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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식과 은혜 안에서 자라라

2016년 5월 29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벧후 3:11-18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 자기가 받은 지혜를 따라서 여러분에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에서 이런 것을 두고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서, 무식하거나 믿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 그것을 잘못 해석해서, 마침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십시오. 이제도 영원한 날까지도 영광이 주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설교문

- 재림은 지연되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삶은 주님이 주신 선물인데 지난 한 주간 한껏 기뻐하며 사셨는지요?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 마음은 미세먼지 뒤덮인 저 대기만큼이나 흐릴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에 아예 눈을 감고 살면 모를까 세상은 우리를 참 피곤하게 만듭니다. 고위직 검사 출신의 홍 모 변호사는 1년 수입이 91억원에 수익형 부동산 123가구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별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입니다. 그런 보도에 접할 때마다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알뜰살뜰 살아가는 이들은 깊은 상실감을 느끼곤 합니다. 우스개소리이긴 하지만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장사가 좀 잘 된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영세 상인들을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것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김기원 교수는 우리 국민들이 처해 있는 세 가지 어려움을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고단함'이란 생산 과정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진급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자꾸 미루며 살아갑니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모두가 지친 표정을 짓고 살아갑니다. '억울함'이란 1차 분배과정의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상당합니다. 똑같은 노동을 하고도 받는 임금은 다르니 억울합니다. '불안함'이란 2차 분배 과정, 즉 복지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이를 안심하고 낳을 수 없고, 노년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김기원,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한겨레신문, 2012년 3월 22자 컬럼).

혐오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약자 괴롭히기가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조마조마하게 살아갑니다. 장기판 뒤집듯 세상이 한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는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적실합니까? 안팎으로 우리 삶을 뒤흔들어놓고 있는 세속의 물결 속에서 십자가를 든든히 붙들고 사십니까? 초대 교회 교인들이 그 힘겨운 나날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박해와 천대를 받고 있지만 주님이 오시면 그 모든 억울함이 해소될 거라는 믿음 덕분에 그들은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 마라나타(maranatha),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뜻의 아람어입니다. 하지만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이 자꾸 지연되자 사람들은 실망하기 시작하였고, 세상 사람들은 믿는 이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벧후3:4).

- 거짓 교사들

굳건했던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허우룩한 그들의 마음을 파고 든 것은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구원에 이르는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스로 설 힘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자기 확신에 찬 이들에게 이끌리는 법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단 종파에 이끌리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이 명확한 삶의 지침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리산지리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길에 지친 사람들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누군가가 확고하게 제시하는 길을 따라 걷고 싶어합니다. 일종의 노예의 영에 사로잡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황 혹은 회의의 여지를 주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오는 이리들인지도 모릅니다.

초대교인들은 두 가지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억압하면서 율법주의로 회귀하도록 유도한 유대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이 신비한 영적 지혜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가 맞서 싸우는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 인간의 고통받는 삶의 자리에 찾아오시고, 인간에 의해 훼손된 이 땅의 질서를 바로잡으시려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삶을 지식의 문제로 환원시키곤 했습니다. 자기들은 그런 지식을 갖고 있기에 무슨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인간의 육체를 멸시했습니다. 육체에 대한 멸시는 금욕주의를 낳기도 하지만 방탕한 삶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1-2세기의 교회는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던 교인들의 마음을 붙들어주기 위해 기록된 문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베드로라는 이름의 권위를 빌어 교인들에게 일종의 영적 가르침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는 유대교 묵시문학 전통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다양한 전거를 들어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천사들이 벌을 받는 이야기(2:4), 노아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2:5), 소돔과 고모라가 잿더미로 변했던 이야기(2:6), 불의의 삯을 좋아했던 불의의 아들 발람 이야기(2:15)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심판의 순간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노아는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2:5)으로, 롯은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2:7)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로움'입니다. 영적 지식이 아닙니다. 의로움은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굳게 붙들려는 태도와 관련됩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험하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비록 많다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단호히 거절하는 것, 불의를 적당히 용인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이야말로 의로운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질 것입니다.

  •  심판은 반드시 온다

그러면 그 날이 왜 자꾸 지연되는 것일까요? 베드로는 주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자기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도록 제공하신 유예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은 죄인들이 돌이키기를 바라며 인내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우리 잘못에 대해 징계하지 않으신다 하여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거나, 하나님은 세상 일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이웃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자기 삶의 한계를 분명히 자각하고, 늘 하나님의 마음에 자기 마음을 붙들어매고 사는 사람, 이웃들의 숨죽인 신음소리를 가려 들으며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마음 쓰는 사람 말입니다.

유예의 시간이 지나가면 심판의 시간이 옵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유대교묵시문학 전통에 따라 물로 했던 첫번째 심판에 대비되는 불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인데 그 때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땅· 공기·물·불 등의 원소들은 다 불에 녹아버릴 것입니다. 그 날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의 실상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꼭 불에 녹지는 않아도 불의한 자들이 저질렀던 비리는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역사의 심판이 꼭 있습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아주 비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피의자로 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입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그러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가 지은 인생의 집이 든든한지 부실한지 드러날 날이 올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고전3:12-15a)

오늘 우리가 짓는 인생의 집은 어떠합니까? 욕망의 터 위에 집을 짓는 이들이 있고, 진리 위에 집을 짓는 이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자기 배를 하나님처럼 여기며 살다가 영혼이 망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자기 양심을 지켜내 참 자유를 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11-12a)

삶은 선택입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등지는 이들은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썩어질 것을 위하여 영원한 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고난을 받아들임을 통해 그들은 하늘의 백성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는 주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강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세상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언제라도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사야는 11장에서 아름답게 형상화한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65장 말미에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사65:25)

서로가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존중하는 이들은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의 주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를 하나님이 내신 존재로 여기며 아끼고 존중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성품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사로잡힌 이들이 어깨를 겯고 함께 이루어가야 할 꿈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열려고 하는 이들은 십자가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십자가가 아니고는 아름다운 세상은 열리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 사도의 말을 오해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괜찮은 신자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는 이들은 불의한 세상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저항하며 사는 이들입니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짓에 속지 마십시오. 저 세상에서의 행복을 약속하며 이 세상의 불의에 눈 감게 만드는 가르침에 속지 마십시오. 믿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실상은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이들입니다(빌3:19).

소만 절기의 끝자락에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저 나무들처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토록 흉포해진 것은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18:8b)며 탄식하셨던 주님의 마음이 느꺼워져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조금씩이라도 이웃들에게 마음을 여십시오. 적대감이 가득 찬 세상에 사느라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며 사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사람답게 사십시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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