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수상한 장혜진 선수가 금메달 확정 후 잠시 기도세레머니를 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린다"고 했다. 이어 '화살을 쏠 때 무슨 말을 외우면서 쐈냐'는 질문에 "그냥 '하나님' 이름 부르면서 '믿고 쏘자' 이 말을 제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꼭두새벽 잠을 설치며 경기를 지켜본 입장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더없이 기뻤지만 소감을 듣고서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자기 종교를 알리고 싶을까? 그리고 저게 본인만의 뜻일까?
장혜진 선수 외에도 축구 조별 경기 피지 전에서 2골을 넣은 석현준 선수도 기도 세레머니를 연출해 논란이 됐다. 축구경기가 끝난 후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올림픽은 특정종교인들만의 행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세금으로 각종 혜택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가 특정종교를 상징하는 기도 세레모니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개신교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는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기도 세레모니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와 "개인적인 것까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식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또 일부에서는 개신교식 세레머니가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석현준 선수의 행위가 무릎 꿇은 자세에서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이영표나 박주영 선수의 그것과는 달리 단순히 하늘로 손을 들어 올리는 자세여서 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종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 네티즌들은 석현준 선수가 중동 팀에서 뛴 전력이 있어서 혹시 무슬림식 기도가 아닌가하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에서 어떤 식이든 "경기 도중에 기도 세레머니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실제 유니폼이나 티셔츠 등에 종교·인종·정치·상업적 문구가 보이는 골 세레머니 행위는 이전부터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기도 세레머니의 원조이자 70년대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영무씨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국가대표'라는 책에 기도 세레머니가 선교의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서술했다. 구체적으로 중동에서는 위험하니 골 넣고 기도하지 말라는 정부 측의 부탁이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고자' 기도 세레머니를 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즉 기도 세레머니는 개신교인으로서 의무라는 것이다. 개신교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도 세레머니는 자신들이 속한 종교 안에서는 매우 환영받는 것은 틀림없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국민들이나 타 종교인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종교나 인종적인 문제 때문에 테러가 일어나는 등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선교의 장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스포츠 세계에는 기도 세레머니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도 모범적인 종교인으로 칭송받는 선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메이저 리그 LA 다저스 팀의 에이스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이다. 류현진 선수의 동료이기도 한 그는 20대 중반에 최고의 투수들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명실 공히 미국을 대표하는 투수다.
커쇼는 야구장 밖에서도 이름이 높다. 2008년 데뷔한 그는 시즌이 끝나자 고향인 텍사스에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 야구교실을 열었고 2010년 결혼직후 아프리카 고아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아내 엘렌의 뜻에 따라 신혼여행지로 호화 휴양지 대신 잠비아를 택했다. 잠비아 방문 후에는 ‘커쇼의 도전'이라는 후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탈삼진 1개당 600달러(후원사 포함, 한화 약 70만원)를 기부하고 있다.
그의 선행이 계속되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커쇼에게 1972년 12월 말 지진 구호물품을 싣고 니카라과로 향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피츠버그 외야수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리기 위해 만든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시상했다. 이 상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는 사이영상이나 MVP에 준하는 영광으로 여겨진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이 봉사활동이 검증된 30대 중반이상 선수에게 시상함에도 불과 24살의 나이에 상을 받은 커쇼는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다른 상보다 내게는 더 의미가 큰 상"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커쇼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도 종교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부러 기도 세레머니를 할 것 없이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커쇼는 지금도 시즌이 끝나면 잠비아에 머물며 자선활동을 펼친다. 동료인 류현진 선수도 커쇼에 대해서는 "커쇼는 최고의 에이스 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착하고 성실하다. 이런 선수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도 세레머니 수백 번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멋지지 않는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어떤 구두제작자가 구두에 십자가를 새기고 "이것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해 신에게 영광 돌리는 구두"라고 하자 "그렇게 하지 말고 좋은 구두를 만들어라! 좋은 구두를 만들면 신에게 영광이 된다!"고 했다. 신앙을 가진 스포츠선수들은 루터의 말을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 본 글은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이 <불교 포커스>에 기고한 기고문입니다. 백 위원의 양해를 얻어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