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나아갈 때 당신은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는가? 당신은 주님께 이야기할 때 꽤 과감한가, 아니면, 다소 겁을 먹는가? 당신의 기도생활이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약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를 열렬히 원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창조주와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가?
감사하게도, 하나님과의 소통을 향상시키고 그분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망을 극적으로 높이려고 할 때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용적인 조처들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누구든지 제한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근거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근거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본질상 주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반면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요구와 주님의 완전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풍성한 격려를 받지 않는가?: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에베소서3:12). 말하자면, 예수께서 우리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용납될 만한 존재로 만드셨고, 믿음 속에서 이루어진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적인 탄생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신은 현재 하나님께 나아갈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당신을 은혜의 영적 장소로 인도하심으로써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부여해주셨다. 당신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영생의 상속자"로서 칭의를 받았다(디도서3:7). 믿는 자로서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한 보호자이심을 믿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이 세상의 온갖 염려에 대해서도 그분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8:32)
잠깐 멈추어서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영원한 복락을 주기 위해 자기 독자를 희생시키고자 하는 어떤 사람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당신이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예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 일을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죗값을 지불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처벌은 완전한 희생을 요구한다(히브리서9:1-28). 그리고 이런 희생이 치러졌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자유롭게 하나님께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주님께 요청할 수 있다. 확신을 갖고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권리"는 우리 구주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치르신 희생 때문에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원하든지 다 허락하신다는 말인가?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위해 당신의 뜻과 합치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한1서5:14-15). 알겠지만, 우리의 요구가 무엇이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고 우리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그분과 밀접하게 동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와 밀접히 동행하는 것은 당신의 기도가 응답받는 최선의 비결이다.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동행하는 자들은 어떤 간청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지를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나 힘으로 이러한 분별력을 발휘할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며]"(빌립보서2:13), 당신이 "그분께 당신의 마음을 토해낼 때"(시편62:8) 당신의 기도에 확신을 심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복음15:7-8).
매 순간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줄 다른 방도는 없다.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이 생각을 주님께 고정하고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믿는 자들의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도 주님과 달콤한 교제를 즐기는 내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것이 평화와 능력과 그리스도 중심의 확신을 풍성히 누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의 용기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으로부터 나온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썼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그는 자신에 대한 용서, 구원, 평화, 인내, 그리고 확신의 원천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은 히브리서3장1절에 요약되어 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하기보다 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얻은 영적 능력과 확신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용서는 확신을 낳고, 매일의 회개는 확신에 찬 기도의 "흐름 속에" 거하게 한다. 그 반대편은 숙명, 우울, 수치, 그리고 좌절의 길이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든지 그분 앞에서 두려움을 갖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뒤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그들은 수치스럽고 두려워서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다(창세기3:8-10).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에게 이야기할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어겼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예수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와 수치와 죄책을 하나님께 가져갈 길을 만드셨다. 우리는 죄가 씻어지고 용서를 받았으며 소망과 확신으로 가득 찬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의 확신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로마서15:13).
오늘 당신의 삶에서 이러한 풍성함을 경험하기를 원하는가? 전 세계 수백 만 명의 믿는 자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런 능력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가? 매일 하나님께 확신을 갖고 나아가기를 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용기를 가지라. 그 앞에 놓인 길이 복잡하지 않다.
그저 정성을 다해 회개하고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예수를 바라보라. 주님께서 당신이 그분과 동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씻어내 주실 것을 믿고, 성령께서 당신에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열정을 부여하시기를 요청하라. 그런 뒤 하루 종일 매 순간 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 아래 거하라.
이보다 더 나은 생명의 길이 없으며 그리스도 중심의 확신을 풍성히 누릴 다른 방도는 없다.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approaching-god-with-confidence-172221/#48QvBj8YVJbye4bV.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