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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 10명만 있어도

2016년 7월 24일 경동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채수일 목사

chaesuil
(Photo : ⓒ베리타스 DB)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18:20-26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갔으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골로새서 2:12-15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누가복음서 11:1-4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설교문

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약속한 천사들이 아브라함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갱신하시면서 그를 선택하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들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 18,19).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된다'(창 18,18)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가 되는 길, 그 나라로 말미암아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는 길, 그것은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자손들을 잘 가르쳐서, 자손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게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한 나라가 크고 강해지는 길, 그 나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함께 복을 받는 나라가 되는 길도 사실은 단 한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생각과 포부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담론이 아무리 거창하다고 해도, 시작은 언제나 아주 작은 일, 그리고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집니다. 큰 강도 작은 시냇물들이 모여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강들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오늘 우리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녀들을, 우리 후손들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크고 강한 교회,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한국의 모든 교회가 복을 받게 되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면서 배웁니다. 신앙교육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온 삶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먼저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신앙교육입니다. 우리가 먼저 아주 작은 계명에서부터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옳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신앙교육이고, 대를 이어 신앙을 전승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2.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도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과 함께 시작되었고, 소돔과 고모라 성이 파멸당한 것도 그 성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돔의 히브리어 어원, '슈돔'은 '불타다'는 뜻을, 고모라의 어원, '아모라'는 '잠겨 묻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해의 남동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건축을 위해 방수와 접착성이 좋은 천연 아스팔트가 생산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부유한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원인으로는 지진으로 인한 유황 분출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자연재해에서 재앙의 원인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해합니다. 오늘 날 있을 수 있는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면 망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들은 다수의 자연재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명과 포기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의 결과로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자연재해와 재앙이 꼭 하나님의 심판일 수 없고, 또 심판이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재해와 재앙을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단지 옛날의 일로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시키셨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창 18,20)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울부짖었을까요? 어떤 엄청난 죄, 어떤 악이 행해지고 있었기에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나님에게까지 들렸단 말일까요?

성서는 그 엄청난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롯이 숨겨준 두 나그네들(천사들)에 대한 소돔 사람들의 반응, '오늘 밤에 당신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소?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시오.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창 19,5)라는 말에서, 그 죄가 동성애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하겠습니다.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던 종교적 전통이 강했던 가나안 지역에서는 성전 매춘, 혼잡한 성관계와 동성애는 매우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레위기(18,22)에 의하면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씀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서적 전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6:9-10).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판단과 입장은 나라마다, 교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교회가 다툼과 분열에 휩싸인지 오래 되었고, 지금도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동성애 문제는 별도의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레위기의 표현, '망측한 짓' 혹은 '가증한 짓'이라는 히브리어 명사형 표현인 "토에바"(תּוע), 혹은 동사형 "토에브"(תּעב)는(그리스어 성서는 '브델뤼그마'(βδέλυγμα)로, 영어 성서는 'abomination'(NRSV) 혹은 'detestable'(NIV)이라고 번역했는데) '혐오스러운'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혐오(싫어하고 미워함)는 개인적 감정의 문제이지, 차별의 제도화와 박해의 정당화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동성애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 '불의한 자'(the wicked/die Ungerechten)들에 대한 리스트에서, 도둑질, 탐욕, 술 취함, 중상, 약탈과 나란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혐오스럽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 '불의'이기는 하지만, 도둑질, 탐욕, 술 취함, 중상, 약탈에 버금가는 불의의 하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관심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진정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회상하는 다른 성서의 증언, 예언자 에스겔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가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에스겔서 16,49-50)는 데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나그네로 이주해온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롯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구약성서의 초기 문서에 편입된 것은 기원전 11세기 이스라엘 왕국 건설을 전후한 시기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빈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출애굽 시대부터 내려온 이스라엘의 공동체 정신이 훼손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나그네에 대한 아브라함과 롯의 정성을 다한 손님 접대, 그와는 대조적인 소돔 사람들의 불손한 행동, 특히 롯의 손님에게 행하는 폭력적이고 무례한 행동은 이스라엘 왕조시대 예루살렘을 비롯한 당시 도시에 거주하던 나그네들의 척박한 삶을 대변해준다고 하겠습니다.

구약성서는 일관되게 나그네,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왕정체제와 함께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겠다'(출 22,21-23).

그렇다면 우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롯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롯은 낯선 나그네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을 폭도들에게 넘겨주면서,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창 19,8)라고 말하는 롯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손님 대접의 전통을 어떤 희생을 대가로 치루더라도 지키려고 했던 롯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부장적 사회였고,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단지 재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던 당시의 사회상을 받아드린다고 해도, 손님 접대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유목사회를 이해한다고 해도, 롯의 이런 태도는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천사들이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참으로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긴 했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에 두 딸들이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모압과 암몬을 낳은 것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왜 근친상간을 죄악시하고, 왜 그들에게서 태어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원인론적 설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비참했던 여성의 비극적 운명, 잔혹하기까지 한 여성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3.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절정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협상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 18,23-25).

아브라함의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그의 조카 롯에 대한 염려와 하나님의 심판의 정의와 공정성은 악인은 죽이되, 의인은 살리는데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협상, 하나님을 달래면서 구슬리고, 또 호소하면서 진행되는 때로는 매우 위험하고 위태할 정도로 진행되는 협상은 의인 45명, 40명, 30명, 20명, 마침내 의인 '열 명 만까지'로 내려갑니다. 행여 하나님의 심기를 건드려 협상이 깨질 것을 염려한 듯, 아브라함은 조심스럽게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창 18,26). 하나님은 악인의 심판이 아니라, 의인과 함께 악인을 구원하는 데 뜻을 두고 계신 것입니다.

예언자 에스겔도 말합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너희는 돌이켜라. 너희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거라.'(에스겔 33,11).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보다 의인과 함께 성 전체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의로운 사람으로 말미암아, 소수의 의로운 사람과 함께, 수많은 악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살던 그 성들을 재앙으로 뒤덮으실 때에,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주신 것이다'(창 19,29). 소돔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파멸되었지만, 롯은 의인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들 때문에 한 도성, 수많은 악한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의인은 누구일까요?

사도 바울은 말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롬 3,20-22).

율법의 행위, 도덕적이고 흠 잡힐 것 없는 모범적 삶은 인간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삶이지만, 성서는 이런 행위로는 하나님에게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오직 자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고 선고하는 하나님의 은혜로(롬 3,24), 우리는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인정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실증하신(롬 5,8)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동안만, 우리는 의인일 수 있고,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에서 찾으셨던 의인 열 명 가운데 우리가 함께 하는 은혜를 주님께서 베푸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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