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정교회는 교회의 어머니이자 부활의 교회”

한국 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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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한국 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하면 개신교와 가톨릭을 얼른 떠올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원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면 또 하나의 전통을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정교회(Orthodox)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정교회가 초대 교회의 원형을 간직한 교회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017년 새해 정교회는 한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한국 정교회 대주교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NCCK는 지난 해 11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 정교회 성니콜라스 성당에서 제65회기 정기 총회를 열어 조 대주교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조 대주교의 회장 선임은 정교회와 NCCK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교회의 경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역별 기독교교회 협의회에서 정교회 수장이 회장을 맡은 건 한국이 처음이어서다. 조 대주교도 NCCK총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점을 강조하며 "개인적으로, 그리고 정교회에도 큰 영광이고 큰 책임을 지게 됐다"는 소감을 피력했었다. NCCK 역시 비개신교, 외국인 교단장을 회장으로 맞이한 건 1924년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조 대주교를 지난 8일 성니콜라스 성당에서 만나 NCCK 회장 선임에 대한 소감, 그리고 정교회가 교회사에서 갖는 위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 대주교는 기자의 질문에 그리스어로 답했다. 통역은 한국 정교회 박인곤 요한 보제가 담당했다. 조 대주교의 인터뷰를 1부와 2부로 나눠 싣는다.

-. 우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된데 축하드린다. 정교회 하면 생소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사적 위치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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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 정교회 성니콜라스 대성당.

흔히 정교회하면 그리스 정교회와 동일시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리스 정교회는 그리스 지역의 정교회를 말한다. 단, 그리스 정교회는 교회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2천년 전 그리스 문화권에서 태동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내 고향은 에기나라고 하는, 아테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섬이다. 배편으로 20~30분이면 갈 수 있다. 사도 바울로는 코린토스에서 크리스포스라는 유대인 회당(시나고그)의 장을 만나게 된다. 크리스포스는 바울로와의 만남을 통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 이후 크리스포스는 에기나로 보내져 그곳에서 초대 주교에 올랐다. 이때가 기원 후 50년 경이다. 이렇듯 그리스는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지금 말씀 드리는 내용은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로 건너가기 전, 그리스인들은 올림푸스 12신 등 이교를 믿고 있었다. 그러다 바울로에 힘입어 그리스는 그리스도교화 됐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됐다. 문화적으로 볼 때 알렉산더 대왕 이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중해 전 지역이 그리스 문화권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어는 지금 영어처럼 공용어로 통용됐다. 신약성서가 그리스어로 쓰여진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까지 그리스 인구의 99%는 정교회 교인이었다. 최근 중동과 동유럽에서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정교회 인구는 95% 가량으로 낮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 대부분은 정교회 신앙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 많은 이들이 정교회를 언급할 때 러시아 정교회를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별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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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조성암 대주교는 NCCK 회장을 맡게 된데 대해 영광이자 책임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정교회는 그리스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 러시아에 정교회가 전파된 시기는 10세기다. 이 시기 테살로니키 출신의 키릴로스와 메타디오스라는 형제 선교사가 키예프로 건너갔다. 이들은 이곳에서 슬라브 민족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했고, 이에 러시아 정교회가 형성돼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등이 오스만 제국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그리스 정교회는 영향력이 약화됐고, 러시아 정교회가 지도적 위치로 부상했다 - 글쓴이)

국가명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 우크라이나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 국가별로 정교회가 존재한다. 한국 정교회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정교회는 그리스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전파하면서 얻게 된 결실로 볼 수 있다. 참고로 전세계 정교회는 같은 교리와 신앙으로 같은 예배를 드린다. 전세계 정교회 신자는 3억 이상이다.

-. 한국 정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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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한국 정교회 주일 성찬예식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정교회는 러시아 선교사들로부터 처음 전해진다. 조선에 온 러시아인들, 그리고 러시아에서 거주하다 정교회 신도가 된 조선인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1900년 1월 러시아인 성직자 쉐트콥스키 수도대사제가 조선으로 온 게 효시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 이후 한반도는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등 곡절이 많았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러시아는 공산화됐고, 러시아 정교회는 탄압받기에 이른다. 한국 정교회도 러시아와 교류를 갖기 힘들었다.

정교회의 불씨는 한국전쟁 때 되살아났다. 그리스군과 함께 온 종군신부들이 한국에 정교회가 있음을 알고 신자들을 모으고 예배를 드리는 등 사목활동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교회는 모교회와 연결고리가 없었다. 이에 1955년 한국 정교회 신도들은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관할로 정해달라고 청원했고, 총대주교청은 이를 수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예수 부활이 없으면 그의 가르침은 ‘헛것'

-. 교리적으로 정교회는 부활을 강조한다고 들었다. 또 초대교회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교회가 정교회라고도 알고 있다. 서구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다른, 정교회만의 교리가 있다면 역시 간략히 설명 부탁드린다.

무엇보다, 초대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가장 중심은 부활이었다. 이 점은 증언과 자료로 확인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설교나 가르침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사도 바울로도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역사엔 수많은 현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모두 태어났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서 끝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탄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뒤 부활하셨다.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시고 유일한 분이라는 걸 볼 수 있는 것이다.

정교회가 성탄절의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건 아니다. 많은 분들이 이 점을 오해한다. 성탄절은 인간 구원사역의 시작이고, 따라서 정교회에서도 큰 축일로 지낸다. 그러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일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전세계 모든 정교회에서는 부활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강조한다. 비단 부활절 때만이 아니다. 매번 주일 성찬례(예배)를 드릴 때 마다 부활찬양송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부활이 우리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말씀드린 내용은 초대교회부터 자료가 있다. 4세기 스페인 출신의 에세리아라는 수녀가 예루살렘에 가서 1년간 머무르며 이곳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이때 부활절이나, 사순절 등 교회 절기의 준비과정을 모두 기억해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에 따라 그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지에서 보면 성탄절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부활절은 잘 알지 못한다. 반면 그리스, 러시아 등 오랜 정교회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모든 이들이 부활절 기간임을 쉽게 안다.

사실 부활은 대주제이기에 짧은 말로 다 담을 수는 없다. 단, 부활을 중요시여기기 때문에 정교회를 ‘부활의 교회'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 정교회의 교리가 신도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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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 정교회 성니콜라스 성당 내부. 성당 벽화는 1990년 아테네 대학 미술대학팀이 제작한 것이다.

정교회에서 말하는 교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지식처럼 습득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부활 교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드리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게 됐다. 그리스도인에겐 지상에서의 삶의 끝이 곧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활하면서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곤란을 겪어도 부활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이 같은 곤란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반면 부활신앙이 없는 이들,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은 삶에서 역경이 찾아오면 아주 쉬운 해결책을 찾는다. 그 중 하나가 자살이다. 참 안타까운데,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정교인들의 자살률이 제일 적다.

한국은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정부가 자살률을 낮추려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최근 들어선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정교회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란 마음만 품는다면 자살률은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친다. 젊은 학생들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실연을 당했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우리 삶을 중단시키느냐? 삶은 하느님께서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고 많은 것을 세우고 만들고 할 수 있다'고 자주 말해주곤 한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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