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특검 정국을 틈타 이른바 ‘가짜 뉴스'(fake news)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가짜 뉴스들은 언뜻 보기엔 언론사가 발행한 기사로 보인다. 그러나 한 거풀 벗겨보면 사실과 다른, 아니 사실을 교묘히 왜곡한 가짜 뉴스다. <미래 한국>, <미디어 워치>, <노컷 일베>, <정규재TV> 등이 가짜 뉴스의 진원지다.
가짜 뉴스가 겨냥하는 표적은 분명하다. 이들의 주요 타켓은 최순실 테블릿PC의 존재를 처음 보도했던 JTBC와 손석희 앵커와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다. 헌법재판소도 단골메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 의혹을 놓고 특검이나 헌재가 재대로 된 증거조사를 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반발여론이 극에 달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이 여기자를 성추행해 징계를 받았다."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이 4년 전 성추문으로 1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모두 사실 무근의 가짜뉴스다. 그러나 이 가짜 뉴스는 기사 형태로 버젓이 유통 중이다. 가짜 뉴스의 타겟은 이제 전방위적이다. 조선, 동아, 중앙 등 보수 언론은 물론 여당인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에게 마저 거침없이 포화를 날린다.
최근 들어서는 보수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기총, 한교연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양상까지 포착됐다. 지난 해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폄하해 물의를 일으켰던 장신대 김철홍 교수는 지난 2월13일 <미래한국>에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는 제하의 칼럼을 실었다. 놀랍게도 김 교수는 이 매체의 편집위원으로 소개돼 있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개신교 교단을 대표하는 양대 연합단체인 한교연과 한기총은 작년 11월 초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며 각각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거국중립내각 구성, 책임 총리제 실시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일부 신학교 교수들의 섣부른 시국선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보수 교계 원로로 구성된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집행위원장 서경석 목사)조차 11월 1일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하야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언론, 국회, 노조를 중심으로 일어난 탄핵정변의 시작점에서 JTBC 손석희의 태블릿 PC 선동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린 게 아닌지 아쉬움이 크다. 이제 와서 적극적으로 나서자니 이미 해버린 말 때문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중략)
한기총, 한교연은 지금이라도 성명서를 새로 내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옳다. 언론의 거짓보도에 우리 모두가 속았다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성명서 발표한 지 열흘 만인 11월 10일부터 대통령 하야반대집회를 시작한 것처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때를 놓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가짜 뉴스 생산지, 탄핵 정국 이전부터 있었다
가짜 뉴스의 진원지는 탄핵 정국을 틈타 등장한 게 아니다. 이들은 탄핵 정국 이전부터 활동해 오면서 극우적 의제를 선전하는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 극우매체 <미래한국>의 2016년 8월16일자 기사를 보자. ‘황교안 권력의지가 있는가?란 제하의 기사 중 일부다.
"황교안 총리는 확실한 국가관, 보수우파 지향의 뚜렷한 이념적 지향점으로 인해 친박·비박 어느 쪽에서나 거부감 없이 수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반 총장과 비교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취약점과 변수에도 불구하고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황 총리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보수우파 성향으로 믿을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통진당 해산 과정에서 보여준 황 총리의 단호한 국가관과 리더십은 우파 진영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보수 진영, 특히 정부여당인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 언론들은 연일 황 대행의 출마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양상이다. 따라서 위에 적은 <미래한국>의 기사는 흡사 현 정국을 내다본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미디어워치>의 경우는 자주 신뢰도 논란을 일으켰다. 2014년 3월 <미디어워치>는 방송인 김미화 씨를 겨냥해 '친노좌파 김미화 석사 논문 표절 혐의 드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대표였던 극우논객 변희재씨는 이런 내용을 트위터에도 올렸다. 이러지 김 씨는 변희재와 <미디어워치>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8월 서울중앙지법 "변씨와 미디어워치가 김씨에게 각각 800만원과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디어워치>와 변 씨는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낸시랭에게도 친노종북세력에 속한다고 했다가 역시 벌금형에 처해졌다.
극우매체를 활용하는 박 대통령 측, 왜?
문제는 박 대통령 측이 이런 극우매체들을 스피커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지난 1월 <정규재TV>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탄핵 정국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 박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탄핵으로 직무정지된 대통령이 KBS, MBC나 조선-중앙-동아 등 유력 매체들을 외면하고 극우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 같은 비판에도 아랑곳 없이 박 대통령 측의 여론전은 더욱 과감해졌다. 설 연휴 전후로 <미디어워치>, <노컷일베>, <뉴스타운> 따위의 극우 매체들이 인쇄물 300만부를 뿌려 배포한 일이 불거졌다.
온라인은 더욱 심각하다. 극우 매체들이 생산한 가짜 뉴스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폐쇄형 단문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카톡)은 가짜 뉴스의 온상이나 다름없다. 불행하게도 각 교회 구성원들이 소통을 위해 개설한 단톡방엔 무분별하게 가짜 뉴스가 올라오고 있다.
사실, 개신교 성도들의 단톡방은 이전에도 세월호, 백남기 농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 사회적 쟁점 현안이 불거질 때 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한 가짜 뉴스가 퍼지던 창구였다. 세월호 노란리본을 폄하하는 메시지가 유통되는가 하면 세월호 특조위에 들어가는 세금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선전문구가 확산된 게 대표적인 예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 정국 와중에도 단톡방에선 이전과 유사하게 박 대통령을 감싸려는 여론 선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 측이 신뢰도가 의심스런 극우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이유는 찾기 어렵지 않다. <한겨레>, <경향> 등 진보성향의 신문은 물론 그동안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조선, 중앙, 동아 역시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얼굴을 정면으로 포착한 매체가 이라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박 대통령 지지세력들이 보수 언론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짜 뉴스의 무분별한 유통은 예사로이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기자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천안역 대합실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과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사이에 말다툼이 심하게 오갔다. 이 남성은 ‘최순실 테블릿 PC는 조작이고, 박 대통령 탄핵은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상대편 여성이 사실이 아니라고, 박 대통령이 잘못을 저지른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이 남성은 요지부동이었다. 기자가 이 남성에게 다가가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남성은 ‘인터넷'이라고 짧게 답했다. 단톡방을 통해 유포되는 메시지에 현혹돼 매주 토요일 서울시청과 대한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박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참여를 결심했다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페이스북 ‘기독교 루머와 팩트' 운영자인 박종찬 씨는 "성서에서 베뢰아 사람들은 ‘이것이 그러한가'라고 생각했다. 진실하고 진리를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짓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교회 단톡방을 통해 유포되는 가짜 뉴스에 대해선 "교회 관련된 사람이나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 보낸 메시지라고 해서 곧바로 받아들이거나 전하기보다 검증된 매체나 기관 등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