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2월1일(목)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거행된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기념재단 창립총회에서 성공회대 김기석 교수(성공회 사제)가 전한 설교말씀을 전재한다. 김 교수는 총체적 난국에 봉착한 현 시국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교회도 '묵은 땅'으로 규정하고 성도들이 함께 갈아엎어 새 터전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서구절:
1) 호세아 10:12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 사랑의 열매를 거두리라. 지금은 이 야훼를 찾을 때, 이 야훼가 너희를 찾아와 복을 내리리라."
2) 요한묵시록 18:1-8.
1.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고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 때문에 땅이 환해졌습니다.
2.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3.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4.또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너라. 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휩쓸리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5.그 여자의 죄는 하늘에까지 사무쳤고 하느님께서도 그 여자의 사악한 짓들을 기억하신다.
6.그 여자한테서 받은 만큼 돌려주고 그 여자의 행위를 갑절로 갚아주어라. 그 여자가 부어준 잔을 갑절로 되돌려주어라.
7.그 여자는 영화와 사치를 스스로 누렸으니 그만큼의 고통과 슬픔을 그 여자에게 주어라. 그 여자는 마음속으로 '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니 결코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
8.그러므로 그 여자에게 질병과 슬픔과 굶주림 등의 재난이 하루 사이에 닥쳐올 것이며 마침내 그 여자는 불에 타버릴 것이다. 그 여자를 심판하시는 주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전국 방방곡곡 수백만의 촛불로 시민혁명을 이룩해가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한국기독교 민주화운동 기념사업 창립총회로 모인 여러분께 하느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먼저 굳건한 믿음과 양심에 따라 이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고귀한 삶을 바치고,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하시길 기원합니다.
지금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는 평화적인 촛불의 물결이 청와대에 들어앉은 저 음침한 어둠의 권세를 밀어내며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촛불의 바다로 청와대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성난 민심의 함성으로 주말마다 청와대를 향한 포위망을 조금씩 조금씩 옥죄여 가고 있습니다. 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둘러싸고 함성을 질렀을 때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졌듯이, 오늘 우리는 촛불의 함성으로 청와대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세계사에 자랑할 만한 역사적인 시민혁명을 이룩하고 있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면서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었던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보고자 합니다.
잔혹했던 일제 강점 하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결한 믿음을 바탕으로 빼앗긴 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국내와 해외 어디를 가나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많은 애국자들이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한과 북한 각각 외세를 등에 업은 분단세력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해방 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일은 오늘날까지 원죄처럼 남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1960년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한 수많은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았건만, 얼마가지 못하고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를 내세운 한 무리의 정치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란 긴 시간은, 한편으로는 독재로 인해 민주주의가 무참하게 훼손되는 시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재벌위주의 기형적 경제개발이 진행되던 두 얼굴을 지닌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가 지닌 양면성에 대한 엇갈린 역사적 평가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을 두 편으로 가르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했다"고 일컫는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이것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통치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신독재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단지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권력욕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이 땅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찬란한 부활을 꿈꾸며 아름다운 서울의 봄을 맞이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신군부의 총검 아래 우리는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6월, 역사 가운데 살아계신 하느님의 공의를 믿는 우리들의 부단한 예언자적 외침과 민주주의의 제단에 기꺼이 꽃다운 목숨을 바친 청년, 학생들의 희생으로 인해 마침내 민주주의를 되찾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성취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미완의 민주주의였고 재벌 중심의 불공평한 경제구조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맨손으로 이룩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기에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이 민족을 다시 일으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87년 민주화 이후 어언 한 세대가 흐른 2016년, 우리 눈앞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지금은 구한말과 비견될 만큼 민족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를 비롯해 남북대화 및 교류의 전면 단절 속에 고조되는 북핵 위기, 미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국수주의 강화 및 보수정권의 수립,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도가 반복해서 덮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제를 비틀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안한 시기에,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눈먼 대통령을 앞세우고 악의 손길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기독교인인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사이비 종교의 뿌리에서 나온 악의 손길에 의해 이 나라가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최태민이라는 사교의 교주로부터 뻗어 나온 악의 손길은, 정상적인 판단력이 전혀 없는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오래 전에 세우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해왔습니다. 그동안 박대통령은 그들이 입혀준 옷을 입고,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대한민국을 사유화하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애당초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이 대선 기간 동안 댓글부대를 운영하여 대대적인 여론조작을 했다는 국기문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 300명 넘는 국민들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7시간 동안, 박근혜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그리고 금년에는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 배치 등을 강행해왔습니다. 올해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전체 180개 국가 가운데 70위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87년 민주화 이후 이 나라의 언론자유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락했음을 말해줍니다. 이 사건들 하나하나가 모두 탄핵 사유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실정이었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8장 2-3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음행과 사악한 행위를 일삼은 그 여자'라는 말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 여자'라는 대목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성서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문자주의적 해석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성서읽기가 아닙니다. 특히 기우에서 말씀드리자면, 공연한 여성혐오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그 여자'는 바빌론이며, 바빌론은 다름 아닌 사악한 권세를 상징합니다. 사악하고 타락한 권세가 지배하는 도성인 바빌론은 곧 하느님의 본성인 정의와 평화, 생명을 짓밟는 권력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의 말씀에 따르면 바빌론의 특징은 첫째,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권력입니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2절).
둘째, 개인숭배와 사치가 극에 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무서운 일이다! 고운 모시옷과 주홍색 옷과 진홍색 옷을 몸에 두르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단장하던 이 큰 도시"(16절).
셋째, 거짓말이 진실을 가리는 시대를 뜻합니다. "그 여자는 마음속으로 '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니 결코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7절).
바빌론 도성은 타락한 권력이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독재자에 대한 숭배와 사치가 극성인 도시였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판치는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OECD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 국가입니다. 매일 40명의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새로운 생명을 축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꿈꾸지 않는 이 시대는 가혹한 죽음의 시대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을 말살하는 시대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많이 유행하는 단어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입니다.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깊게 묻어 있습니다. 부모의 재력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에 대한 자조어린 체념이 담겨있습니다. 부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모 돈 많은 것도 능력"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양극화의 틈새에서 점차 허물어져 가는 중산층들도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수의 학자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노동과 자본을 분리시킨 금융자본주의는 복잡한 수학 공식을 통해 고안된 괴상한 파생상품을 통해 실질적인 생산 활동이나 부가가치 창출에 아무런 기여도 없이 어마어마한 이윤을 만들어내는 괴물입니다. 금융시장의 복잡한 시스템을 이용해 사적 이윤은 실컷 취한 다음에, 손실이 발생하면 국가와 공공영역으로 떠넘기는 부도덕한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막대한 손실을 떠안는 사람들은 결국 노동자, 소상공인, 가난한 시민들입니다.
저 옛날(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 왕국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왕과 사제들이 야훼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에 빠져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고 있을 때에, 호세아 선지자는 결연히 외쳤습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 사랑의 열매를 거두리라. 지금은 이 야훼를 찾을 때, 이 야훼가 너희를 찾아와 복을 내리리라"(호세아 10:12).
이제 우리도 묵은 땅을 갈아엎을 때입니다. 우리의 묵은 땅은 무엇입니까? 절망과 죽음의 정치, 욕망과 독점의 경제, 그리고 타락한 교회가 바로 이 시대에 우리들이 갈아 엎어야할 묵은 땅입니다. 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일과 독재의 기득권 세력, 특혜와 불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독점을 확장하는 재벌위주 경제구조,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채 비판의 붓을 꺾고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정치 검찰, 국가를 위한 정보 수집 보다는 정권의 심부름센터가 되어 댓글조작이나 하고 공안정국 조정을 위해 간첩조작을 일삼는 국가정보원, 방위산업 비리에는 관대하고 외국군의 눈치나 보는 군대가 바로 이 나라의 묵은 땅입니다. 이 모든 묵은 땅의 중심인 청와대를 갈아엎어야 합니다. 나아가 외세에 기대어 민족분단을 영구화하며, 남북 평화보다는 군사대결을 조장하여 민족의 운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세력인 가짜보수 세력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할 때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 터전 위에 정의를 세울 때입니다. 새 터전에 하느님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에 바탕하여, 모든 국민을 위한 생명의 정치를 펼치고, 가난한 이웃은 물론 생태계까지 보듬는 은총의 경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 터전에 정의를 세우는 일은 '헬조선'이 아닌, 젊은이들이 살만한 '해피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언론, 검찰, 국방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시민혁명을 통해 민족의 정기를 새롭게 세우는 근본적인 변혁이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함성이 청와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함성입니다. 촛불의 물결이 온 나라에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는 촛불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변화의 물결이 바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위대한 역사이심을 믿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는 함성은 그동안 침묵하셨던 하느님께서 마침내 토해내시는 우레 소리이며, 저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의 물결은 그동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갖가지 참사에도 그저 눈감고만 계셨던 하느님의 눈동자입니다.
내일의 역사, 세계의 역사에 기록될 2016년의 위대한 시민혁명을 보면서, 이제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을 향한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회개해야 합니다. "이게 나라냐!"고 온 국민이 외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토록 나라가 망가지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돌이켜볼 때입니다. 그런데 "이게 나라냐!"는 분노의 목소리에 더하여 우리는 소리쳐야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게 교회냐!"라는 외침입니다.
그동안 이 땅에는 일어나서는 안 될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우리는 그저 무기력했습니다. 반도에 생명의 젖줄인 4대강, 이 땅을 살찌우며 유장하게 흐르던 4대강의 속살이 탐욕에 눈이 벌갠 무지한 자들의 삽날에 파헤쳐졌고, 저 화사한 봄날, 꽃 봉우리 같은 무고한 아이들이 원인도 모르게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들이 침묵하고 외면하고 주저앉았던 날들을 떠올리며 우리의 나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포기했던 그 시간에 이 땅의 여러 교회에서는 무조건 절대 권력에 아부하는 편파적인 기도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를 세우시는 하느님의 섭리와는 정반대로,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축복을 빌어주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내치는 메시지를 강단에서 전파하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억울한 심정을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이 나라의 경제를 망치고 보상금을 더 타내기 위해 떼쓰는 사람들로 매도했습니다. 하느님의 참된 말씀을 전하지 않고 이와 같은 거짓된 언설로 강단을 어지럽힌 자들은 바로 삯꾼 목자들입니다. 이들은 삯꾼 목자가 양들을 이리떼에게 넘기듯이, 잘못된 메시지로 순박한 신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 사악한 권세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결국 대한민국이 사탄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 정의를 심고 사랑의 열매를 맺을 거둘 때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정치,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는 경제를 실천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를 개혁해야하는 때입니다. 이 거룩한 사명을 실천하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그 병든 마음을 고쳐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이제 내 노여움은 다 풀렸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리면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햇순이 새록새록 돋아 감람나무처럼 멋지고 레바논 숲처럼 향기로우리라"(호세아14:5-7).
노아의 방주에 초대받은 생명들처럼 우리는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자본주의 파국의 시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의 시대를 견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난한 하느님의 백성들과 보잘 것 없는 뭇 생명들이 함께 손잡고 보듬으면서, 홍수 끝에 펼쳐질 찬란한 무지개를 함께 바라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