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제10회 해외석학강좌에 강사로 페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초대했다. 강좌는 6월10일(금) 오후 4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4층 1연수실에서 진행되며 강연 주제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다. 그의 이력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강연에서는 그의 보수적 신학관이 피력될 전망이다.
페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1929년 동독의 루터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베를린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베를린, 할레, 하이델베르크, 본, 웁살라, 런던 등지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고 1956년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벵트 선클러 교수의 지도 아래 신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 제목은 "책임 있는 교회와 해외선교"이다.
그는 1957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서 선교사로 활약하면서 나탈 지역의 루터교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강의하다가 1964년 학장으로 취임했다. 1965년에는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 겸 선교학 및 에큐메니칼 신학 연구소 소장이 됐으며 1997년까지 봉직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분리주의 및 민족주의 운동, 선교학적 성서신학,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등을 주로 연구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기독교선교신학 분야의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셨다』(1996)가 있다.
1972년에는 고백교회연합 신학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기독교선교의 기본적 위기에 관한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과 "에큐메니즘에 관한 베를린 선언"(1974)의 초안 작업에 참여했다. 1973년 1월에 방콕에서 개최된 제8차 세계선교대회에서는 신학자문역을 맡았고 1975년 나이로비, 1983년 밴쿠버에서 개최된 5, 6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참관했으며 1989년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선교대회에서는 발표문들에 대한 논평을 쓰기도 했다.
1978년 7월에는 런던에서 "교회 안팎에서 일고 있는 반기독교적 조류에 대항하기 위해 교리, 윤리 및 교회직제의 왜곡되지 않은 성서적 기준을 설정하고자" 국제기독교인네트웍이 설립됐을 때 실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980년 3월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청을 받아 개인적으로 알현하면서 에큐메니칼 문제에 관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에는 1974년과 80년에 개최된 대규모 전도집회인 엑스플로에 참석차 방문했다. 그리고 세계복음주의 로잔위원회의 회원이며 1980년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된 세계전도협의회에 참석했고 세계전도연합 및 아시아신학협회의 자문역으로도 활동했다. 1996년 4월에 트리니티 국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튀빙겐대학교를 은퇴한 뒤에는 유럽 및 해외의 다수 신학기관에서 방문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