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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드러누운 성탄트리를 바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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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지유석 기자 )
▲촛불의 대열이 거대한 형상을 이루며 부패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6차 범국민대회.

성탄절도 지나고 2016년이 끝자락만 보이며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 국정농단, 부정부패, 탄핵, 정경유착 등의 사태가 일진광풍처럼 몰아쳤고 그 와중에 교회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듯한 한 해였다. 지금은 그 광풍이 지난 뒤 망연자실한 느낌을 마치 길거리의 가로수들도 아는 것 같다. 만일 2016년이 갑자기 등을 돌리고서 다시금 우리 앞으로 다가선다면, 아마 거의 모두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설 준비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만큼 2016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그 기억에는 분노와 허탈과 좌절이 뒤섞여 있다. 2016년은 그 동안 품고 있던 기대와 소망이 무참히 짓밟힌 한 해였다.

물론,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너무 절망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분노와 허탈과 좌절은 우리가 지녔던 기대와 소망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거대한 촛불의 대열은 정의가 바로 세워진 국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대다수 국민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아마 천사 가브리엘이 성탄절 행사를 둘러보러 내려왔었더라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을 보고 거대한 성탄트리를 떠올렸음직 하다. 그런데 성탄트리가 드러누워 있어서 의아해 하며 가까이 다가가 보고는 그것이 분노의 촛불이며 정의를 위한 외침과 섞여 있는 것을 목격하고서 함께 촛불을 들었을 수도 있다. 성탄이 사실상 비극과 구원의 메시지가 어우러진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같이 사회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동안에 교회는 목소리를 스스로 죽인 것인지 무시당한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한 상태다. 연말에 몇몇 대형교회 교인들이 탄핵반대 시위를 벌인 것을 보면, 교회가 사회의 기대와 소망과는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대형교회들이 성탄트리에 장식한 엘이디 불빛이 사회에 대한 그들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상징하는 듯하다. 가난한 자들이 다가갈 수 없도록 차디찬 엘이디 불빛의 조명을 둘러치고 그 울타리 안에서 국내 종교 중 기독교인의 수가 1위를 차지했다는 인구조사결과를 두고 자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는데, 예수처럼 세상 사람들을 살리는 먹이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교회가 연말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의 절규에 이 같이 무감각할 수가 있을까?

나라와 사회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도 광야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을 밝히며 분란을 가중시키라는 말이 아니라 사회의 분노와 허탈과 좌절이 교회에로 집중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운영상의 어려움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촛불로 만든 '성탄트리'가 북쪽을 향해서만 전진하라는 법이 없다. 교회가 촛불의 민심을 정치적 야욕에 따라 이용하려는 세력의 뒷배를 봐주거나 그들에게 이용당하게 되면, '성탄트리'는 지금처럼 드러누운 형상으로 내팽개쳐질 수 있다. 촛불이 만든 '성탄트리'는 교회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요한계시록21:4) 구원의 약속을 성육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회는 차가운 조명을 걷어내고 가난한 자들과 하나되는 촛불의 온기를 비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분노와 허탈과 좌절을 품고서 기대와 소망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실행해야 한다. 2016년은 이렇게 다시 한 번 더 교회에 갱신의 기회를 주고서 물러간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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