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응암동 일대는 재개발 바람이 일고 있다. 419번지 일대를 아우르는 응암 제10구역은 이미 철거작업이 한창이고, 바로 건너 455-25번지 일대가 속한 응암 제11구역은 철거가 임박한 상황이다.
재개발은 늘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응암 제11구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히나 이 지구 재개발로 인해 57년 역사를 가진 교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응암성결교회(담임목사 남기은)다. 외형은 초라해 보인다. 그 흔한 주차장도 없다.
이 교회는 일찍부터 외형 성장보다 지역사회와 밀착하는 길을 걸어왔다. 기자가 교회를 찾은 때는 지난 14일(금). 초행이라 위치를 잘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이때 인근에 있던 주민에게 위치를 물으니 상세하게 알려줬다. 이 주민은 "이웃들이 모두 교회는 나가지 않아도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안다"고 했다. 또 50년 동안 이 교회에 다녔다는 60대 주민은 "교회가 김장철만 되면 김치를 담궈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그만큼 이웃들을 먼저 챙긴다"는 말을 건넸다.
교회는 재개발이 처음 추진되는 시점부터 존치를 원했고, 존치를 전제로 협상에 임해왔다. 반면 재개발정비사업조합(아래 재개발조합)은 철거가 불가피하다며 맞서는 상황이다. 먼저 응암성결교회 남기은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6년 재개발추진위원회에서 논의가 오갔다. 이때 위원회와 교회를 존치하기로 합의했고, 추진위도 존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왔다. 또 교회와 추진위가 존치 합의서에 서명했다. 게다가 교회를 존치하고 재개발을 추진하면 진입로가 없어지기에 진입로를 내기로 했고, 도면을 그려 보내왔다. 이어 조합설립 인가가 나 조합이 꾸려지고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때 경과보고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존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속은 사업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남 목사의 말이다.
"조합 쪽에서는 설계도면에 교회를 존치시키기로 하고 사업계획을 냈는데 두 번 반려됐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를 없애고 종교부지를 마련해 다시 사업계획을 제출해 서울시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도면상 종교부지는 125평이었다. 현재 교회는 종교부지 125평과 대지 20평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조합은 대지는 고려하지 않고 125평만 종교부지로 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치 약속은 반영돼 있지 않았다. 이에 조합장을 불러 따졌다. 그랬더니 조합장은 ‘사업 승인을 받으려고 한 것이다. 설계변경은 가능하다. 자신도 교회에 나가니 교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안심시켰다."
겉으로는 협상, 이면엔 철거 수순?
남 목사는 올해 초부터 조합이 물밑에서 철거 수순을 밟은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추이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응암11구역은 올해 2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났다. 관리처분계획이란 새로 건축된 건축물 및 대지 지분을 어떻게 분배하고, 취득 할 건축물 및 대지지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평가하는 일을 말한다. 이때 조합은 교회에 현금청산을 권유했다고 한다. 즉, 교회를 처분해서 받은 돈으로 새 건물을 지으라는 말이었다. 애초 했던 존치 약속은 없어져 버린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조합은 9월 재결신청을 했다. 재결신청이란 사업시행자와 원 토지-건물 소유주 사이에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사업시행자가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지토위)에 감정가를 의뢰하는 일을 말한다. 지토위 감정가가 나오면 사업시행자는 공탁을 걸고 명도소송을 제기한다. 실제 조합은 같은 달 교회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걸었다. 다시 남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재결신청 전까지 여섯 차례의 협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다 조합이 재결신청을 했다. 조합은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여섯 차례나 협의를 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명도소송을 하려면 지토위 감정가가 나와야 한다. 조합은 감정가가 나오기도 전에 명도소송을 걸었다. 조합에 항의하니 ‘정해진 절차니까 신경쓰지 마라'고 했다. 명도소송을 취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조합은 거절했다."
이에 대해 재개발조합은 ‘존치는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개발조합 박 모 조합장은 20일(목)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조합 측의 입장을 전했다. 박 조합장은 이런 입장을 전해왔다.
"교회 존치는 가능하지 않다. 내가 조합장으로 오기 이전, 그러니까 추진위원회 시절 교회는 존치를 원했고, 그래서 위원회에서는 이를 도면에 반영했다. 그러나 사업계획이 통과되지 않았고 그래서 교회를 위해 종교부지를 따로 마련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뉴타운이나 주택 재개발 과정에서 교회 등 종교시설 철거를 두고 갈등이 빈번했다. 협의가 여의치 않으면 조합이 강제철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삼일교회(담임목사 하태영)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는 이 같은 갈등을 우려해 이미 지난 2009년 ‘서울시 뉴타운 지구 등 종교시설 처리방안'(아래 처리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 처리방안은 ⓵ 이전계획 수립시 관련 종교단체와 협의 ⓶ 기존 부지와 이전 예정부지는 ‘대토 원칙 ⓷ 현 종교시설 실제 건물 연면적에 상당하는 건축비용 조합 부담(성물 등 가치가 큰 종교물품에 대한 제작설치비 고려) ⓸ 사업기간 동안 종교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임시장소 마련, 이전비용 등 조합 부담 등이 뼈대다.
남 목사도 조합이 처리방안에 따라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박 조합장은 "처리방안은 그냥 하나의 안일 뿐이다. 우리가 이걸 모르고 재개발 하는 게 아니다"며 교회 측 요구를 일축했다. 실제 처리방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조합이 거부하면 서울시 등 관계기관이 강제할 수 없다.
남 목사는 "시간이 갈수록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재개발 때문에 성도들 반 이상이 떠났는데 철거 문제로 남은 성도들도 불안해 한다"고 했다. 더욱 심각한 건, 협의가 여의치 않으면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박 조합장은 기자에게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으면 강제철거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남 목사는 "강제철거를 시도한다면 우리는 사수대라도 꾸려 교회를 지킬 생각"이라고 맞섰다.
반세기 넘게 지역사회에 뿌리 내렸던 교회가 재개발 바람으로 인해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