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사랑을 잃지 않고 있나요?"(요한계시록2:4). 당신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은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당신은 그분에 대해서 기뻐하며 당신의 삶의 모든 것들이 예전과는 달라진 것을 느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도 당신은 그러한 기쁨을 유지하는가? 당신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계속 영위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나 데이트를 시작할 때 우리 관계에는 모종의 흥분이 있었고 우리는 첫사랑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곧 그 사실을 서로 당연시하게 되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신은 누군가와 일상생활을 함께 함으로써 그 관계를 진척시켜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부부도 우리의 딸들이 어렸을 때조차 한 밤의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우리 둘만 가끔 호젓하게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우리는 교회에다 아기돌보미들을 많이 요청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들은 우리 친구들의 집이나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곤 했다. 우리는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혼인관계를 강하게 유지하고 우리의 시간을 함께 즐기는 것이라고 실제로 믿었다.
1.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성경을 펴고 그 자리에서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낸다? 신자들은 매일의 묵상,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저 기독교인의 외형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됐어, 묵상 시간을 가졌으니 된 거야, 그게 전부니까'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날들 동안 나는 실제로 영원에 대한 나의 관점에 있어서 차이(와 그러한 관점의 결핍)를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시간을 보내길 권하고자 한다. 1년 성경 통독 프로그램이나, 혹은, 신구약 성경의 매일 묵상 구절을 제공하는 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묵상집을 읽고 성경읽기의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주간 성경통독 그룹을 만들어서 성경 본문 자체를 읽을 수도 있다. 참석자들은 모두 성경의 같은 부분을 읽고 그 구절로부터 원하는 대로 묵상 내용을 공유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각자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매일 묵상 중에 느낀 바가 무엇입니까?"라고 서로 질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2.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에 접목되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기도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을 때 나는 다소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고 가끔은 혼자서 큰소리로 성경을 읽는 기도도 한다.
나는 당신이 바울 사도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골로새서 1장으로 기도하며 그가 기도한 내용을 반복하기를 권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 것, 더 그리스도인다워질 것,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살 것,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가 더 커질 것 등을 기도하라. 나는 이런 기도를 내 자신을 위해, 나의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 나의 아내를 위해 올린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심각한 좌절과 싸우고 있을 때조차 나의 영적인 생활을 신선하게 유지하게 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친밀하도록(그 관계가 진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운 것들 중의 하나는 내가 매번 주님께로 돌아가서 나의 구세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의 재판관, 그리고 나의 친구이신 그분께 그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의 소설 『안전한 귀가』에서 나는 리콴과 그의 가족이 집에 갖고 있으나 아무도 앉아본 적이 없는 의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친구인 벤 필딩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의자가 그 집에서 제일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가서 누군가가 마침내 벤에게 그 의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도 그 의자에는 앉지 않는지, 혹은 그 의자가 비어 있는데 왜 사람들이 바닥에 앉곤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 의자는 리콴의 할아버지가 최고 장인의 솜씨를 발휘해서 만들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님, 당신의 임재를 느끼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나는 내 앞에 의자를 두고 무릎을 꿇고서는 "주님, 당신은 마치 지금 이 의자에 실제로 앉아계신 것처럼 임재하십니다. 당신은 늘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목수로서 당신은 의자를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우상을 만들고서 그가 실제로 의자에 앉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이 자리에 계시고 마치 그 의자에 앉아계신 것처럼 매우 실제적으로 느낀다.) 나는 "제가 지금 당신께 기도할 때 당신의 임재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한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그 의자에 앉아계신 것을 눈앞에 그리며 그분을 보고 그분께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실제로 인간이 되셨고, 그분은 신-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신체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분은 육체를 갖고 계셨고 지금은 그분이 영원히 갖고 계실 부활의 몸으로 계신다.
3.
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날들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시고 당신이 아직도 알지 못하는 신성한 약속을 당신에게 해주셨다는 것을 전심으로 믿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에 내가 내 아들이랑 테니스를 치러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치자.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과도 만날 약속을 한다. 내 아들이랑 외식을 하면서 그가 성경에 대해서 질문할 때 나는 다른 사람, 예를 들어, 웨이터와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복음서를 나눠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날들을 완벽하게 계획하셔서 당신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신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시고는 당신에게 그분을 대변할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열정을 늘 품도록 도와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지친 듯이 한발 한발 마지못해서 옮기며 "나는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하지는 않으신다. 오히려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외친 대로 "나는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한다"고 목청을 돋울 것이다. 그는 그분을 30년 동안 알아왔지만 그는 그분을 매일 더 잘 알기를 원했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여야 한다. 비록 우리가 순종하기를 분명히 원하고 그런 기분이 아니라도 그분께 순종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임재하실 것을 매일 간구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28:20). 우리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삶 속에 임재하시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