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블로거이자 크리스천 방송인인 젠 햇메이커가 최근에 <종교뉴스서비스>와의 대담에서 "동성애자들은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이다. 그들은 우리와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교회는 그들을 가족처럼 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어 그녀는 동성애의 관계가 성스러울 수 있으므로 그들의 결혼과 자녀양육 계획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성적인 죄에 빠진 그들에 대해서 동정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성적인 행위와 관련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강하게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또한 강하게 믿는다. 정통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적 생활에 빠진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사랑으로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타인들을 진실로 사랑하며 돌보려는 소망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생활방식들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수준에서 교제하고 진정한 관심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것이 진실된 기독교의 표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밝혀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성경은 동성애를 포함하여 성적인 죄에 대하여 매우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죄인의 친구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생활방식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나 단체나 교단이나 운동들이 절대 진리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의 영을 소멸시키며 근심하게 할 때, 그들은 기독교를 기계적으로 무감각하게 대하게 되어 지도력을 잃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가슴 속에 "타는 불꽃 같이"(예레미야 20:9)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무력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담론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불행하게도, 경고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고 비판적이며 고집스럽고 편협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대적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경고하며, 도전하지 않고서 어떻게 교정하고, 의문을 품지 않고서 어떻게 논쟁할 수 있는가?
다음 주제에 대해서 예수의 가르침과 햇메이커 부부의 최근 발언들의 관점에서 숙고해보자.
1. 구약성경에 나오는 살인, 도둑질, 거짓말, 간음, 성적 부도덕성 등등에 대한 "도덕적" 계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수께서도 종종 구약성경을 참조하셨고, 율법을 철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왔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절기와 음식에 대한 구약성경의 계율들이 반드시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계명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그 계명은 역사 속에서 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레위기20장13절은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이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정의하거나 삭제하는 위험스런 행태를 조장하는 것이다. 동성애와 모든 성적인 죄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구약성경의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행동의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 행위의 도덕적 함의는 남아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간음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더 이상 돌로 쳐 죽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간음죄를 용납하거나 덜 위험한 죄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간음은 법적인 책임이 없다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국가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그 법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수는 없다!
2. 예수께서는 남녀간에 저질러지는 혼외의 "모든" 성적인 죄를 정죄하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9-20).
예수께서는 남녀간에 저질러지는 혼외의 모든 성적인 죄를 해롭고 부도덕하다고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음란"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포르네이아이다. 여기서 포르노그라피가 나왔다. 우리는 "나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어"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색정을 품고 속이도록 태어났다? 그러나 그런 말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죄에 빠지게 만들고 구세주를 필요하게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3. 예수께서 침묵하셨다는 사실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그분께서 "동성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분이 동성애를 승인하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분이 시간(屍姦), 아동성애, 근친상간, 수간(獸姦) 등을 승인하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4. 신약성경의 다른 구절들도 이 문제에 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로마서1장18-32절과 고린도전서6장1-20절은 매우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적합하지 않아서 진리를 억압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타락한 마음에로 넘겨주셨고 그들은 적절하지 않은 일들을 저질렀다. 동성애와 일반적인 성범죄는 몸을 더럽히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인간의 성적 무질서는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을 선택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존 파이퍼).
5. 예수께서는 천지창조 이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결합하여 한 몸이 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막10:9)고 덧붙이셨다.
남자와 여자의 결혼은 창조 이래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아무리 많이 통과되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종종 반항하는 것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나 또한 그분의 사랑과 자비는 죄를 회개하고 자신들의 상황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진다. 용서는 진정한 믿음의 표시이다.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마력 때문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런 종류의 죄를 눈 감아 주거나 용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와 다른 죄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미국의 대다수 교회가 회중들의 죄를 지적하기보다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는다. 회개는 드물게 주문한다. 죄는 자주 용서한다. 우리는 상심하게 만들기보다 교회를 세우길 원한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정확하기보다 정치적으로 정확하고자 한다; 영을 흔들어 깨우고 죄를 지적하기보다 달래고 위로한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속은 듯한 느낌을 갖는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고 ... 진리가 없는 기독교를 가르치고 생활하게 하기 때문이다.
격려를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첨언하면, 만일 당신이 희망이 없고 절망스러우며 혼란스럽다면, 당신을 창조하신 분을 바라보라. 그분이 답을 갖고 계신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건, 당신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능력을 갖고 있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느냐가 문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jesus-on-homosexuality-jen-hatmaker-should-read-this-171218/#VFl4HWLX1dZ3KM2J.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