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양동우회 사건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 12>

1937년 10월 28일

송창근 목사는 돌연 부산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부산에 내려가서 도시빈민선교사업을 시작한 지 2년째인 때였다. 그의 피체와 관련해서 당시 <조선일보>에는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지난 십일 오전 열시 경에 북부산경찰서 고등 형사대가 부내 초장정에 있는 성빈학사 장 신학박사 송창근 씨를 검거하야다가 극비밀리에 취조중으로 사건 내용은 엄밀에 부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사는 송창근 목사가 경찰에 체포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기자가 그렇게 쓴 것일 뿐, 실제로 체포된 날짜는 ‘1937년 10월 28일’이었다. 성빈학사에서 송창근은 직접 모시고 일했던 제자 김정준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의 실제 상황은 이러했다.

그 해(1937년) 10월 28일 송목사님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서울서 내려온 고등계 형사에게 이끌려 서울로 압송되어 갔다. 부산역에서 “성빈학사를 자네에게 부탁하네, 하셨지만, 나 외에 세 사람의 직원들의 월급과 성빈지를 찍어내는 비용 등 송 목사님 떠난 후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학사 운영문제가 다급해졌다. 당시 호주 선교부 매켄지 목사를 비롯한 부산에 계신 여러 친구들, 그리고 성빈을 받아본 전국의 친구들이 ‘성빈학사’의 고충을 알고 다소 보조를 해주었지만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한도는 이듬해 2월까지였다.

송창근 목사는 서울로 압송되어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이 사건은 당시 중일전쟁이 확대되어 가고 있던 상황에서 일제가 시국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터뜨린 사건이었다. 흥사단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을 일망타진하려는 의도에서, 흥사단의 국내용 호칭이었던 ‘수양동우회’의 회원들을 모두 체포한 것이다.

1937년 6월 6일에 서울에 있는 회원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고,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명부에 의해서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모두 150여 명이 체포되었다. 취조 과정에서 어찌나 고문이 심했던지, 최윤호와 이기윤 두 분이 옥중에서 사망했고, 김성업은 불구가 되었다.

수양동우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이때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감옥에서 고생하던 그가 건강 악화로 옥사하게 될 우려가 있자, 일제 당국은 1937년 12월 24일자로 ‘병 보석’이라 해서 감옥에서 꺼내다가 경성제대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안창호 선생은 그 날로부터 두 달 반 뒤인 다음해 3월 10일에 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도산 안창호는 송창근이 가장 좋아했던 애국지사였다. 정치인이라면 으레 싫어하고 심한 기피증이 있던 송창근도 도산만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같은 사건으로 일경에 걸려들어서 생사가 갈린 것이다.

모진 취조과정이 끝난 뒤에 1백여 명이 석방되고 공판에 회부된 사람은 모두 42명이었다. 송창근 목사도 공판에 회부된 피고인 42인 중에 들었다.

그런데 이때 송창근이 체포되어 고난을 겪은 원인에 대해 오해가 더러 있다. “귀국 도중에 L.A. 몇 달 머물고 있을 때 입단했을 뿐 국내에서는 전혀 활동하지 않았는데 체포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김재준 목사의 회담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만우는 귀국 도중에 L.A.에 몇 달 머물렀다. L.A.는 흥사단 본고장이다. 친구를 좋아하는 만우는 친구들을 따라 흥사단에 가입했다. 대부분 친구가 흥사단원이었기 때문이다. 귀국한 다음에는 흥사단 모임에 참석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명단에 이름이 적혀 있으니 단원임에는 틀림없었다.

흥사단은 국내에서는 수양동우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민족주의 단체다. 도산 선생의 민족개조론에 근거한 애국단체라 하겠다. 국내에서는 이광수, 주요한, 장리욱, 한승인, 조병옥, 김윤경, 이윤재, 정인과, 백영렵 등이 중요 멤버였다. 그리고 국외에서는 도산 선생이 직접 지도하였다. 만우는 열심당이 아니었지만, 귀국 도중에 L.A.에서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연루된 것이었다. 종로경찰서에 잡힌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의 송창근 목사.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송창근은 귀국하여 산정현교회 목사로 시무할 때 수양동우회에 가입하고 그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 사실이 재판기록에 의하여 입증된다. 송창근 박사가 1931년 하반기에 귀국 도상에서 L.A.에 몇 달 묵고 있던 때 흥사단에 가입하고 ‘유다야이즘’이라는 제목으로 모임에서 연설까지 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같은 판결문의 기록에 따르면, 평양에서 ‘동우회’에 입회했고 모임에서 연설도 했음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송창근은) 소화 7년(1932년) 6월 2일 평양부 순영리에 있는 평안고무판매소에서 개최된 동우회의 월례회에 출석하여 동회가 궁극에 있어서 조선의 독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된 결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에 가입하여, 피고인 김동원의 범죄사실 제2의 (10)에 기재한 바와 같이 동우회원과 기독교도와의 연락에 관한 문제를 협의하고, 그 밖에 소화 10년 3월, 부산부로 갈 때까지 자주 동지와 회합하여 그 목적의 수행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활동하고

소화 7년 7월 2일, 평양부 계리 상공협회 회관에서 피고인 조명식 등과 회합하여, 송창근이 동우회와 기독교와는 상호 간에 서로 합치되는 점이 많으므로 기독교도와 연락을 취하여 동우회의 확대 강화를 도모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역설하자, 일동은 이에 찬성을 하고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김동원은 산정현교회의 장로로서 소설가 김동인의 형이었다. 해방 뒤에 월남해서 국회 부의장도 지냈다. 그는 부유한 실업가로 동우회의 회합 장소인 ‘평양고무판매소’의 주인이기도 했다. 송창근은 수양동우회의 활동에 이처럼 적극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40년 8월 21일에 있었던 경성복심법원의 제2심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실형에 선고된 18인 중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징역 5년 : 이광수
징역 4년 : 김윤경, 김종덕, 박현환, 주요한
징역 3년 : 김동원, 김성업, 김병연, 조명식
징역 2년 6개월 : 조병옥
징역 2년 : 오봉빈, 백영업, 송창근, 김봉성, 김찬종, 조종완, 이영, 최능진

그러나 일제 당국의 정략적 판단과 조치에 의하여 1941년 7월 21일에 있었던 최종심인 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사건이 끝났다. 사건의 처리는 ‘초심에서는 전원 무조 선고, 검사의 항고에 따른 복심에서는 일부 피고들에 대한 중형 선고, 다시 최종심에서는 전원 무죄 선고’라는 과정을 거쳤다. 피고들은 초심인 경성지방법원의 무죄 판결이 있었던 1938년 12월 8일이 지난 뒤에 보석으로 풀려 나왔다고 한다.

뒷날 김재준에게 당시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할 때 송창근은 말하기를 “더럽고 질퍽하고 냄새 나는 지하실 시멘트 바닥은 짐승도 못 살 곳이었고, 꼭대기 작은 들창에서는 눈보라가 쳐들어 왔는데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송창근이 출옥하여 부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피골이 상접하고 초췌했다. 조선출도 “휴가 때 귀국하는 길에 부산에 들려서 송 박사님을 뵈오니 얼굴빛이 백지장 같고 피골이 상접하여 참으로 보기에 민망했다”고 썼다. 그런데도 그가 돌아왔을 때 집에서 기르던 개는 즉각 알아보고 기막히게 반가워하여 송창근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래서 뒷날 “사람보다 강아지가 낫더라”는 이야기를 자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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