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4일(화)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한 연예인의 성폭행 논란을 다룬 기사들로 넘쳐났다. 논란의 주인공은 배우이자 가수로, 그리고 한류스타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연예인이다. 이 연예인의 성폭행 논란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 사이 다른 중요한 쟁점, 이를테면 전기-가스 민영화, 방위사업청 1,000억대 손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 비리,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 등은 사라지는 양상이다. 벌써부터 네티즌들은 검찰이 대중들의 관심을 민감한 쟁점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연예인을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세간의 의혹대로 물타기인지, 아니면 해당 연예인의 혐의가 위중해서 자연스럽게 쟁점으로 떠오른 것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검찰을 비롯한 사정당국이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 자주 연예인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전력이 있기에 네티즌들의 의혹을 단순 루머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은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부당거래>의 결말을 떠올리게 한다.
<부당거래>는 황정민, 유아인이 출연한 <베테랑>의 전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베테랑>이 재벌 2세의 부도덕한 행태를 꼬집었다면, <부당거래>는 경찰과 검찰의 힘겨루기, 그리고 검사와 스폰서의 유착을 다룬다. 두 작품의 주제는 다르지만 이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주제로 다뤘다는 점에서 한 줄기라고 본다.
<부당거래> 속 주양 검사(류승범)와 광역수사대 최철기 반장(황정민)은 아동 연쇄 유괴 살해사건으로 엮인다. 어린 아동들이 잇달아 유괴 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은 발칵 뒤집힌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하고, 경찰청장은 사건 진행상황을 대통령에 보고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경찰 수뇌부는 고민 끝에 사건을 광역수사대 최철기 반장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경찰 수뇌부가 최 반장을 기용한 이유는 실력이 좋았던 게 첫 번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최 반장이 아무 인맥이 없기에 혹시나 하자가 발생했을 때 가지치기하기 좋기 때문이다. 최 반장도 이를 잘 안다. 그럼에도 직속 상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수사를 벌이고, 급기야 범인을 잡아 들인다. 이 사건으로 최 반장은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그러나 검찰로 넘어오면서 사건은 꼬이기 시작한다. 검찰은 송치 받은 사건을 주양 검사에게 배당한다. 주 검사는 피의자를 심문하면서 최 반장이 사건을 조작한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주 검사의 의심 역시 의도는 순수하지 않다.
주 검사는 이른바 스폰서 검사였다. 그의 스폰서였던 건설회사 김 회장은 최 반장을 눈에 가시로 여겼고, 그래서 주 검사에게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 검사는 최 반장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던 차 아동 연쇄유괴 사건을 배당 받고 담당 형사였던 최철기와 한 판 김겨루기를 벌인다.
주 검사와 최 반장의 힘겨루기
주 검사는 최 반장을 강하게 압박한다. 최 반장도 만만치 않다. 최 반장은 스폰서 유착 의혹을 물고 늘어지며 주 검사를 괴롭힌다. 그러나 힘겨루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권력의 크기에서 검찰이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최 반장은 주 검사를 요정으로 불러내 용서를 구한다. 최 반장으로 분한 황정민이 요정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며 류승범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최 반장은 또 한 번 위기에 빠진다. 최 반장은 사건을 해결한 게 아니었다. 최 반장은 김 회장과 라이벌 관계였던 폭력배 출신 건설업자 정석구(유해진)을 시켜 범인을 조작하고 사건을 종결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석구는 이를 빌미로 최 반장을 압박한다. 이러자 최 반장은 정석구를 없애 버린다. 바로 이때 직속 부하였던 마대호 경위(마동석)를 죽이는 실수를 범한다. 최 반장의 부하들은 마 경위 살인범을 추적하다 최 반장이 범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최 반장에게 복수하고, 주 검사의 스폰서 의혹을 터뜨린다. 주 검사로서는 최대위기다. 그러나 결말은 주 검사가 처벌을 피해갈 것임을 시사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 검사는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검찰 사무실로 들어간다. 검찰 고위간부는 로비에서 주 검사를 데리고 들어간다. 이 간부는 주 검사의 장인이기도 했다. 아동 연쇄 살인사건이 주 검사에게 배당되도록 한 사람도 바로 장인이었다. 장인은 주 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다려봐. 조만간 연예인 마약사건 터진다는 소문이 있거든"
이 말을 듣고 주 검사는 장인에게 송구한 듯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장인은 "괜찮아, 살다보면 다 그런거지"라고 다독인다.
비교적 짧은 장면이지만, 이 장면이 함축하는 바는 작지 않다. 일이 틀어지자 최철기 반장은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주양 검사는 용케 처벌을 피해갔다. 최 반장은 시쳇말로 ‘돈도 빽도' 없는 처지였던데 비해, 주 검사는 권력도, 배경도 막강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속엔 돈과 인맥 없으면 당하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부조리가 담겨져 있다. 또 검찰 거물인 장인의 비호를 받으며, 연예인 물타기가 있을 것이란 언질을 받는 주 검사의 모습은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관행을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이제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잘 나가던 연예인의 성폭행 의혹은 그 자체로 심각해 보인다. 그런데 또 다른 쟁점인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전관 로비 의혹은 이 나라의 사법질서를 뒤흔들기에 더욱 심각하다. 이런데도 언론은 연예인의 성폭행 논란으로 뒤덮이고 있다.
이 연예인의 성폭행 논란이 처음 보도된 시점은 지난 14일이었다. 이날부터 19일 오후 8시를 기준으로 포털 사이트 ‘다음'에 해당 연예인의 이름인 ‘○○○'을 검색어로 입력하니 총 2,449건의 기사가 올라왔다. 같은 기간 ‘홍만표'를 키워드로 하는 기사는 절반에도 못미치는 1,107건에 그쳤다. 또 다른 쟁점인 진경준 검사장을 다룬 기사는 고작 733건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네티즌들이 ‘부당거래'를 의심하고 나선 것이다.
부당거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힘 없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을까?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은어가 괜히 유행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