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리뷰] 당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릴 것인가?

송강호, 공유 주연의 <밀정> 언론시사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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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거사와 일제의 탄압을 그린 영화 <밀정>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을 두 낱말로 요약하면 ‘부조리', 그리고 ‘과거사'다. ‘뭣이 중한디'란 대사를 유행시킨 <곡성>,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과 <터널> 등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직·간접으로 다뤘다면 <암살>은 이제껏 몰라왔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대중 앞에 불러냈다.

다음 달 7일 개봉 예정인 공유, 송강호 주연의 <밀정>도 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들을 소환해 낸다. 이야기의 중심은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 경찰에 근무했던 이정출(송강호)과 조선의열단의 핵심 김우진(공유)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리고 중반으로 흐르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이 이어진다. 특히 의열단이 일본 경찰에게 차례로 체포돼 총독부에서 고문 받는 장면이 그랬다. 이 영화는 25일(목)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시사회 직후 간담회가 열렸는데, 의열단원 연개순으로 분한 한지민은 고문 장면을 연기하면서 "눈물이 마구 차올라 울다가 찍다가 반복했다"고 했다.

밀정, 시대의 상징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다소 복잡하다. 연출자인 김지운 감독은 "누가 밀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구나 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질곡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변대로 일제 강점기는 무단통치와 교묘한 문화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누구든 밀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논리가 자칫 친일세력의 반민족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지 않을지 사뭇 걱정스럽다.

감독은 인간 존재의 선한 본성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것 같다. 주인공 이정출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하고 일본 경찰에 들어가 거꾸로 독립운동가를 잡아 들인다. 그럼에도 의열단은 오히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정출은 잠깐 고민하다 의열단의 거사를 지원한다. 이 같은 지원에도 일제의 수사망은 촘촘했다. 의열단은 차례로 체포됐고,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다.

이정출 역시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일본 경찰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자신을 변호했고, 결국 총독부는 그를 풀어준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다. 이정출은 의열단이 못 다 이룬 거사를 완성한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현실이다. 친일 경찰로 악명 높은 하판락, 노덕술 등은 일본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랄하게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다. 해방이 됐어도 이들은 그 어떤 단죄도 받지 않았다. 1947년 노덕술은 오히려 독립운동가로 영화 <암살>에도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을 남로당 주도 파업 연루혐의로 체포해 모욕을 가했다.

황옥, 밀정인가? 친일을 위장한 독립운동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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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영화 <밀정>의 두 주인공 송강호(왼쪽)와 공유(오른쪽)가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차제에 일본 경부 황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영화 <밀정>은 바로 실존 인물 황옥을 모티브로 했다.

황옥은 조선인으로 1920년 3월 경기도경찰부에 특채돼 밀정 역할을 했다. 그러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등을 대상으로 거사를 준비하던 의열단에게 도리어 폭탄을 경성에 반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황옥은 일본 경찰이 사용하는 비표를 건넸고, 그래서 폭탄은 경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의열단의 거사는 실행되지 못했다. 의열단은 처음엔 황옥을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심어놓은 또 다른 밀정 권상호가 밀고해 거사가 발각됐다. 황옥은 영화 속 이정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위가 ‘일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행적 때문에 황옥이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의열단의 이중첩자였는지의 여부는 논란이 분분하다. 게다가 한국전쟁 당시 황옥은 강제 납북돼 이후 행적을 추적하기 어렵고 그나마 남은 자료 대부분은 일본에 있는 실정이다.

이 영화 <밀정> 개봉을 계기로 황옥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해서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남겨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암살>이 약산 김원봉, 그리고 안옥윤의 모델이 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존재를 알렸듯이 말이다.

또 하나,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릴 것인지 고민해 보기 바란다. 밀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립운동가의 길을 갈 것인가?

끝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고초를 감수한 독립운동가분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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