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가복음 8:22-26
설교문
1. 그리스도인은 '현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더 깊은 차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세계이고 영적인 세계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육신의 눈이 흐려질수록 이 눈은 밝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세대의 눈부신 것들로부터 우리의 눈이 어두워 질 때 이 믿음의 세계는 영롱하게 보입니다.
2.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맹인 한 사람을 만나십니다. 주님께서 이 맹인의 눈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단순히 앞을 못보는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본문의 바로 앞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본문의 앞에서 보리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어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이적 이후에 배 안에서 떡 문제로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는데 그때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막 8:17b~18) 그러니까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사건을 통하여 주님의 역사를 보고도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3. 주님께서 이 맹인을 고쳐주시기 위해 맨 먼저 하신 일은 특이하게도 이 사람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나가신 것입니다. 맹인의 손을 붙잡고 안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따뜻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을까요? 그 자리에서 고치시지 않고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이 맹인을 마을 밖으로 나가신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사람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있으면 제대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숲 안에 있는 사람은 숲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보기 원한다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 지금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한걸음 떨어져 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눈을 고치시기 위해 주님은 그 사람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침은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침뱉음과 안수기도를 통해 눈이 먼 이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눈이 열리고 싶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가지십시다. 믿음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눈이 열리기 원한다면 주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가지십시오. 우리는 어떠한 통로로 주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예배는 주님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섬김과 나눔의 삶은 우리를 주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나누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5. 우리가 주님과 깊은 관계를 세워 갈 때 우리는 주님과 같은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침을 뱉으시고 안수기도를 하신 후에 맹인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이 보이느냐?"(23절) 그 질문에 이 사람의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24절) 이 맹인의 대답을 들으신 주님께서 다시 한번 안수기도를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한 번 더 치유 행위를 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제자들과 성도들이 아직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이 안타까우신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안수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번 고쳐주셨을 때 그는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25절) 그리고 이제야 밝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나무로 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고쳐서 우리가 '주목하여' 보고 제대로 살아 가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