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갖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거둬들인다. 부활절, 성탄절, 생일감사 등등. 이 가운데엔 다소 논란이 있는 헌금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맥추감사절 헌금이다.
이렇게 거둬들인 헌금은 어디에 쓰일까? 각 교회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다수 교회에서 헌금의 용처를 아는 이들은 극소수다. 서울 서초동의 모 대형교회에서는 헌금을 낸 행위 자체가 신앙적 의무의 완성이며, 그 사용에 대해서는 담임목사 및 교회 집행부의 의사에 맡긴 것이란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헌금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삼 헌금을 끄집어 낸 이유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조위)를 살리자고 간곡히 호소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지난 6월30일(목) 특조위 활동을 종료시키고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특조위 구성이 법적 근거인 세월호 특별법 규정상 시한이 이날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유권해석에 반발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8일 동안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이에 발맞춰 특조위 측은 7월1일(금) 보도자료를 내고 "특조위는 앞으로 어떠한 재정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사활동을 더욱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예산일 것이다. 특조위 측은 "특조위 별정직 공무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 출장비 등 조사활동 경비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심지어 별정직 공무원들의 과 운영비 등 일상적 경비 사용도 금지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예산상의 제한조치를 수긍할 수 없으며, 이러한 조치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위원장과 상임위원(진상소위 상임위원, 안전소위 상임위원)들도 임금을 미수령하고 업무추진비 카드와 관용 차량을 반납하는 등 직원들과 그 어려움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회가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해 왔는가?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다.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 예수로 오셔서 고난 당하는 이들과 함께 했다. 세속 권력인 로마 제국과 종교권력자들인 사두가이파는 이런 ‘예수 운동'을 못마땅히 여겨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웠다. 이 같은 정신이 무색하게 교회는 세월호의 아픔을 외면해 왔다. 그냥 소극적으로 모른 체 했으면 모르겠다. 대형교회 목회자와 교계연합체 임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망언을 일삼으며 아픔 당한 이웃의 마음을 후벼팠다.
그러나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거리로 나가 유가족과 함께 풍찬노숙을 하고, 때론 공권력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 싸우며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들도 알게 모르게 많다. 그럼에도 진상조사 활동을 종료시키려는 정부 앞에선 힘이 부친다.
그래서 교회에 도움을 호소하고자 한다. 교회가 갖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거둬들이는 마당에, 세월호 특조위 존속을 위한 특별 헌금을 만들자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거둬들인 헌금을 특조위에 전한다면, 특조위의 진상조사 활동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헌금만이 세월호 유가족이나 특조위를 도울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다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함께 끄자는 말이다.
참사가 벌어진지 2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참사를 단순 해상사고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불행하게도 교회,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들이 이런 시각으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다. 심지어 전북 군산의 △△교회에서는 특조위 활동을 비방하는 단문메시지가 유포되기까지 했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 모른다. 최근 몇 년 사이 기독교계는 물론 일반 언론에서 심심찮게 교회 분쟁이 불거졌다. 양상은 복잡하지만 원인은 하나다. 바로 ‘돈'이다. 성도들 주머니 털어 사리사욕 챙기는 과정에서 목회자가 교회 돈을 횡령하거나, 무리하게 건물 짓는데 돈을 쏟아 붓듯 했다가 성도들과 갈등이 생기거나 했다는 말이다.
이웃이 당하는 고난에 동참하기는 커녕 오히려 외면하고 돈에 눈멀어 목회자와 성도끼리 싸움을 벌이고, 아픔 당한 이웃에 거짓 증거를 일삼는 교회를 세상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제 교회가 쌓아온 돈을 선하게 쓸 방법을 고민하자. 특히 어려움에 직면한 세월호 특조위를 돕자. 모든 교회에 간절하게 호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