는 규정과 달리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믿음이 미덕일 수 있다고 공공연히 설파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