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3일에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당명변경을 통해 탄핵정국의 주인공으로 지목되는 박근혜라는 인물의 흔적을 지우고자 한 것이다. 그 전에 한나라당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자유한국당은 세 번째로 얻은 당명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갑론을박이 전개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도 당명 변경의 역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매 한 가지일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당들이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할 때 제일 자주 사용한 방법이 당명 변경이지 않은가?
이름이 바뀌는 것은 정체성의 변화를 지시하는데, 새누리당의 경우는 정체성이 바뀌어서 이름이 변경된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고서 정체성의 변화를 꾀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 새누리당으로서 호명되며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었는데, 이름을 바꾸면서 정체성을 조작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이름을 바꾼다고 실체가 변하겠냐며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은 절대로 하찮지 않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방 진영의 이 같은 생존전략을 쉽게 폄하해버린다면 그것은 경박한 세계관의 산물이다.
하지만, 우려하는 바대로 당명 변경에 정체성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때는 중국의 변검처럼 가면만 바꾸며 마술을 부린 정도로나 간주되고 말 것이다. 변검이 미리 만들어 붙인 비단 가면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동작으로 구성되듯이, 여러 개의 이름들은 그 정당의 속내를 가리기 위해 겹겹이 붙인 가면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어떤 속내가 그들의 정체성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오히려 시류에 따라 변하는 당리당략이 그들의 정체성이 되고 만다.
성경에도 이름이 바뀐 사례가 많이 나온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 이들은 모두 바뀐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그들은 이름이 바뀌면서 정체성도 함께 바뀌었다. 그들의 바뀐 이름 자체가 그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춘수의 시에도 나오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꽃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이 기득세력의 전위부대로서 불통의 정치를 구사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바뀐 이름이 실질적인 의미를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의 의지에 실천이 동반될 때 정체성도 변하게 된다. 이것이 회개의 원리이자 효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