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성화 없는 칭의는 죄인의 칭의 아닌 죄의 칭의(IV)

종교개혁적 칭의론에 대한 역동적 이해

kimyounghan
(Photo : ⓒ베리타스 DB)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2. 최덕성의 전통적 관점의 공헌과 문제점

1) 공헌

(1) 종교개혁적 정통주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최덕성 교수는 말한다: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동시에 현재적 사건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선고하실 판결이 현재의 우리에게 앞당겨 왔다. 구원은 근본적으로 미래에 속한 것이지만, 그 미래의 하나님의 선언이 우리의 현재 속으로 침투하여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당당히 외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오늘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이대웅, "[최덕성 칼럼]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 유감," 크리스천투데이, 2015.10.23).

이 문장은 종교개혁의 칭의 개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칭의란 하나님의 종말 심판이 지금 이 시간 그리스도의 공로로 나에게 행해져서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을 입은 현재완료형 사건이다. 구원받은 자, 곧,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자는 의의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열매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하나님의 법정적·선언적 판결이 취소되거나 번복되지 않는다.

(2) 유보적 칭의론이 가진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첫째, 유보적 칭의론에는 성도 견인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최 교수는 말한다: "'유보적 칭의론'은 교회 안에 의의 열매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구원받은 자의 탈락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예수 믿는 기독인이라도 윤리와 순종이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유보적 칭의론의 구도에는 성령의 역사, 곧, 성도의 견인이라는 요소가 들어설 곳이 없다. 죽을 때까지 기독인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거나 헛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로마가톨릭주의 구원론에 빠지게 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이대웅, 크리스천투데이, 2015.10.23.). 칭의의 현재 요소는 성화이다.

김세윤 교수는 '성화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지 않거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은 탈락한다, 그리고 과거에 믿음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칭의 또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롬10:9-10), 종말의 칭의 또는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탈락한다'고 주장한다(김세윤, 『칭의와 성화』, 192, 264). 이러한 탈락 가능성의 언급은 신자들로 하여금 불안과 회의에 빠지게 한다. 유보적 칭의론에는 성도의 견인을 위한 성령의 역사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우리 신앙은 단지 우리의 의지에만 달려 있지 않고 연약한 신자를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와 사역에 의존한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를 다음같이 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둘째, 유보적 칭의론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과하고 있다. 최 교수는 말한다: "김세윤 교수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통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신자의 올바른 도덕적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은혜를 오해한 결과이자 개혁주의에서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칭의의 법정적 측면을 무시한 것"이라며 "비록 구원받은 신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죄성'을 지니고 있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만일 도덕적 행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면 그 누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 수 있겠는가?"(이대웅, "구원파 이단이라 하면서,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 선포: 김세윤, '칭의와 성화' 세미나서 한국교회 현실 질타," 크리스천투데이, 2013.12.16). 만일 최종 구원이 도덕적 행위의 결과라면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칭의 은혜를 도외시하는 것이 된다. 성경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경성함과 구원을 향한 준비됨을 말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우리의 경성함과 구원을 향한 준비됨에는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총이 작용하고 있다.

2) 문제점

(1) 최덕성은 견인교리에만 의존하여 성도의 경성과 자기성찰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종교개혁적 전통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곧, 하나님의 나라에 진입한 자는 현재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의 천국시민권은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령은 믿는 자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유지시켜 주신다. 성령 하나님은 성도의 견인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구원은 그리스도 공로로 인한 칭의로서 이미(과거적), 성화로서 지금 누리고 있으며(현재적)이며, 영화로서 앞으로 종말에 완성할 것이다(미래적).

최 교수는 종말 구원에 대한 안심과 성도의 견인 교리에 의존하면서, 루터 및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행위에 대한 성도의 경성과 자기 성찰에 대한 언급하는 것을 놓치고 주어진 구원에 대한 정통주의적 안일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하고 강조하고 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이상의 구절은 구원 받은 신자가 구원의 안일에 머물지 않고 성령에 뜻에 순종하고 자기의 정욕을 쳐서 복종시키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신자가 성화를 게을리 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방종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2). 우리는 하나님의 두 면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만이 아니라 준엄하심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에 머물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믿는 자도 찍히게 되리라는 종말론적 심판을 말하고 있다.

(2) 은혜교리에의 안주는 종말론적 심판의 긴박성을 놓치고 있다

종교개혁의 전통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바 종말론적 심판의 차원을 결코 등한시하지 않고 오히려 첨예화한다. 전통교회 신자들은 주어진 칭의에 안일하게 머물지 않고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다가오는 종말론적 심판에 대하여 경성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본회퍼가 칭의의 신학자 루터의 후예인 독일 루터교회와 신자들이 칭의론에 안주하여 고귀한 예수의 피로 주어진 고귀한 은혜가 싸구려 종교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고하여 칭의가 죄인의 칭의가 아니라 죄의 칭의로 왜곡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과 신자들의 삶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신자들이라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경고에 분명히 해당된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성경은 구원으로부터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2).

정통신학의 칭의론은 어디까지나 성경이 말하는 칭의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다. 정통교리는 우리 신앙의 지침(指針)이 되나 결단코 절대적일 수 없다. 모든 신학적 명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차적인 반성으로서 신학적 사유의 기준인 하나님 말씀, 성경의 가르침에 종속되어야 한다. 정통신학도 자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 그럴 때 정통신학은 교회 신앙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고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의 반려자가 된다.

VIII. 종말 때의 칭의는 처음의 칭의와 다른 것이 아닌 완성이며 재확인이다

김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인협력설을 향해 문을 열어 놓는다. 칭의가 단번에 이루어짐을 무시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의화교리처럼 구원의 전 과정으로 본다(김세윤, 『칭의와 성화』, 177). 로마 가톨릭교회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열매, 곧, 행위의 합작품이라고 본다. 종교개혁자들이 반대하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칭의를 구원에 합당한 선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입되는 어떤 것으로 정의했다(이대웅, 크리스천투데이, 2015.10.23.).

필자는 칭의가 라이트나 던처럼 현재와 미래의 두 단계로 분리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가 말하는 바 현재의 칭의는 미래에 주어질 칭의가 부분적으로 앞당긴 것으로 말하기 보다는, 이미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칭의가 미래에 완성된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의 칭의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힙입어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것처럼 미래의 칭의도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루어진다. 신자의 행위를 통한 심판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믿음의 칭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전통은 믿음의 칭의를 천명하지만 칭의의 열매인 성화를 강조하면서 종말론적 지평을 향하여 열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선행을 통한 최종적인 구원과 불순종에 대한 심판을 거부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개혁적 칭의론 자체가 종말론적 심판의 지평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존엄한 심판에 직면하여 구원얻기 위한 구원의 동기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종교개혁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시는 은총의 하나님과 흰 보좌에서 최종의 심판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준엄한 모습에서 드러나는 숨어계시는 하나님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17세기 이후의 개신교 정통주의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은총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종교개혁교회가 역사 속에서 정통교회로 자리잡게 되자 개혁정신이 제도와 전통으로 점차 대체되면서 종교개혁자들이 항상 염두에 둔 종말론적 심판의 지평이 소실되어갔다. 그렇게 종말론적 심판자 그리스도의 모습이 희미해지면서 구미교회는 바르트의 보편기독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오늘날 자유주의 교회는 인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종말론적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떼어 버린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심판과 지옥까지 해체되었다는, 종말론적 심판을 완전히 해소시키는 보편구원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동성애 지지 교회는 예수를 전통적 율법과 규례의 속박으로부터 동성애를 해방시키는 존재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정신을 고백하는 정통 교회는 소수이지만 여전히 흰 보좌에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대속자요 심판자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여전히 균형 있게 강조하고 있다. 종교개혁신학은 믿음에 의한 칭의와 구원을 강조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 사상을 결단코 배제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H. Ridderbos, Paul: An Outline of the His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75], 178-79).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종교개혁 전통의 올바른 칭의론은 믿음을 통한 칭의와 선행을 통한 구원을 변증법적으로 동시에 수용한다. 결단코 선행을 통한 구원을 배격하지 않고 있다. 선한 나무(성령으로 중생한 칭의 받은 자)는 선한 열매(아름다운 행실)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나쁜 나무(제대로 칭의 받지 못한 자들)는 나쁜 열매(좋지 못한 행실)를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속)

글/ 김영한 박사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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