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공평하게 받게 될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는 이와 같은 기념비적인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로마서3:20).
의사봉이 땅! 하며 내려쳐지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감사하게도 사도 바울은 여기서 로마서를 끝내지 않았다. 이어 21절에서 전체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들 중 두 마디를 한다: "그러나 이제는 ...." 이 두 개의 단어는 죄 때문에 파멸하여 자신의 운명에 대해 염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그러나 이제는"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종의 조처가 취해졌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조처는 도대체 무엇인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3:21-22). 루터는 이 구절을 "성경 전체의 중심"이라고 평가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구절"이라고 칭했다. 리온 모리스는 그 구절이 "이제껏 씌어진 구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구절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은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신앙적 기초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킨 공덕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믿음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서 비판적 분석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가 그토록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의인의 신분이 믿음(22절)을 통해 온다는 것을 명시하면서도, 우리의 칭의의 근거가 믿음 자체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의 칭의의 근거, 즉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부여된 그리스도의 의로움 때문인 것이다. 우리에게 의인의 신분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의인의 신분을 획득하는 수단 혹은 도구일 뿐이다.
이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비판적인 묵상거리가 된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논할 때마다 그들은 "신앙"의 장점을 칭송하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칭찬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신앙의 대상이 지닌 장점은 칭송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종교는 같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니 인간 세상에서는 신앙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것과 사도 바울이 로마서3장21-22절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대조해보라. 그는 우리가 신앙 때문에 구원받는 것(마치 그 자체의 공덕에 의한 것처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라는 개혁신조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 말은 오직 우리에게 믿음만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그 말은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서 (따라서 자신의 공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의인의 신분을 획득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고 자신의 신앙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큰 위안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강한지보다 우리의 구세주가 얼마나 강하고 의로우신지에 희망을 걸고 있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michael-j-kruger/the-most-important-passage-in-the-whole-of-scripture.html